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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이어 Feb 07. 2019

스토리칼럼_흥부는 어떻게 설을 쇠었을까

미국에서 사는 지인이 설 명절에 맞춰 귀국했다. 큰댁에서 설을 지내려고 열심히 일정을 맞춰 왔는데 큰형님이 당황하더란다.


“명절에 식구들 안 모인 지 오래야. 다들 여행을 가거든.”


결국 그는 조용히 혼밥을 하며 설을 쇠었다. 오랜만에 고국에서 지내는 설이기 때문에 떡국은 먹고 싶었다. 설날 아침, 식탁에 홀로 앉아 햇반과 컵떡국을 먹으며 그는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밥맛도 좋고 쌀떡국 맛도 좋았다. 그러자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설날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문득 흥부가 떠올랐다. 형님은 오지 말라 하고, 자신은 혼밥으로 설을 쇠고 있으니 마치 (박 터지기 전의) 흥부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흥부는 명절을 어떻게 쇠었을까? 이집 저집에서 얻어다 차린 간편식(HMR)으로 쇠었겠지. 제비가 로또를 갖다 주지 않았다면, 그 많은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뿔뿔이 흩어져 알바나 막노동을 하며 흥부의 손주들을 낳았겠지. 아, 그런데 로또에 당첨된 뒤 흥부네는 세금을 얼마나 물었을까? 졸부가 된 흥부의 자식들은 얼마나 방탕했을까? 유산 싸움도 장난이 아니었겠지? 무엇보다 애들이 많으니 성질 센 아이가 분명 있었을 테고. 가난했을 땐 가난 때문에, 부자가 된 뒤엔 졸부 2세들로서 별의별 행태들이 일어났겠지… 등등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혼밥으로 설날 아침을 정리하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아, (박 터진 뒤의) 흥부도 참 골치 아팠겠다.


혼밥과 혼떡국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굳이 외식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하여 인터넷 장을 봤다. 각종 밥과 반찬을 주문하려는데 로켓배송, 샛별배송, 새벽배송이란 단어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세상에, 냉장음식도 아니고 당장 먹을 것도 아닌데 왜 신새벽 별을 보며 로켓으로 배송한단 말인가. 새벽에 먹어야 더 맛있는 것은 우유와 계란밖에 더 있는가? 신기했지만 궁금증을 풀 수는 없었다.


상온 식품을 왜 눈 부비고 일어나 받을까? 깊은 산속 옹달샘은 새벽 물맛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겠다 치고… 여기저기 물어도 보았지만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흥부가 명절을 보내는 방법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원래 설은 일가친척들이 큰집에 모여 단체로 제사를 지내는 명절이었다. 요즘은 일가도 몇 안 되고,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드물다. 그는 명절 쇠는 방식이 새롭게 바뀌고 있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 그러면 안될 이유가 있을까? 그는 미국에서 사는 동안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웠기 때문에 그러면 안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변화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2019년 설을 보냈다.


더바이어 임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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