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대비 집값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PIR(Price to Income Ratio)’이다. 주택가격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계산하여서 몇 년을 벌어야 집을 살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 KB국민은행, 넘베오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서울 PIR은 각각 13.4, 19.0, 32.32이다. 서울 중위소득가구가 중간 수준의 주택을 살 때 13년, 19년, 32년 이상 내 소득에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내 집 마련은 기적이다. 내 돈 모아 전·월세 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는 능력자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전임 사역하면서 사역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참고 참아야 했다. 그만둘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집’이었다. 집은 곧 생존이다. 다른 것이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사임 이후 살아야 할 집 문제는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집 마련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전세라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힘들었다. 돈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흔한 대출조차 직장인 신분이 아닌 목사로는 불가능했다. 패배감과 상실감에 슬펐다. 그때 생각했다. ‘지금까지 전세자금 하나 모으지 않고 뭐 했을까?’ 그리고 결심했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겠다!’
난 돈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돈 많으면 좋겠다. 돈을 좋아한다는 말이 그리 이상할 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다. 성도는 돈을 좋아해도 괜찮지만, 목사는 안 된단다. 신실하지 못하단다. 목사도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요, 남편이요, 아빠란 사실을 놓친다.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아내에게 명품 가방 사주고 싶고, 아들에게 비싼 레고 사주고 싶은 남편이요 아빠란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지금껏 명품과 비싼 레고를 원하지 않았던 건 내가 받은 복일지도 모른다. 전임(주 6일+a)에서 파트사역(주 1일+a)으로 전환하면 전·월세 집이라도 마련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구성원이란 사실을 잊는다. ‘목사’라는 이름은 신비롭다. 이 모든 사실을 무색도록 하니 말이다. 교회나 교단이 전임으로 사역하지 않는 목사의 사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바라지도 않는다. 돈 좋아하는 목사를 비난하지만 않으면 된다. 노파심은 사치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부목사로 사역하며 부족함이 없었다.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걸 알기에 아낌없이 헌금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돈 다루는 은사를 주셨기에 하나님, 이웃, 그리고 나에 대한 균형 있는 분배가 가능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