평범해도 괜찮아

딱 한 가지 소원

by 냉수 한 그릇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난 소망에 부풀었다. 여느 때와 달리 태어날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주치의의 염려에도 아내의 건강을 담보로 힘들게 임신했으니, 하나님께서 이 자식에게만큼은 남부럽지 않을 좋은 것을 마음껏 주시길 간구했다. 유별난 바람이 아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걸 주고 싶지 않겠는가?


임신 16주 정도 지나 으레 태아 기형아 검사를 했다. 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운증후군으로 의심되는 태아 출산 가능성이 ‘고위험’으로 나왔다. 병원 측은 양수검사를 권했다. 늦게 검사하면 바늘 찌르는 게 더 위험해지니 하루라도 빨리 검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양수검사는 태아를 둘러싼 양수를 바늘로 채취하여 그 유전자 이상을 판별하는 것이다. 정확도는 꽤 높았으나, 자칫 태아가 위험할 수도 있을뿐더러 당시 대학병원에선 100만 원 상당의 큰 비용이 들기도 했다.


아내 혼자 듣기엔 감당하기 버거운 소식이었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아내는 일하는 내게 연락했다. 속상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의지를 무시하듯 손이 제멋대로 떨렸다. 초연할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다운증후군이라면 낳지 않을 거니?” 이것이 내 생각이었는지 하나님의 음성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건 마치 세미한 음성처럼, 그러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선명했다는 것만 안다. 그 음성은 또 다른 생각을 낳았다. ‘양수검사로 다운증후군으로 판명되면 낳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그럴 순 없다. 맞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니 낳아서 기를 것이고, 아니라면 놀란 가슴 쓸어내릴 수 있겠으나, 오랜 기도 끝에 생명 주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양수검사를 받지 않기로 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낳을 테니 말이다.


다운증후군 고위험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한 가지 소원으로 간절했다. 그래, 두 가지를 바라지도 않았다. 딱 하나였다. ‘제발 아니면 좋겠다!’ 우습다. 소식 듣기 전까지 난 하나님께 이것저것 달라고 기도했다. 어떤 부모라도 바랄 법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이후, 여러 가지 소원은 단 한 가지 소원으로 바뀌었다. ‘제발 아니길….’




사람들은 일상에서 특별한 사건을 바란다. 일상을 ‘제로(0)’라고 한다면, 유익을 얻는 ‘더하기(+)’의 상태를 꿈꾼다. 뭔가 잃는 ‘빼기(-)’의 상태를 끔찍이 싫어한다. 잃은 것에 불평하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어려워한다. 특히 (0-1=-1)보다 (1-0-=0)에 더 힘들어한다. 어릴 적, 해수욕장에 있는 가위바위보 기계로 게임 했던 기억이 있다. 100원을 넣고 기계와 가위바위보를 한다. 내가 이기면, 숫자판이 돌아가며 1개 혹은 2개, 4개, 7개, 20개 등의 동전을 얻게 된다. 대부분 진다. 이길지라도 1개 내지 많아야 2개나 4개 정도 얻는다. 어느 날 첫 번째 게임에서 20개의 동전이 걸렸다. 여기서 멈춰야 하지만 사람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또 이길 걸 기대하고 한 게임에서 세 번을 연속 패했다. 처음 100원으로 시작하여 1600원을 얻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난 불평했다. 300원 잃었다고. 1900원 버는 건데 괜히 해서 300원 잃었다고. 또 어느 날은 첫 게임에서 7개의 동전이 걸렸다. 욕심에 몇 번 더한 게임에서 600원을 잃었다. 결국, 처음 주머니에 있었던 100원만 남게 되었다. 화가 났다. 그냥 여섯 번 해서 600원 잃은 것보다(0-1=-1), 600원을 얻었다가 잃은 것(1-1=0)에 더 속상해했다. 원래 없던 것이고 내 것이 아니었는데도, 난 (+)에서 (0)이 된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일상을 유지하는 게 은혜란 걸 뼈저리게 깨닫는 건, 이미 가지고 있던 걸 잃었을 때다. 이미 가지고 있던 걸 당연한 것으로 여길수록 잃었을 때의 충격은 배가 된다.


살다 보니, 얻을 때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걸 배운다. 인생이 객관적으로 불행이라면, (+)는 애써 노력해야 하지만 (-)는 자연스레 찾아온다. 그렇다면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큰 은혜다. 다운증후군이라는 (-) 소식을 들으니 (0)라는 일상이 은혜였음을 깨달았다. (-) 상태를 경험하니, 그토록 바랬던 (+)가 아닌 (0)만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건강 잃고 나니 건강했던 게 은혜인 줄 알고, 돈 잃고 나니 지금 있는 돈이라도 귀한 줄 알고, 사람 잃고 나니 때론 짜증 나게도, 화나게도 했던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다. 지금보다 더 바랄 필요 없이, 지금 상태라도 유지하는 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아내는 출산하자마자 남아있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의사 선생님께 질문했다. “다운증후군인가요?” 다운증후군이라고 하기엔 신생아치고도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래, 평범해도 괜찮다. 내 아들이 남보다 유별나게 잘나거나 똑똑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처럼 밥 먹고, 학교 다니고, 씩씩하게 뛰어다니고, 아빠·엄마에게 웃어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지금처럼 살아만 준다면, 그 무엇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이 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아빠·엄마는 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