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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Dec 05. 2022

코로나19시대 엄마로서 생존하는 법

「 팬데믹? 엄마니까 버텨봅니다 」 저자 박현주 

Q. 저자소개


안녕하세요? 독서와 글쓰기로 모든 나를 응원한다와 팬데믹? 엄마니까 버텨봅니다를 썼어요. 그리고 <박엄마의 10분 서재>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엄마 바켄 박현주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Q. 코로나19의 일상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계기


저는 <팬데믹? 엄마니까 버텨봅니다>를 쓰기 전부터, 그러니까 2018년도부터 글을 썼었어요. 일명 치유의 글쓰기라고 하죠?! 저도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게 저를 치유하기 위해서였어요. 저는 글을 쓰기 전까지 7년 동안 마음의 방황을 했었는데요. 그 마음의 방황은 20대 후반부터 시작됐어요. 그때 제게 던졌던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게 방황의 시작이었고요. 답을 내리지 못한 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엄마가 되었죠. 답을 내리지 못하고 지낸 시간이 7년차에 접어들 무렵에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방황을 매듭 지을 수 있었어요. 그 책은 장인옥 작가님의 <일일일책> 이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경험했던 감정은 평생 못 잊을 거 같아요. 막 마음이 쿵쾅거리면서 터질 거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책을 읽고 난 후부터 오랜 시간 제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그 이후에 더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상처들을 하나 둘 꺼내서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쓰다보니까 2018년도에 독서와 글쓰기로 <모든 나를 응원한다>를 출간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도 계속 글을 썼어요. 제 마음을 돌봐야 제가 중심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선 쓸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브런치 작가가 됐고, 브런치에 주 1회 글을 올렸죠.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요.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다보니까, 코로나 시기에 처한 저의 상황을 적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장기간 가정보육을 한 순간에도, 어떻게든 새벽에 일어날 수 있으면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적었거든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코로나에 관련한 글이 쌓이게 되었는데요. 어떤 큰 틀이 보이더라고요. 코로나 시대를 헤쳐가는 나의 이야기, 주위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요.


틀이 보이니까, 아~ 이거 책으로 내도 좋겠다 싶어서 투고하게 되었죠.




Q. 방황을 매듭짓게 한 <일일일책> 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요


<일일일책>은 주부가 독한 마음으로 독하게 책을 읽으면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에요.


물론 그 전에 저도 여러 책을 읽었어요. 근데 이렇다할 책을 만나지 못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던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이질감도 있었고 거리감도 있었고요.


근데 <일일일책>의 장인옥작가님과 제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주부라는 점, 삶의 목적이 없었다는 점,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무기력했다는 점. 저도 그랬거든요.


결혼하고, 아기 낳고 나서도, 저만의 꿈이 사라지니까 삶이 무지 지루하고, 사는 이유를 모르겠고 그랬거든요.

근데 <일일일책>을 읽다보면 작가님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책 속의 배움들로 내면이 점점 단단해지면서 주도적인 삶을 살기 시작하세요. 제가 전율이 흘렀던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었어요. 책을 통해 변하는 모습!


저도 어쨌든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작가님처럼 분명 변하는 게 있을거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잡생각이 사라지잖아요. 책 읽는데 집중해야 하니까요. 그것도 너무 좋았어요. 책을 읽으면서 배움은 배움대로 얻고, 잡생각도 사라지니까 중심을 잡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일일일책>을 읽고 난 후부터 저의 독서 성향도 바뀌었어요. 명사들의 책이 아니라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들이 쓴 책을 더 읽게 되더라고요. 평범하기 때문에 이질적이지 않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그 만큼 위로받고 배우는 바도 많더라고요.




Q. 코로나19 이후 엄마로서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두 가지가 있어요. 정말 상반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요.


하나는 악착같이 시간을 붙잡는 거, 또 하나는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 거.. 이렇게 두 가지에요. 

첫 번째부터 이야기를 하자면요. 코로나가 닥치기 전엔 저의 일상은 순조롭게 지나갔어요. 첫째와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저는 저 나름대로의 일상을 보냈죠. 살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죠. 근데 코로나가 저의 일상을 모두 흔들어놨어요. 언제 가정보육이란 시한폭탄이 제 앞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장기간이든 단기간이든 가정보육을 해야 하거나, 갑자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할 때면 제게 주어졌던 시간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또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다 보니까, 제게 시간이 생기면 1분 1초가 너무 소중한 거예요. 어떻게든 헛되게 쓰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생각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더 확고해졌어요. 그렇게 1분 1초를 사투하면서 제 시간을 사수했기 때문에 <팬데믹? 엄마니까 버텨봅니다!>도 출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두 번째는요.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 건데요.


제가 하루의 계획을 정해놔도 가정 보육의 변수로 엎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근데 이건 엄마가 되면서 쭈~욱 있었던 일이긴 해요. 근데 코로나 가정 보육 때는 강도가 더 쎘죠. 데드라인도 모르고, 빈번히 찾아오고, 장기간 지속되기도 하다보니까 그 전에 비해 더 많이 계획이 엎어졌죠.


그때마다 진짜 힘들고 서럽고 속상하고 억울했어요. 서러운 이유는 어쨌든 저는 엄마기 때문에, 살림에, 육아에 피해가 안가는 선에서 글을 썼고, 유튜브 작업을 했어요. 시간을 만들어야만 제가 하고자 하는 바를 꾸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잠을 줄이고, 밥을 거르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려고 아등바등 거렸죠. 근데 가정보육을 하게 되면서 할 수가 없는 거죠. 아이들과 집안에서 붙어 있어야 하다보니까 할래야 할 수도 없고,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치이다 보니까 체력이 축 나서 새벽에 일어날 수도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새벽에 일어나서 제 시간을 가지면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해서 육아에 전념할 수가 없더라고요. 피곤하다 보니까 아이들에게 쉽게 신경질을 내게 되고요. 또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하루의 작업 계획을 다 잡아놨는데, 책상에 앉고 10분도 안되서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서 하원해야 한다는 연락도 받았었거든요. 이런 저런 계획이 엎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다보니까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내려놔야 저도, 아이들에게도 좋다는 걸요. 내려놓으니까 속상이야 했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봤을 때는 더 이득이더라고요. 그래서 코로나 시기에는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놓는 것의 중요성도 코로나시기에 처절하게 배웠죠.







Q. 첫째아이 학교에 밀접 접촉자가 생겼을 때 당시 상황 & 조치


그때가 2021년 7월이였어요. 4차 대유행이 시작될 때였어요. 델타 변이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변이가 등장한 시기였죠.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60% 강했기 때문에 치명적 이였죠. 수도권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매우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기존 바이러스보다 델타 바이러스가 2배 이상 검출 되고 있었죠. 


그 전까지의 대유행이라고 불러지는 상황들은 확진자 수가 서서히 늘었어요. 근데 4차 대유행은 달랐어요. 2021년 7월 5일 확진자 수는 746명이였어요. 근데 7월 6일 확진자 수는 1,212명으로 껑충 뛰어 올랐죠. 그 시기엔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또 확진자 수가 1,000명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으니 TV에서 기사에서 얼마나 시끌시끌했겠어요.


모두가 뒤숭숭하고 어수선했죠. 그러던 2021년 7월 8일 첫째네 초등학교에 공지가 떴어요. <코로나19 관련 사항 안내>라는 제목이었어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자주 보던 제목이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공지를 무심히 눌러 넘기려던 그 찰나에 눈에 확 끄는 단어를 본 거에요.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었죠. 


“밀접 접촉자”

“전원 귀가 조치”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근데 다행히 같은 학년은 아니였고, 6학년이었어요. 6학년 4반에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학생이 있었던 거죠. 그때 처음 이였어요. 코로나 발현 이후로 아이 초등학교에 밀접 접촉자가 생긴 게요. 학교에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졌냐면요. 4교시 수업 중에 보건소로부터 A학생이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임을 통보받았대요. A학생은 즉시 선별 검사를 받으러 갔죠. 같은 반 학생들도 전원 귀가 조치를 받았고, 자택에서 대기했죠. A학생 결과에 따라 6학년 4반 학생 전원의 코로나 검사 진행 여부가 결정되는 거죠.

4교시 끝나서 검사했으니까 대충 1시쯤에 검사했다고 봐야겠죠. 결과는 다음날 9시쯤 나왔고, 다행히 음성 이였고요. A학생은 음성이었지만 자가 격리가 시작됐고, 그 외의 학생들은 등교했죠.




Q. 코로나로 뚫린 아동 돌봄


책에는 시끌시끌했던 ‘인천 라면 형제’ 와 대전에서 일어난 ‘자매 화재 사건’을 다뤘어요. 모두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죠. 유치원과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어린 아이들만 집에 있다가 배고파서 요리하다가 일어난 화재들이거든요. ‘인천 라면 형제’ 사건은 진짜 모르시는 분들이 안계실거에요. 그에 비해 대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부모가 없는 사이에 자매가 소시지를 먹으려다 요리하면서 발생했어요. 식용유에 물을 부으면서 불꽃이 일었고, 불이 치솟자 놀라서 수돗물을 더 들이 부어버려서 불이 오히려 커져버린거죠. 그나마 다행인 건 화재경보기가 울리면서 재택근무 중이던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해결 될 수 있었어요. 이렇듯 코로나가 엄습하면서 아동끼리 지내는 비율이 올라가면서 사건, 사고도 증가했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부모로써 너무 안타깝고 착잡하더라고요.


그때 정부는 긴급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가족 돌봄 휴가를 늘리는 등 여러 정책을 마련했지만, 사실 제한점이 많은 게 사실이거든요. 정책이 나왔다고 해도 회사 분위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요. 이건 산모 단축 근무나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쓸 때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Q.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태권도 관장님의 분투이야기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저도 학생이었고, 많은 선생님을 만나봤지만, 책에 나온 태권도 관장님처럼 온 마음을 다해서 아이들을 위하는 선생님은 정말 처음이었단 말을 하고 싶어요. 사실 저희가 올해 초에 이사를 와서 그 태권도를 그만둬야 했는데요. 아이도 저도 너무 슬펐어요. 


거기 관장님은 여자 관장님이셨는데요. 정말 세세하게 하나하나 챙기시는 분이셨어요. 그건 코로나시기에 빛을 발했어요. 분명 관장님에게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코로나로 거리 두기 단계가 생기면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었거든요. 도장도 예외는 아니었죠. 왜냐하면 코로나 때문에 도장을 그만두는 애들도 있었고, 장기간 단기간 휴관도 여러 차례 해야 했기 때문이죠. 


한 달 휴관을 하게 되면 회비를 받을 수가 없잖아요. 그럼 도장을 꾸려 가는데 드는 비용에 차질이 생기는 거니까요.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라면 진짜 휘청휘청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에도 관장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똑부러지게 도장을 운영해나갔어요. 시시때때로 바뀌는 정부 방침에 맞춰 신속하게 대처했고, 실내 체육 시설의 단계별 인원 제한 역시 재빠르게 따랐죠. 그래서 매 타임 수련 인원이 9명이었다. 18명이었다가, 10명 이렇게 유동적으로 바뀌었죠. 


사실 이렇게 정부 방침에 맞춰서 도장을 운영하는 것도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잖아요. 근데 관장님은 그 이상을 하셨어요. 힘이 나는 영상이나 문구가 있으면 밴드에 올려서 부모들을 격려했고, 면역에 좋은 진피차를 구입해서 손수 포장한 후 나눠주기도 하고, 소독제를 공병에 일일이 담아 코로나 접근금지 부적을 붙여서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어요. 어린이날엔 손수 의뢰해서 만든 마스크와 마스크 스트랩을 만들어서 나눠주셨어요.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감동한 에피소드를 이제 말할건데요. 진짜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모두 도장이 한 달정도 휴관 할 때 있었던 일이에요. 그때 관장님이 이벤트를 해주셨어요. 하나는 놀이 워크북을 손수 만들어서 나눠주셨고, 또 한 번은 관장님표 떡볶이 밀키트를 만들어서 주신거에요.


놀이 워크북은 두께가 문제집 한 권만 했는데요. 워크북에는 미로 찾기, 브롤스타즈 캐릭터 색칠하기, 종이접기, 숨은 그림 찾기, 틀린 그림 찾기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더라고요.


그리고 떡볶이는 코로나 이전만하더라도 도장에서는 많은 행사와 파티를 열었었는데요.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관장님표 떡볶이였어요. 또 그게 애들에게 인기가 워낙 좋았죠. 그래서 가정보육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관장님표 떡볶이를 먹으면 힘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손수 밀키트를 만드신 거죠. 근데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놀이 워크북도, 떡볶이 밀키트도 모두 관장님과 지도진들이 제자들 집 앞까지 손수 배달해주었다는거에요. 


그때가 도장도 장기간 휴관을 했고, 부모와 아이들도 가정보육 장기화로 모두 힘든 시간이었거든요. 관장님은 나오고 싶어도 자유롭게 나올 수 없는 아이들과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부모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에도 휴관이란 어퍼컷이 번번이 관장님에게 정통으로 날아왔는데, 진짜 안타깝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밴드에 관장님이 장문의 글을 하나 올리셨어요. 이건 좀 읽어드리고 싶어요.


‘참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은 2020년인 거 같습니다. 부모님 저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지만 교육을 본업으로 하는 개인 사업자입니다. 저는 부자가 아닙니다.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월세를 내는 임차인이고, 다달이 대출을 갚아 나가는 사람입니다. 관장으로 매달 직원들의 인건비를 챙기고, 그 외로도 고정 지출을 냅니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먹고 사는 자영업자로서 많이 어렵습니다. 요즘은 여기저기 은행을 알아보러 다니느라 너무 힘이 듭니다. 요 근래 지인들에게 사업 또는 도장을 폐업한다는 연락을 많이 받습니다. 올해 1년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도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흐르네요.’

읽던 저 역시도 마음이 저릿하고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이렇게 훌륭한 관장님이 도장을 그만두시는 사태는 차마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던 거죠. 많은 부모님들이 그 글을 읽으시고, 댓글을 다셨어요.


‘관장님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관장님 마음이 참 아프네요. 기운내세요! 파이팅!’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 잃지 않고 긍정적인 관장님의 모습에서 오히려 많은 걸 배웁니다. 힘내세요~’

‘아이들 생각하는 마음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관장님이 다시 글을 올리셨죠. 이것도 읽어드릴께요.

‘부모님! 저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버티고 버티겠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저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을 위해! 지금의 자리를 지키며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비장한 각오가 너무 감사했어요. 고마웠고요. 


지금도 굳건히 도장을 지키며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가고 있으세요.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요.




Q. 코로나19 자가 격리 당시 응급실 이용 이야기


저희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둘째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이셨고, 거기다 옆 반 담임선생님까지 확진이셨어요. 바로 하교하고 온가족이 검사를 받았고, 모두 음성으로 나왔어요.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잖아요. 2주 동안의 자가 격리를 보내야하는 거죠. 근데 격리 5일차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요.


저희 둘째는 저혈당이 쉽게 오는 애에요. 토를 한 번만해도 저혈당이 오는 아이거든요. 그걸로 응급실도 5번은 갔고 입원도 두 세 차례 정도 했었어요. 이 저혈당이 어린애들에게 자주 오긴 하지만 25kg 이상이 되면 나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격리 5일차 아침에 둘째가 평소와 달리 맥이 없고, 기운을 차리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구역질을 몇 번하더니 토를 했어요. 비상상황이 된 거죠. 불과 몇 달 전에도 같은 상황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자가 격리 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는데, 격리 중에 일어난 일은 저희에게 너무 심각했죠. 눈에 초점이 없는 걸 보니까 신속하게 병원에 가야했어요.


근데 자가 격리 중에 어떻게 병원에 가냐고요~ 병원에서 받아주긴 하는지 확신도 서지 없었죠. 근데 그때가 하필 또 일요일이었어요. 자가 격리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했지만 안 받으시더라고요. 너무 막막했는데, 1339가 떠올라서 전화부터 하고 봤죠. 그날 전화가 많았는지 5분이 지나도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입이 바삭바삭 마르더라고요. 연결되고 저희 상황을 알리니까 보건소 번호를 알려주셨어요. 보건소로 전화해서 담당자와 통화했지만, 담당 공무원과 통화한 후 다시 전화 준다면서 끊으시더라고요. 아이는 맥없이 누워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화는 마음을 타들어가게 하지. 진짜 손발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10분 정도 지나니까 보건소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담당 공무원과 통화했고 부천 성모 병원에 말해놨으니까 그쪽으로 전화 걸라면서 성모병원 전화번호를 알려주셨어요.


다행히도 병원에서 저희를 받아주셨어요. 응급실에 도착하니까 간호사 한 분이 기다리고 계셨고, 자가 격리실이 있는 뒷문으로 안내하셨어요. 그때는 보호자는 1명만 가능했기 때문에 저랑 아이만 격리실로 들어갔죠. 

들어가자마자 저도 방호복을 입어야 해서 입었어요. 우선 저혈당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아이는 포도당 수액을 맞았죠. 1시간 후에 혈당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물을 마셔도 구토를 안 하니까 귀가를 해도 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어렵게 온 거 다시 집에 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오고 싶어도 자가 격리실에 자리가 없으면 갈 수가 없는 거니까요. 저희가 갔던 성모 병원은 자가 격리실이 2~3곳 정도 됐던 거 같아요. 근데 그 자리가 계속 비어있다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입원해서 며칠 더 보고 완전히 괜찮으면 귀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입원을 위해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어요. 왜냐면 격리 5일차니까 코로나 검사하고 72시간이 지났으니까요. 근데 음압실이다 보니까 결과가 나오기 전에 바로 들어갈 순 있더라고요. 


그때 007 작전을 방불케 했는데요. 저희는 자가 격리자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마주쳐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병원 보안 요원들이 3분정도 붙었어요. 막 서로 무전기로 대화하면서 사람들을 피해서 구석으로 구석으로 돌아서 병실에 도착했죠. 


아이가 병실에 올라오고 바로 구역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도 입원하길 잘했다고 하셨죠. 2박 3일 입원하면서 잘 치료받고 아이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마지막 날 회진 때 소아과 교수님도 같이 오셨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응급실에서 저희를 담당하신 선생님이 수락해주셨기 때문에, 저희 아이가 응급실에 올 수 있었다고요. 만약 그 선생님이 거부했다면 올 수가 없었대요. 그 시기 즈음엔 자가 격리자를 거절하는 병원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때 이런 기사도 있었어요. 자가 격리 중이던 어린아이가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마다 받아주지 않았다는 기사요. 그걸 언급하시면서 그런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받아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선생님에게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죠.




Q. 코로나19시대 디지털 빌딩 짓기 도전기


디지털 빌딩 짓기는 MKTV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필요성을 느꼈는데요. 디지털 빌딩 짓기는 쉽게 말해서 온라인으로 돈 벌기 인거죠. 요즘 많은 분들이 하고 있는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등등 이런 활동들로 수입을 얻는 거고, 또 얻는 분들도 많아졌고요. 저는 그때 브런치에 주 1회 연재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근데 MKTV 영상을 보고는 온라인으로 돈을 벌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난 뭐부터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죠.


효율성을 따져봤을 때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운영하는 게 우선인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다른 것에 비해 접근성이 좋다고 판단했으니까요. 그래서 선발주자론 이 둘을 정했고, 후발주자론 쿠팡 파트너스와 밀리의 서재의 내가 만든 오디오북으로 정했죠. 


이게 별거 아닐 거 같아도 막상 하면 어렵잖아요. 그래서 시간이 생기면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쿠팡파트너스에 좀 더 시간을 쓰기 시작했어요. 2주 동안은 쿠팡파트너스에 올인했거든요. 근데 2주 만에 결실이 보이는거에요. 큰돈은 아니지만 어쨌든 4만원을 번거에요. 수입이 없던 전업주부가 컴퓨터로 4만원을 벌었다는 건 기분 째지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더 기를 쓰고 달려들었죠.


근데 3일 후에 무너졌어요. 쿠팡 파트너스 전용 블로그 일일 방문자가 300명을 웃돌았거든요. 근데 하루만에 87명, 다음날은 56명, 그리고 30명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상위 노출되던 포스팅도 검색하니까 100위건 밖으로 밀려나있고요. 저품질이 된 거죠.


근데 제가 우를 범하긴 했어요. 편법이라고 하죠. 저도 공부하면서 편법들을 접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걸 제가 기계처럼 포스팅을 찍어냈거든요. 욕심이 과했던 거죠. 만약 하던 대로 했으면, 블로그 저품질이 안됐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좀 더 벌고 싶어서 욕심을 부린거죠


그리고는 A블로그와 B블로그를 교체했어요. B블로그가 메인이 된 거죠. 그리고는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올리기 시작했어요.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반년이상을 아예 안했거든요? 근데도 1년 넘게 한 달에 만원씩 들어오더라고요.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은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하셨어요. 저 역시도 유튜브를 하고 있었고, 책 낭독도 해봤기 때문에, 도전해봄직하다 싶어서 했어요. 그래서  <엄마의 오묘한 심리학>이란 책으로 시도했고, 밀리의 서재 측의 검수에서 합격 되어서 등록되었죠. 지금도 되어 있어요. 근데 밀리의 서재가 내만오 서비스를 전면 개편 하면서 리더들을 좀 더 까다롭게 뽑기 시작했어요. 그때 2번정도 리더로 신청했는데 계속 반려되더라고요.


지금은 블로그는 기록용으로 두고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키우기에 올인하고 있어요.






Q. 코로나19 시대의 공동육아 이야기


제게는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이 있어요. 책에서도 나왔지만, 첫째 어린이집에서 맺은 인연인데요. 같은 반 친구였는데 둘이 잘 맞았고, 엄마들끼리도 잘 맞아서 금방 친해졌어요. 친해지다 보니까 각자 집에 놀러도 갔죠.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겨서 아이만 보내기도 했어요. 근데 이게 코로나시기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됐죠. 가정 보육을 하다보니까 서로 힘들어서 연락하게 되고 놀러가게 됐죠. 힘들 때에 기댈 수 있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죠.


가정보육 힘드니까 상황이 많이 나쁘지만 않다면 돌아가면서 각자의 집에 애를 보낸 사이 한 사람은 쉬는 게 어떻겠냐고요. 저야 좋았죠. 그래서 돌아가면서 애를 맡기게 된 거죠. 그쪽 아들이 오면 저희 딸과 둘은 워낙 오래 같이 놀았기 때문에 알아서 잘 놀았어요. 간식 좀 챙겨주고 조금만 같이 놀아주면 되었는데요. 평소의 가정보육에 비해서 편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상황이 좋지 못할 때는 못했지만, 상황만 받쳐준다면 서로 도왔어요. 코로나 가정보육을 헤쳐 가는데 있어서 정말 큰 축을 차지하지 않았나싶어요. 




Q. 코로나 시대 전업주부의 돈벌이 수단


저는 코로나 시대에 주부 모니터라는 걸 했어요. 주부 모니터란? 제품에 대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활동이에요. 풀무원, Cj, 오뚜기 등등 많은 기업에서 진행을 해요. 보통 본사로 가서 활동하고요.


주부 모니터 활동은 보통 6개월 정도 진행되고, 상반기 하반기로 모집을 해요. 주1회 2시간씩 참여하면 4만 원 정도 버는 꼴이에요. 그럼 한 달에 16만 원 정도 되는 거죠. 이게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구미가 당기는 건 아이들이 등원한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거죠. 육아에 영향을 주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엄마들에겐 귀를 솔깃하게 하는 조건이 아닐까 싶어요.


이건 꼭 코로나 시대가 아니더라도, 전업주부라면 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근데 아쉬운 건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거죠.


저는 주부모니터 사이트에서 모집 글을 보고 신청을 했었어요. 신청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지원 서류를 작성해요. 증명사진도 붙여야 하고, 학력, 주부모니터 활동 경험, 지원 동기, 각오…….뭐 이런 거를 작성했던 거 같아요.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면 한 달 후에 문자로 결과가 와요. 서류 전형에 통과가 되면 맛 테스트를 해요. 저는 풀무원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맛 테스트가 필요하잖아요. 


근데 그때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가 되면서 맛 테스트 없이 활동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OT를 하면서 주의사항과 계약 사항을 설명 듣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코로나로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까 당분간은 온라인 조사로 진행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활동을 하게 되면 10시 반까지 풀무원 본사로 가서 제품들을 받아와요. 그럼 정해진 시간 안에 설문에 응하면 되는데 보통 당일 저녁 10시에요.


5~8개정도의 제품을 받아오고요. 그걸 먹으면서 쫄깃함 정도는 어떤지, 질감은 어떤지, 강도는 어떤지, 짠 정도, 맛 조화도 등을 객관식으로도 주관식으로도 작성해요. 구글 폼 비슷한 형식을 이용해서 핸드폰으로 입력해서 보내게 되요. 근데 코로나 상황에 따라 한 달에 4번이던 게 1번으로 줄기도 했었어요. 




Q. 코로나 19가 알려준 보통날의 소중함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뼈저리게 깨달으셨을 거예요.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만나고 싶으면 만나면서 바깥세상과 부대끼는 일상의 소중함을요. 지금이야 코로나 상황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코로나 여파가 남아 있잖아요. 


저의 애가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입학하고 지금까지 체육대회도, 소풍도 가보질 못했어요.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될 그 시간을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그런 걸 봤을 때 코로나로 빼앗긴 보통날의 소중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Q. 코로나19가 종식되어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코로나19를 되돌아본다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여행을 못가도, 외식을 못해도, 그저 아이들 일상과 제 일상이 문제없이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대로 기관에 가서 배움을 얻어야 하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살림을 하고 할 일을 해야 하거든요. 엄마도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가질 때 육아도 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 너무 좋아요. 그리고 다신 가정보육을 하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코로나19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을 정리해본다면


정말 많은 걸 수련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일단 더 억척스러워졌고요. 멘탈을 잡을 수 있게 훈련시켜줬고, 체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어요. 제 시간이 생기면 헛되게 쓰지 않으려고 더 노력하게 됐고, 제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욕심을 내려놓으며 무리하지 않는 연습도 하는 시간이었죠.


그 시간을 통해 좀 더 단단하고, 슬럼프나 번아웃에 빠지더라도, 회복 탄력성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체력의 중요성을 가장 크게 일깨운 시간이기도 했어요. <팬데믹 엄마니까 버텨봅니다>초고를 쓸 때 거리두기 4단계가 돼서 첫째가 집에서 원격수업을 받아야 했어요. 아이가 1학년이다 보니까 옆에서 원격수업 봐주고, 점심 차려주고, 놀아주다가 공부방에 데려다 주고, 끝나는 시간에 픽업하고 도장에 데려다 주고, 첫째가 끝나는 시간에 두 아이 모두 픽업하고 그러다 보니까 생각보다 글 쓸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어떻해요. 해야 하는 걸~ 잠을 더 줄이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거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몸이 견디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지금 30대 후반이거든요. 지금까지 건강함의 대명사로 살았던 제가 대상포진이란 걸 걸리게 된 거에요. 그것도 입술 근처에요. 지금은 아주 흐린 흉터로 남아 있어요. 그때 참 속상하더라고요. 그리고 체력이 있어야 엄마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홈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죠.




Q. 구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제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엄마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엄마에겐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엄마 9년차가 되서야 운동을 시작했는데요. 그 전엔 일 하랴, 육아에 치여서, 살림에 치여서, 돈에 쪼들려서~ 운동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운동이란 단어 자체를 제 머릿속에서 치워버렸어요.

그러다가 엄마 9년차에 홈트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요. 체중 감량도 감량이지만 엄마이기전에 나 자신을 돌본다는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자존감 역시 올라가고요. 이건 육아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육아, 살림, 유튜브 작업 이 삼박자를 해낼 체력을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리고 운동한 시간들은 엄마로'만' 살기보단 엄마로'도' 더욱 잘 살게 만들더라고요. 자존감도 많이 올라가고요.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따라서 건강해지니까요.

돈 때문에, 시간 때문에 한계가 많으신 엄마들이 많으실 텐데 홈트를 꼭 하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유튜브에는 홈트 유튜버들이 정~~~~말 많아요. 근력운동, 유산소 운동 외로도 필라테스, 요가 등등 다양하기 때문에 취향에 맞게 해주심 좋을 거 같아요. 


아이들 기관에 보내고 아이들 오기 전에 원하는 시간에 무료로!! 운동 할 수 있으니까 꼭~ 하셨으면 좋겠어요! 


또, 제 유튜브 채널 <박엄마의 10분 서재>를 홍보하고 싶어요

저의 유튜브 채널 <박엄마의 10분 서재>는 북튜버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육아, 홈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끈기 있게 성장하는 엄마를 추구하며, 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 분야는 육아서, 자녀교육, 그림책, 엄마의 자기계발, 여성, 엄마, 가족에 대한 에세이나 소설을 다루고 있고요. 종종 그 외의 장르도 다루고 있어요. 


제 영상을 보고 유익한 정보도 얻으시되 동기부여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키우고 있으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방문 부탁드릴게요.









▶ 박현주 작가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코로나19 극복기, 디지털 빌딩 짓고 부수입 벌면서 버티는 법 I 박현주

https://youtu.be/VEtHUDdgl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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