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
위로는 어떤 색깔로 다가오는가?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은 말했다.
“뜯어먹기 힘든 빵이지만 맛은 풍부하다오.” 빵 냄새를 맡은 그들에게 그가 맛을 보게 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그건 형광등 불빛 아래로 들어오는 햇살 같았다. 그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국 단편 소설의 거장인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에 실린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은 아들을 잃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람이 사람에게 해주는 위로가 얼마나 가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카버 특유의 건조하고 담담한 필체로 들려줍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부부는 8살 난 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생일 케이크를 빵집에 주문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며칠을 보내다 결국은 죽게 됩니다. 이를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밤마다 케이크를 가져가라 독촉전화를 걸었고,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부부는 빵집 주인을 찾아가 화를 쏟아 냅니다.
그제야 사정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사과하고 부부에게 자신이 만든 따뜻한 빵을 대접하죠. 그리고 부부는 빵집 주인이 만든 빵을 먹으며 신기하게도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레이먼드 카버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 속 아이를 잃은 부부가 빵집에서 위안을 얻게 되는 과정이 일종의 영성체 의식 같은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고 여기듯이 영성체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 통하듯 다른 이와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여기죠.
작가는 빵집 주인을 자식도 없이 외롭고 힘들게 중년을 보낸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자식 잃은 슬픔을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저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식 잃은 부부를 위로합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탁월한 번역의 원문은 ‘a small, good thing’입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문체는 굉장히 간결합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열해 놓았기 때문에 등장인물 사이에 독자도 한 자리 끼어 듣고 있는 기분이 절로 들게 하죠. 줄거리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극적이고 아름다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마지막 책장을 덮어야 비로소 그 여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바이어 이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