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내가 부목사로 사역했던 교회는 아내가 일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당연하리라 생각하는 걸 첫 문장으로 시작하니 의아할 만도 하겠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교회일수록 사모가 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모의 가장 큰 역할을 남편인 목사가 목회 잘하도록 옆에서 기도로 돕고 내조하는 것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부목사였기에 교회는 아내가 일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담임목사였다면 어느 교회라도 일하는 아내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지닌 이들이 모인 교회는 그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일이 가득한 곳이다. 문제는 그 다양한 일이란 게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눈에 때론 교회가 ‘꼰대 집단’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하리라. 좋은 분들 역시 많으나, 교양과 상식을 갖춘 이들보다 주로 힘 있고 목소리 큰 ‘꼰대’들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안타깝지만 난 수없이 보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회가 당회라고 했던가. ‘당회’란 기관에서 교회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장로회 특성상 당회원인 장로 중 ‘꼰대’가 있다면, 그리고 그가 소위 사회에서 잘 나가는 자요, 고액의 헌금을 내는 자라면 교회 내 그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꼰대는 자신이 꼰대란 걸 모르니 말이다.
내가 졸업한 광나루 장신대만 수백 명, 총회 산하 6개 신학교를 포함하면 천여 명이 한 해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니, 우리 교회에 오시라고 목회자를 모셔가고 존중하는 시대는 지났다. 어느 교회든 장신대 청빙게시판에 부목사를 청빙한다고 게시글을 올리면 수십 명은 날 써달라고 간절함으로 그 교회에 지원하니, 일부 규모 있는 교회는 입맛에 맞게 원하는 나이대와 능력을 갖춘 교역자를 쓰다가도, 또 젊은 교역자를 쓰려고 5년에서 7년 정도 사역 기간을 정해두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목사 수급에 전혀 문제없다. 담임목사로 청빙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면 부목사는 달 따기 정도는 되니, 열악한 대우와 사역 환경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부목사로 처음 사역한 교회 부임한 날, 1부 예배 찬양대 담당이신 장로님 한 분이 부족한 인원을 메꾸려고 아내에게 찬양대로 설 것을 부탁, 아니 지시했다. 부탁은 상대의 의중을 떠보는 과정이 필요하나, 지시는 상대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키는 것이라면, 그 장로님의 행위는 부탁 아닌 지시가 맞을 것이다. 지금의 아내라면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나도, 그리고 아내도 ‘꼰대’ 같은 요구에 저항할 힘이 없을 때였다. 초보 부목사와 아내였으니 말이다. 주중에 일하고, 주일 찬양대 연습으로 피곤한 몸을 마다한 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던 아내는, 아들을 임신하면서 해방되었다. 부목사로 지원하고 청빙 받은 대상은 나다. 아내가 아니다. 그러나 목사와 사모를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일부 성도가 있다는 건 상당히 유감이다. 어쩌겠나. 그땐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사모에게 공예배 참석하는 것 정도는 이해하겠다. 사실 사모를 목사와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청빙 받지 않은 사모의 공예배 참석여부는 본인의 의사에 맡기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성도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사모의 공예배 의무참석에 무언의 압박을 가하니 그 정도는 들어주겠다. 그러나 교역자 수련회에 사모가 꼭 참석해야 한다거나, 담임목사 사모로 주도하는 모임에 부목사 사모가 동참해야 한다거나, 교회 일에 사모가 동원되는 것은 참기 어렵다. 내 아내를 나처럼 교회 직원 부리듯이 하는 교회에는 진저리 난다.
더는 교회 사역에 미련 없으니, 이제야 한마디 해야겠다. 교회에 부목사로 사역하겠다고 지원한 건 나니, 제발 아내는 그냥 편히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