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 빠진, 그럼에도 소중한 것에 대하여)
조선 십삼 도(道) 방방곡곡 명태 없는 곳이 없다. 아무리 궁벽한 산골이라도 구멍가게를 들여다보면 팔다 남은 한두 쾌는 하다못해 몇 마리라도 퀴퀴한 먼지와 더불어 한구석에 놓여있다. 조선 땅 백성이 얼마나 명태를 흔케 먹는지 미루어 알리라. 참으로 조선 사람의 식탁에 오르는 것으로 명색이 어육(魚肉)이라 이름하는 것 가운데 명태만큼 만만한 것도 별반 없을 것이다. 굉장히 차리는 잔칫상에도 오르고.
“쯧, 고기는 해 무얼 허나! 그 명태나 한 마리 사다가…….” 하는 쯤의 허술한 손님 대접의 밥상에도 오른다.
사람이 먹고 산 사람 대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經)읽는 경상(經床)에도 명태 세 마리는 반드시 오르고, 초상집에서 문간에다 차려놓는 사잣밥상에도 짚신 세 켤레와 더불어 세 마리의 명태가 반드시 오른다.(그런 걸 보면 귀신도 조선 귀신은 명태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언젠가 시중 마트에 국내산 명태는 씨가 마르고 러시아산 명태가 그 자리를 꿰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온난화로 해수온도가 상승해 한류성 어종인 명태의 이동 경로가 달라졌고, 무분별한 포획 등도 원인이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명태는 요즘 대부분이 러시아산이라 합니다. 명태가 굴비나 갈치 마냥 밥상에 올라 환영받는 생선도 아니죠. 그러나 명태가 가진 수많은 이름을 꼽아보자면 그리 허투룬 식재료도 아닙니다. 생태, 동태, 황태, 코다리, 노가리, 먹태, 짝태 등 모두 명태를 칭하는 말이며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대표적인 생선으로, 국내 생선 소비량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유명한 채만식의 ‘명태’는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발표한 글입니다. 일제 탄압이 극렬했던 시기였고 친일적인 글을 써야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식민 치하 지식인의 자괴감과 명태가 한국 식문화에서 가진 정서적 의미를 함께 녹여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배를 타고 내장을 싹싹 긁어내어 싸리로 목줄띠를 꿰어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랐다. 눈을 모조리 뺐다. 천하에 이에서 더한 악형도 있을까. 모름지기 명태 신세는 되지 말 일이다.’
이 부분은 명태를 다루는 모습을 사실감 있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단순히 명태 모습만을 표현했을까 보다는 1940년대를 사는 한국인의 비관적인 모습을 비유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명태의 모습에서 당시 한국인의 처지가 그대로 오버랩 되는 것이죠.
그런가 하면 이 수필은 구수한 사투리와 반가운 구어체, 맛깔난 표현이 가득해 읽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합니다.
망치로 두드려 죽죽 찢어서 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막걸리 안주로는 덮을 게 없는 것이 명태다. 쪼개서 물에 불렸다 달걀을 씌워 제사상에 괴어놓는 건 전라도 풍속, 서울서는 선술집에서 흔히 보는 바 찜이 상(上)가는 명태 요리일 것이다.
잘게 펴서 기름장에 무쳐 놓으면 명태자반이요, 굵게 찢어서 달걀 풀고 국 끓이면 술국으로 일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