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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한 그릇 Sep 18. 2023

오후예배, 꼭 드려야 하나요?

담임목사가 된다면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저녁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이야 저녁예배 대신 오후(찬양)예배로 드리는 교회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저녁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다. 그래, 솔직해지자. 저녁예배나 오후예배나, 내겐 꼭 드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예배다. 오후예배 필요성에도 반기를 드는 나로선, 저녁예배를 드린다는 건 시대 흐름에 뒤처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새벽예배 드리고, 주중 수요일과 금요일에도 예배드리니, 주일 오전에만 예배드려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만 솔직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들도 솔직해져 보자. 예배드리고 싶어서 오후예배에 나오는가? 예배드리고 싶어서 주중 수요예배와 금요예배에 나오는가? 물론 그런 순수하고 신실한 성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일부라기엔 좀 더 많은 성도는 장로라는, 권사라는, 집사라는 직분을 가졌기에, 예배드리지 않는 성도란 꼬리표가 달리는 게 싫기에, 다른 성도에게 공예배 잘 드리라고 한소리라도 할 수 있기에 나오는 예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공예배를 사수하는 성도라는 칭찬 들으려고 나오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난 목사기에 가기 싫을 때도 억지로 가서 예배드린 적도 수없이 많다. 


오후예배나 저녁예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예배를 많이 드려서 좋다는 뜻이 아니다. 공예배만 예배라 생각하는 성도는 예배 외 시간을 비그리스도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득이 주일 오전에 예배드리기 힘든 성도에게 예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다는 뜻이다. 주일에 출근해야 하는 성도로선 주일 새벽이나 오후, 심지어 저녁에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직장인 예배’ 등의 이름으로 대상을 특정한다면 오후나 저녁에 드리는 예배의 취지는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비록 교역자가 헌신할지라도, 담당 교역자만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한다면 성도로선 은혜를 입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취지로 예배드리지 않고, 예배는 많이 드리면 좋다고 생각하는 한국교회 의식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결과 때문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속으론 없애고 싶어도 목사는 성도 눈치 보랴, 성도는 목사 눈치 보랴, 서로 눈치 보느라 지금까지 드리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누군가 예배 폐지를 주장하면 어떻게 예배를 없애느니 하면서 목소리 낼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큰소리 내나, 내가 보니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예배 빠지는 경우가 많더라. 명절 당일이 주일이면 오전에만 예배드려도 되겠는데, 그럴 때일수록 예배는 쉬면 안 된다는 논리로 교역자들만 예배 참여하게 하고선 정작 본인들은 쏙 빠져버리니, 이거 참 어불성설이다. 그런 천박한 이유로 오후나 저녁에 예배드리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따지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생각이니 따져서 무엇하리. 아니라면 그 소신대로 계속 예배드리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후나 저녁예배를 없애고 싶냐고? 가족과 함께하라고. 아니, 주일 하루는 가족과 외출도 하고 외식도 하면서 함께할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주말 이틀을 위해 주 5일을 헌신하는데, 그 소중한 이틀 중 토요일 하루는 미뤄둔 개인 볼일을 보고, 주일 오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렸으면 나머지 오후나 저녁 시간은 모처럼 모인 가족과 함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다음 날 출근하든 말든 오후나 저녁에도 예배드리라니, 세상에 이런 잔인한 경우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 가정에서의 신앙과 예배를 강조하면서 정작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주일 시간마저 온전히 교회에서만 머물라니,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확신하건대, 지금도 중요하나 앞으론 가정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오후나 저녁에도 예배드릴 것이 아니라, 주일 오후와 저녁 시간대를 가족이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앞으로 교회가 당면한 과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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