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부자가 될까? 태어나보니 물려받을 돈이 많았거나, 노력해서 자수성가하거나, 범죄로 돈을 모으거나 하면 된다. 태어나보니 부유층 자녀일 가능성은 희박할 테고, 사기 쳐서 돈 모으는 것은 범죄니, 결국 부자가 된다는 건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다. 사업 수완이 좋거나, 영업 능력이 뛰어나거나, 투자의 귀재가 되던가. 머리가 좋아서 법조인이나 의료인이 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다른 말로 부를 추구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그래,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게 정직하겠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은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22:2)
누군가는 부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면, 굳이 그리스도인이 후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이왕이면 부자가 낫다.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 편에 서고 싶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줄 수 있으려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 잔이 채워져 있어야 빈 잔에 따를 수 있지 않겠는가? 나 살기도 빠듯하여 내 코가 석 자라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 이처럼 돈에 대한 성경적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가난한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산다고 오해한다. 가난한 게 거룩할 것 같으면, 받는 자가 주는 자보다 복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부한 것은 거룩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도 물질의 복을 운운하며 물질 얻은 것을 복으로 규정하니, 이것 참 아이러니하다.
태어나보니 가난할 수도 있다. 내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으니, 이런 것으로 믿음과 복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건 잔인하다. 모든 교회가 작을 필요는 없다. 대형교회의 역할이 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 부자의 역할도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