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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Oct 22. 2018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회의를 느끼는 이유

요즘 이게 유행이라며? 한국 사회 망해라!


요즘 나의 기분은 매우 우울하다못해 힘이 없다. 뭘 하고 싶은 생각도,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뭐든지 할수 있다고 생각했던 패기와 용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력감과 회의가 자리잡았다. 오늘이 딱히 월요일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사회에서 노력하면 할수록 힘이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뿐이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

: 나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몇년 전에 읽었던 책중에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하나가 『 왜 분노해야 하는가 』 였다. 우리나라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여러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던 장하성 교수님은 내가 왜 분노해야 하는지, 나와 같은 젊은이들이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셨다. (그 통계들에 대해서는 최근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 책은 살기 각박한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었고, 내가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이 책은 내가 분노해서 노력하면 조금은 이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준 책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희망이 사라졌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거대한 구조가 보이고, 혹시라도 '바뀌지 않을까?' 라는 의심은 분노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힘이 없다. 더이상 내가 노력해야하는 이유를 상실했다. 나에게 그런 상실감을 준 최근의 생각들을 소개해본다.




공정성의 상실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나는 이길 수 있을까



'기울어진 경기장'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경기장이 기울어지니 어느 한쪽이 굉장히 유리한 상황이 되고, 승패가 이미 정해질수 밖에 없는 매우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우리 사회는 공정성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세습하자

니 아버지 뭐하시노?



언제부터인가 연예인들의 자녀들이 TV에 나왔다. 가족예능이라는 트렌디한 단어와 함께 등장했고 내가 아는 연예인들의 자녀들을 보고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어린 친구들이 나왔다. 유치원생 내지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자녀들이 출현했다. 연예인의 자녀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그냥 귀여운 나이대의 아이들이 나오니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은 쏟아졌고 그 아이들은 연예인인 부모님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출현했을까? 조금씩 대중들이 그 소재에 식상해져가자 이번에는 사춘기 자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의 사춘기 자녀들은 연예인 부모님들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여주며 '저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라는 공감을 이뤄내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저들도 하는구나' 라는 묘한 동질감은 그들이 연예인인 것을 잊고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부모님이 연예인이니까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데뷔!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가족예능을 통해 출연한 연예인 자녀들이 하나둘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런 큰 그림을 그려놓고 출연을 결정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전략은 탁월했다. 자연스럽게 자녀들을 대중들에게 노출시키고 그렇게 인지도를 쌓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놓으니 자연스럽게 연예계로 진입할수 있었다. 애초에 가족예능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수 없었던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제칠수 있었던 그들의 '연예인 데뷔 추월차선'은 수많은 지망생들에게 큰 박탈감을 주었다.



뭐 처음 연예인 자녀 특혜 논란이 이슈화 되었을 때, 연예계랑은 전혀 관계없는 나도 조금 화가 나긴 했다. 누구는 부모를 잘둬서 저렇게 쉽게 TV출연도 하고 연예인도 되는구나 하고. 하지만 연예계가 사실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 곳인가. 부모가 연예인인 것이 처음에는 조금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실력이 없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데뷔의 기회 조차 갖는 것이 일반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일인데 결국 실력이 없으면 사랑받지 못하고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냥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나쁜 일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짓거리가 연예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때, 대한민국 곳곳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나는 분노가 치밀다 못해 회의감이 들었다.




부모가 퇴직하면

자녀를 우선 취업시킨다



아버지가 임금이면 아들도 임금이 되고,

아버지가 양반이면 아들도 양반이 되고,

아버지가 노비면 아들도 노비가 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혈통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던 조선은 망했다. 그 뒤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민주화 사회가 이룩되었고 누구나 노력하면 아버지가 경비원이어도 아들은 대법관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한 청년은 자동차, 조선, 건설을 하는 커다란 기업을 만들었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아버지의 자녀가 서울대에 입학하는 훈훈한 이야기는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그런 때가 있었다. 그렇게 노력만 하면 뭐든지 이뤄낼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계층이동이 자유로운 사회,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이든간에 아들은 자유롭게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낼수 있었던 사회. 사회는 분명히 진보했고,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꿈을 향해 노력하는 좋은 시대였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무렵부터일까. 개천에서 나오던 용은 점점 사라져갔고, 심지어는 개천에서 나온 용들이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다. 특목고를 폐지해야한다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자기 자녀들은 특목고에 보내놓았고,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 사회 지도층의 내로남불은 뭐 더 이야기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리고 별로 놀랍지도 않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들은 그다지 새로운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놀라움과 충격을 준 것은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 마저도 이들과 다를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였다.



'고용세습조항'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정년퇴직자의 직계자녀 1인에 한해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의 노조 단체협약 내용 중 하나다.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1자녀에 한해서 우선적으로 채용을 한다는 것이다. 놀랍다. 양질의 일자리마저도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해당 노조는 재벌의 경영세습을 지적하며 자기들은 문제가 없다고했다. 이 기사를 본 나는 결국 노조가 재벌의 경영세습을 비판하는건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재벌이나 노조나 그냥 똑같이 보인다는 말...



나는 적어도 채용시장만큼은 내가 좋은 대학에 가면, 내가 토익점수를 높게 받으면, 내가 노력하면, 내가 공부를 열심히하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내 주변에는 K공기업에 몇년째 지원하고 있는 대학 동기가 있다. 매 채용 시즌마다 대학 동기가 지원하고 떨어지고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너가 노력을 안해서 그래라고 이야기 했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이미 다 자리 주인이 있는건데.. 뭐하러 지원해. 너 들러리 서주는 것 밖에 안돼" 그 기업에 다니는 아버지도, 빽도 없는 내 대학동기는 올해도 떨어졌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가 들어서자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었다. 하청업체를 쓰던 고용 구조를 직접 고용의 형태로 바꾸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악용하는 사람이 있었다. 소식을 먼저 접하고, 정보가 빠른 이들이 자기 친인척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해놓고 정규직 전환이 노리는 포석을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정규직이 되었다. 정보가 없었던, 정보가 느렸던 이들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들이 정규직이 되지 못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정보를 줄만한 사람이 없어서, 인맥이 부족해서, 빽이 없어서였다.




언제부터인가 '노력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서울의 아파트값은 10년이상을 숨만쉬고 모아야 살수 있게 된.. 그야말로 평생 집한채 서울에 마련할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나마 노력해서 좋은 일자리를 가져볼까라고 생각도 했는데 파면 팔수록 채용비리가 없는 곳이 없었다. 공기업을 비롯 금융권, 사기업 등등 빽과 혈연으로 얽히고 얽힌 그 자리에 내 자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대학동기처럼 나도 들러리만 서게 될까 무섭다.



누군가는 말한다. 청년들이 공무원시험에만 몰려서 걱정이라고. 나는 묻고 싶다. 공무원만큼 공정한 시험이 이 대한민국에 있냐고. 안정된 일자리? 연금? 철밥통? 이런 것들 이전에 공정한 취업경쟁이 가능한 경기장이 공무원 시험 말고 또 있냐를 묻고 싶다. 나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지 않는다. 나는 공무원에 몰리는 현상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그 노력을 하는 이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도 이들은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니까.




어제와 엊그제, 오랜만에 독서실에 갔다. 거기서 아침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하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나의 학창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집중되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억지로 엉덩이를 붙이고 반은 졸면서 반은 책을 보면서 자리를 지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한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고, 그들이 내 나이쯤 되었을때 만나게될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들이 맞닥뜨리게 될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그들의 노력에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사회가 될까,

아니면 그들의 노력과 관계없이 그들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가 될까.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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