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백신 」 저자 홍선경
Q.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시골 보건진료소에서 환자 진료와 건강사업을 20년 넘게 해 왔으며, 뒤늦게 진정한 독서와의 만남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갖게 된 <독서백신>의 저자 홍선경입니다.
Q. 시골 보건진료소에서 일하면서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셨더라고요.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17년 월간문학 시 부문에서 <청문회에 나온 개구리>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정체성이 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진료소에 새로 자동안마기가 들어온 날이었어요. 봉산 할머니께서 자동안마기 마사지를 받고 나시더니
“오메 오메 시원헌 거
이런 요물 같은 것이 어디 있다가 인제 왔당가?
정말이제
오십 년 산 신랑보다 훨 낫당께
이참에 방구들 골 샌 영감땡이 냅다 치워불고
요로코롬 내 맘 알아서 문질러주는
이놈 갖다가 살아불믄
정수리에 새싹이 돋아 불것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뇌리에 번갯불이 스치면서 ‘유레카 유레카’를 외치며, 지역주민들 삶의 이야기를 시로 쓰겠다고 ‘사랑방진료소’라는 이름으로 풍자와 해학이 있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Q. <독서백신> 이 책만의 특징이 있다면?
- 세 가지로 말하겠습니다.
첫째, 단순한 지식을 모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지식을 결합하고 요약하여, 내게 필요한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한 후,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몸으로 습득하고, 긴 시간 숙성되어 저를 필터 삼아 온전히 뚫고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감동과 울림이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독서백신》은 지식의 단순한 결합 차원의 통합을 넘어 내용을 섞어서 새로운 맛을 내는 융합이며, 심지어 섞어진 것들의 원래 근본 속성 일부를 바꾸어 새롭게 만든 ‘통섭’이라고 까지 감히 생각해 봅니다.
(보건진료소장+코로나+약 처방)*독서 = 독서백신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셋째, 이 책은 제가 진정한 독서와의 만남을 통해 독서가 깊고 은밀하게 말해준 것들, ‘독서는 약이다’로 독서의 약효를 8가지 소개하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독서백신을 4단계로 처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Q. 20대 이후의 세월은 ‘행복찾기’의 시간이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시간을 보내신 건가요?
20대 이후에 저의 삶은 행복을 찾아다니는 파랑새였습니다. 스펙쌓기가 행복 쌓기인 줄 알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원을 비롯해서 인터넷 동영상으로 미국간호사 면허증을 땄고, 운동처방사, 사회복지사, 보건교육사 등 자격증 따기에 혈안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부모가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올인했고, 아이들과 갈등이 생기면서 신앙에도 몰입했지만 노 땡규였습니다. 그러나 사십이 넘어 시작법부터 공부하여 시를 쓰고 시인 등단도 했지만, 나의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진정한 독서와의 만남으로 나를 보게 되었고, 나를 알게 되면서 앞으로 내가 나답게 살아가야 할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Q. 풀 먹는 호랑이로 살았다는 것의 의미
풀 먹는 호랑이는 저의 삶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내가 없는 나’를 비유한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쓰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 호랑이였다. 그렇지만, 양띠 해(年)에 태어나 순한 양 (羊)이라고 했다. 그럭저럭 어린양은 사는 데 크게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양이니까 풀을 뜯어 먹어야 했고, 울 때도 ‘매에–매에’라고 울어야 했다. 누구도 풀 아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웃거나 울 때는 ‘매에–매에’가 아니라, ‘어-흥’하고 울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양인 듯, 염소인 듯, 개의치 않고 풀을 뜯어 먹고 살았다.
양은 점점 커갈수록 피 묻은 고깃덩이에 입맛이 당기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지나가던 쥐를 날카로운 발로 목을 짓밟아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양은 풀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왜?’ 풀 먹던 호랑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풀 먹는 양인가? 아니면 풀 먹고 사는 호랑이인가?
자신이 양이 아니라 호랑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호랑이를 양으로 살게 했을까?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어찌 호랑이 삶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말해주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의문 속에서 시작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이 허무하고 외로워지고, 빈껍데기 같은 공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가 없는 허수아비 같은 마음이다. 큰 오류에 빠진 느낌이 든다. 내가 없는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의 뿌리가 어디인지 모르고 살아가는데 어찌 차오르는 충만감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뿌리 없는 나무는 흔들리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렇게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고독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데서 오는 슬픔입니다.
Q. 독서에 있는 작은 승리의 기쁨이란
제게 독서가 주는 작은 승리의 기쁨들은 너무도 많지만 크게 세 가지를 말한다면, 책을 읽으면서 영혼을 뒤흔드는 문장을 발견하는 것입니다(사유의 씨앗을 얻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유의 씨앗을 가지고 사유의 꽃망울들이 맺히고 맺어 하나씩 만개할 때의 기쁨입니다(꼬리에 꼬리를 문 사유들 속에서 나의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유로 얻은 생각을 제 생활 속에 실천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새로 갖게 된 생각을 직접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독서가 주는 작은 승리의 기쁨 중 내가 경험한 것 이외의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직접 책을 읽으면서 느껴보는 것이었습니다. 책 2부에서 언급한 끌어당김의 법칙, 점점 더 법칙, 디드로효과, 독서현상, 독서 황홀경, 메칼프의 법칙(지식의 분열) 등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은 책을 통해 재확인하고, 몰랐던 것들은 직접 적용해 보면서 독서가 주는 작은 승리의 기쁨들을 느껴보았습니다. 독서가 주는 기쁨들은 작은 것에서부터 본질적인 차원의 것까지 너무도 많습니다. 독서가 주는 작은 기쁨들을 다양하게 느껴볼수록 독서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Q. 독서에 있는 임계점이란? 독서에 있어서 넘어야 하는 3개의 임계치
강연이나 유튜브 또는 책을 읽고 어떤 것(독서, 운동, 어학 등)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불꽃을 피우는 단계’(열정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열정의 씨앗만으로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목표를 결코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더 타오르도록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라는 ‘절대의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시간을 갖지 않고는 불꽃은 꺼지고 맙니다. 열정을 가지고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임계점에 올랐을 때, 그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내 안에 내제화되면, 통제력을 갖게 된다.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많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고 즐겁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서의 임계치를 넘는다는 말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을 통해서 저는 세 가지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독서의 분량’을 숫자로 굳이 규정해야 한다면, 저의 경험으로 적어도 200권의 책을 권한다. 인문학 도서 120권, 기타 도서 80권 정도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독서의 깊이’이다. 책이 말하는 밑바닥에 흐르는 정신의 맥을 느껴보고 사유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글쓰기는 독서를 한층 깊이 있게 한다.
셋째, ‘독서법’이다. 서점에 많은 독서법이 소개되어 있다. 시간을 들여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을 찾아야 거부감이 없이 오래갈 수 있습니다. 독서법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독서의 맥락과 연결성이다. 파편화된 지식은 힘을 갖지 못한다. 독서는 맥락으로 읽고, 맥락으로 요약했을 때 독서가 주는 효과는 몇 배 커진다. 내용의 꿰어짐, 일관성, 맥락을 중심으로 읽을 때 지식의 체계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독서의 연결성이 있어야 창의성이 있다. 독서를 나와 세상과 연결의 끈을 가졌을 때, 다른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생각 근육을 키운다는 것의 의미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된 독서의 양으로 한다.라고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력>에서 말한다. 생각 근육을 키운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많은 책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독서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유입니다.
우리의 지식이 분열되어 가듯이, 형성된 의식들도 분화되어 집니다. 책은 기존의 사고에 도전하는 자극제가 되고, 자극제는 기존의 사고를 흔들고, 그 안에서 타협과 조율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식이 형성 된다. 또다시 책을 통한 자극으로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복잡화된 의식이 되고, 또 반복되는 의식들은 고도화된 의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런 사유의 과정에서 생각 근육이 키워지는 것입니다.
Q. 독서가 삶의 혁명제인 이유
제가 경험한 것을 진주조개의 삶으로 빗대어 이야기
해일로 들이닥친 파도에 바위섬은 상흔으로 얼룩지고, 모래 틈새로 고개 내밀던 조개도 거센 파도에 앞니가 깨진다. 요새(遼塞) 같은 보호막이 깨진 것이다. 파도에 내몰리던 작은 모래알은 피난처를 찾아 조갯살로 파고든다.(자극혁명) 깨진 이는 기존 세계의 도전이고 자극입니다.
깨진 틈으로 들어온 작은 알갱이는 불청객이기에 조개는 몹시 불편하고 예민해진다. 이물질을 몰아내기 위해 조개는 흰 거품을 뽀글뽀글 뿜어내 보지만 박으로 밀어내지 못한다. 낯선 손님을 맞아들여야 내가 살 수 있다. 마음을 바꿔야만 한다. 낯선 손님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낯선 알갱이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의식혁명)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시작된다
조개는 혼자일 때보다 삶의 무게는 무거워졌지만 따뜻함으로 마음이 가득 찬다. 조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진주조개로서의 삶을 꿈꾸게 된다. 진주조개는 자기가 누구인지, 진주조개다운 삶을 고민한다. 그리고 밤이면 스스로 빛을 내는 ‘야명주’를 꿈꾸게 된다. 커진 꿈으로 더 깊은 바다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자아혁명)/자신을 알고 자기 삶을 찾는다
조개는 야명주의 푸른빛을 위해 거친 풍랑에 맞서며 깊은 바다로 향한다.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는 이제 자신을 규명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상처로부터 거부할 수 없어 받아들였던, 상처 깊은 곳에 감추어 키워야 했던 작은 알갱이가 푸른빛을 품은 야명주가 태어난다(삶의 혁명)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진주조개의 삶은 혁명의 과정이다. 파도에 깨져 생긴 상처가 영혼을 깨는 ‘자극’이 되고, 깨진 영혼으로 작은 돌멩이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생각의 변화는 ‘의식의 혁명’이 된다. 변화된 의식으로 자신을 ‘진주조개’라 명명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탈바꿈하는 ‘자아혁명’으로 도전하고 행동하는 삶은 마침내 푸른빛을 품고 저절로 빛을 내는 야명주로서 ‘삶의 혁명’을 이루게 됩니다
저는 책을 통해서 내가 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았고,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했으며,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살아야 하는 길을 찾았고, 삶의 변화로 진정한 행복을 찾았고, 이렇게 책까지 쓰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서는 삶의 혁명제라고 말한 것입니다.
Q. 독서백신으로 독서항체를 만드는 법
<독서백신>은 독서의 개념과 독서가 줄 수 있는 총체성을 바탕으로 읽기·글쓰기·말하기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세 가지 영역(읽기 글쓰기 말하기)의 교집합에서 독서가 주는 탁월함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독서 백신을 처방한다고 모두가 독서항체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독서백신 처방은 ‘절대의 시간’을 견디어내어야 독서항체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독서항체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습관으로 생활로 자리 잡게 되는 것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Q. 구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독서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서는 내게
내가 바람이란 것을
바람이 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고,
계절에 따라 지형에 따라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독서는 내게
바람은 비가 될 수 없다고...
바람으로 바람의 길을 찾아,
바람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의 이유라 했다
≪독서백신≫은 독서를 통해 가치 있는 삶의 변화을 찾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독서를 통한 자극으로 의식의 변화로 자아혁명으로 가치 있는 삶의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가 독자의 마음을 열게 할 것입니다.
▶ 홍선경 저자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삶이 바뀌는 독서의 임계치 I 홍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