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린치핀 」 세스 고딘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더하기 빼기를 연습하고 인수분해를 열심히 공부한다. 이를 위해 올 추석 연휴에도 반가운 친척들을 만나지 않고 독서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마도 이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시험을 잘 볼 것이고, 명문대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좋은 기업에 취업해 높은 연봉을 받으며 성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보니 전교 1등이 꼭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 나쁘지 않은 정도의, 남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연봉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할수록 부자가 될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분명히 그런 노력과 성실성이 가난과 빈곤을 면하게는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부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부자가 될 수 없다거나 명문대 무용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교육시스템이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천재성을 죽이고 평범한 인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로 손꼽히는 세스고딘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분수계산이나 인수분해, 함수 같은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끼워 맞추라.
지침을 따르라.
꼼꼼하게 필기하라.
매일 학교에 나오라.
시험을 대비하여 공부하라.
과제 제출 기한을 놓치지 마라.
맞춤법을 틀리지 마라.
권위에 도전하지 마라.
질문하지 마라.
좋은 경력으로 이력서를 채우라.
실패하지 마라.
난처한 이야기는 하지 마라.
이런 교육과정을 우수하게 마친 학생일수록 생산성이 높고 순응성이 높은 노동자가 된다. 이번 학기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다음학기에도 공부를 잘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은 졸업을 하고 나서 직장에 들어가도 일을 잘할 것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일을 잘하지 못하면, 규칙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못하면, 반항하면, 시스템 밖으로 쫓겨나고 낙오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암묵적 룰이다. 이쯤 되면 학교는 더 성실하게 일할 노동자를 양성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물론 학교와 직장은 다른 점이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 평가하는 것이 국어, 영어, 수학이 아니라 얼마나 학교의 규칙과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학교에서 잘 적응한 아이가 직장에서도 잘 적응하지 않을까. 명문대학교는 이런 학생들의 태도와 자질을 귀신같이 가려낸다. 우리들도 어느 학교를 나왔다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을 잘 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를 나왔다고 하면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이것은 틀리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스템을 있는 그대로 잘 따르기만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높은 연봉을 받지도, 귀한 대접을 받지도 못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것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은 이제 모두 바닥나버렸기 때문이다. 아웃소싱, 자동화, AI의 등장 등은 착한 사람, 말 잘 듣는 사람, 믿음직한 사람들을 궁지로 내몰았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기계보다, 로봇보다, AI보다 성실하지 않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주휴수당이나 보너스를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아무리 일을 많이 시켜도 파업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중산층의 고통은 점점 커져간다. 임금은 정체되고 안정적인 직장이란 개념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그만두지도 계속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은 기업이나 조직들이 피고용인을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기계의 쉽게 바뀔 수 있는 톱니바퀴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더 쉽게 대체될수록 돈을 덜 줘도 된다. 즉,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것을 잘했던 학생일수록 더 저렴하게 더 쉽게 버려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천재성을 스스로 묻어버리고, 꿈을 포기하고, 노동자로 고용되도록 사람들을 세뇌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끼는 경제였다. 공장일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은 꿈을 꾸게 했다. 연금과 안정적 직업, 건강보험과 같은 다양한 작은 혜택들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우리를 가두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속삭였다.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맡은 일만 하라. 그러면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이런 속삭임은 우리에게 천재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확실성을 얻는 대가로 자기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포기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 최저의 보상만을 할 뿐이다. 리더는 지도나 규칙을 찾지 않는다. 지도를 보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남과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꼭 필요한 사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다.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면 무수한 사람들 중 한명일뿐이다. 자신의 가치에 걸맞은 것을 얻고 싶다면 이제 무조건 튀어야 한다.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 꼭 필요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깊이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상호작용을 만들어내 자신을 알려야 한다.
세스고딘은 이를 '리마커블'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그가 말하는 리마커블 한 존재는 다음과 같다.
당신은 지금 꿈꾸는 직업이나 경력을 누릴 자격이 없다. 오랫동안 평범한 조직에서 평범하게 일하는 평범한 일꾼이 되기 위해 힘들게 배우고 노력했지만, 이제 사회는 튀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규칙이 바뀐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남들보다 '리마커블'해지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까? 제품처럼 기능이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입소문 전략도 통하지 않는다. 한 개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누구인지 이야기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한다.
당신은 리마커블 한 존재인가? 아니면 묵묵히 주어진 규칙을 따르며 대체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평범한 존재인가. 새로운 시대에는 평범한 존재까지 편안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의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 기계와 AI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래가 두렵다면,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의 '리마커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