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초대로 주식 투자 모임에 참여했다. 유료 회원제로 운영하는 카페 방장이기에 날 초대하는 게 가능했다. 제법 유명한 경제 유튜브 채널에서 개최한 ETF 관련 투자 경연대회에서 3등을 수상했을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한 분이다. 주로 미국과 유럽 주식에 투자하기에 미국 경제와 기업에 관해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지인에게 그 모임에서 무얼 하는지 물었다. 그냥 서로 얘기한다고 했다. 회원들은 자신의 주식과 경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고 했다. 투자 모임이 처음인 데다 미국 주식에 관해선 아는 게 없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첫 광경은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와 매우 달랐고 이내 긴장감이 몰려왔다. 시끌벅적한 공간에 놓여 있는 테이블 몇 개에 소그룹으로 나눠 앉아서 자신의 주식 노하우 등을 나눌 거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단순했을까? 긴 테이블 두 개가 평행하게 배치하고 있었고, 회원들은 테이블 하나당 각각 5명씩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자리 앞에는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이 놓여 있었고, 방 전면의 커다란 스크린엔 빨간색과 녹색 박스 여러 개가 어지럽게 조합된 핀비즈 맵이 띄어져 있었다. 강대상에선 늘 보던 그 지인이 진행자로 질문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의자에 앉을 수 있었지만 뒤늦게 들어온 이들은 테이블 좌석이 아닌 의자에 따로 앉아야 했다. 20명이 넘는 회원들은 굉장히 진지했고 분위기는 엄숙했다. 눈빛이 그걸 증명했다. 옆에 있는 두 분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으니 대전과 경기도라고 대답했다. 대전에서 온 분은 이번이 두 번째이고 경기도에서 온 분은 다섯 번째라고 했다. 강남에서 모였으니 이들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출발했으리라. 세상에나,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회원들의 질문과 지인의 대답이 이어졌고, 중간중간 회원 간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대여섯 명의 회원이 주로 미국 산업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얘기했다. 자율주행이 어떻고, AI가 어떠하며, 항공산업과 자동차 산업은 어떠한지에 관한 얘기도 오갔다. 퀄리티가 어떠하며 밸류에이션이 어떠한지에 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부끄럽지만 테슬라 얘기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FSD(Full Self Driving)란 용어도 거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모임은 점심 즈음에 한번 쉰 것을 제외하면 쉼 없이 이어졌다.
미국 산업과 각 기업에 관한 해박한 경제 지식을 나누는 이들을 보며 나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나름 스윙 매매로 제법 높은 수익률을 거둔 내가 보기에도 이들의 실력은 대단해 보였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하찮게 느껴졌다. 문득 이들의 직업이 궁금해졌다. 만약 투자 관련한 본업과 상관없는 이가 꽤 많은 시간을 들여 미국 경제와 기업을 분석해서 매수한 개별 종목의 수익률이 지수(인덱스)에 투자한 그것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작다면 현타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각자 기업에 관한 지식을 뽐(?) 내고 있지만, 지수 수익률보다 앞선 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은가? 워런 버핏과 헤지펀드 매니저들 간 내기를 벌였다. 버핏은 앞으로 10년간 S&P 500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은 펀드매니저에게 50만 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워런 버핏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S&P 500 인덱스 펀드는 연평균 8.5%, 프로테제의 헤지펀드는 평균 2.4%에 그쳤다고 한다.
주식은 예측이 아닌 대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말 여가시간까지 희생하며 공부한 기업 종목의 예측 수익률이 지수 수익률보다 훨씬 앞서지 않는다면 가성비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저렇게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나 살기도 바쁜데 마치 애널리스트처럼 애플이니 테슬라니 IBM이니 하는 미국 기업의 향방을 분석하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인처럼 제대로 공부해서 큰 수익을 내지 않는 한, 어설프게 공부해서 지수 투자 수익률을 앞서지 못한다면 공부 안 하느니만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지인은 본업이 아닌데도 하루 몇 시간 이상을 기업 분석하는데 할애하고, 실적 발표 시기엔 하루 10시간 정도 공부한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각자 선호하는 매매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난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는 기본적 분석보다 차트를 분석해서 짧은 시간 매매하는 기술적 분석을 선호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우상향 한다고 믿는, 그리고 특별히 분석할 필요 없는 지수(S&P 500이나 나스닥 등)에 코스트 에버리징(Cost Averaging)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리고 장내채권으로 연 7% 이상의 고정 수익률을 얻는 게 훨씬 마음에 든다. 결국 돈 벌려고 하는 공부가 아니던가?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처럼 공부할 자신이 없다. 요즘 기억력도 감퇴하는데 팔란티어 등에 관해 공부한다고 해서 잘 기억해 낼 자신도 없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앞으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지금처럼 지수와 채권에 투자하고, 스윙매매로 용돈 좀 벌어 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