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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이어 Mar 21. 2018

인터뷰_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

“농안법은 도매법인들의 독과점을 인정한 법이 아닙니다”

박현출 사장은 취임 후 3년간 가락시장 현대화에 매진했다. 현대화작업은 시설현대화와 함께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소프트웨어의 현대화도 포함된다. 박현출 사장을 만나 가락시장 현대화에 대한 복안을 들었다.



현대화 과정에서 하드웨어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달성이 쉽지만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듯합니다.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니까요. 


농업과 식품은 R&D에서 발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유통 쪽에서는 1976년에 만들어진 농안법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시점인데도 말이죠. 


특히 거래방식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지금의 경매 방식을 고수할지, 아니면 선진국처럼 정가수의매매를 도입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시설현대화도 경매시장에 맞춰 설계하는 것과 수의거래에 맞추는 게 상당히 다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21세기 도매시장에서 40년 전에 만든 경매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과연 옳을까요?



시스템을 바꾸려면 희생이 따르게 마련인데요.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죠. 오랫동안 독점적 지위를 행사해온 도매법인들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현재 상장거래 품목이 51개, 비상장거래품목이 117개입니다. 상장거래 품목은 도매법인을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는 품목입니다. 나머지 117개는 중도매인과도 거래가 가능합니다. 경쟁이 가능한 거죠. 그러면 독과점이 원칙이고 경쟁이 원칙이 아니라는 건가요? 이게 농안법이 의도하는 바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문제는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출하자인 농민들이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느냐일 겁니다. 40년 전에는 출하자들의 협상력이 부족했던게 사실입니다. 그걸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게 농안법이고요. 지금은 달라졌다는 말씀이지요?


농안법 제정 당시에는 법의 보호가 고맙고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도매법인 없이 거래할 수 있을 만큼 출하자 조직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유통 판로도 다양해졌고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상품을 생산해도 특정 가격에 팔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도매법인이 가격 형성에 개입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와서도 농민들은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경매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아전인수고 발전없이 현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편에선 수의거래는 가격 형성과정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개적이냐 그렇지 않느냐 차이입니다. 중도매인 거래가 가능해진 고구마를 예로 들어 볼까요. 중도매인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출하자들이 중도매인 거래를 더 선호했습니다. 수수료가 없고 다양한 혜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도매법인들이 출하자를 유치하기 위해 배송서비스 등 다양한 혜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도매법인 거래 60%, 중도매인 거래 40%가 안착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출하자가 혜택을 본거죠.



시장 합리화와 효율성을 위해 시장도매인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럼 지금까지 시장을 선도해온 도매법인들은 달라진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그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죠. 시장 효율화를 위해 방안을 제시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한다면 공사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협의할 것입니다. 그동안 거래수수료에 만족했다면 이제는 도매법인의 미래를 고민해야 합니다.


수산시장이 좋은 예입니다. 지난 10년간 도매시장 거래량은 반토막이 났었습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도 법인도 변화가 필요했죠. 수산법인도 이 같은 사실에 주목하고 공사와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공사는 위탁한 만큼만 수수료를 받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도매법인이 주도적으로 거래한 물량은 수수료를 4%로 매겨도 괜찮지만 중도매인이 거래한 물량의 수수료는 점차적으로 낮춘 것입니다. 그 결과 현재 수산법인의 전 직원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산지로 뛰어다닙니다. (수산법인은 2016년 4월 17일 중도매인의 상장거래 병행 이후로 거래량이 약 1727톤에서 약 3306톤으로 두배 가량 신장했다.)



새로운 제도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도입을 하려면 얼마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서울공사는 농민과 소비자를 위해 어떤 시스템이 좋은지 선택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시장이 ‘A는 B와만 거래하라’ 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큰 그림에서 가락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과거 시장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기능이 주였습니다. 이전에는 시장 전체 면적의 90%가 거래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물류가 중심입니다. 선진국 도매시장에는 단지 거래만을 위한 공간은 없습니다. 모바일, 컴퓨터, 전화 등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거래는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오프라인에서는 물류를 담당하는 거죠. 때문에 시장에는 냉동, 저온 창고, 처리장, 수요처 요구에 맞는 소분, 직배송 센터 등만 남는 겁니다. 완공될 가락시장은 현재보다 더 많은 창고, 가공처리장, 직배송장을 배치할 계획입니다.


경매시스템을 고수하면 거래를 위한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경매만 해야 한다면 가락시장은 낙후된 시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을 고려해 1층은 경매, 2층은 수의거래를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물론 거래 공간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 변화가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물류도 차가 들어와 다양한 품목을 구매하면 ICT를 사용해 효율적으로 특정 위치로 모이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온 냉동, 저온처리 등의 공간이 부족합니다. 만약 변화가 가능하다면 많은 공간을 상품을 위생적이고 고품질로 유통하는 데 할애할 수 있습니다. 모든 변화를 완벽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배송 시스템은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게 구성 중입니다.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은 >>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부동산법학 석사를 취득했다. 행정고시로 공직을 시작해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국장, 농업정책국장, 식품산업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농촌진흥청장을 역임했다.


2018년 2월 15일자 더바이어 299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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