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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Jan 09. 2018

‘사’님의 시대 가고, ‘주’님의 시대 온다

'종'의 마인드를 버리고 '주'의 마인드를 갖자

‘사’님의 시대 가고, ‘주’님의 시대 온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망하는 직업들이다. 모두 다 ‘-사’로 끝나서 ‘사’자 직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 직업을 가진 사람은 부는 물론 명예와 권력까지 가지기도 한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들 직업은 타 직업에 비해서 굉장히 선호도가 높은 직업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자신의 자녀들을 명문대학교에 진학시켜 저 ‘사’자 직업들을 갖게하는 것이 본인들 목표인 경우도 많다.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자 직업을 가지게 되면, 이른바 성공한 인생이라는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자 직업에 대한 평판은 결혼시장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과거엔 ‘사’자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기위해서는 ‘열쇠’를 3개 가지고 가야한다는 말도 있었다. 집 열쇠, 차 열쇠, 개업할 사무실 열쇠. 이 3개의 열쇠를 가지고 갈 정도로 ‘사’자 직업의 가치는 결혼시장에서 굉장히 높다.



  사실 이들 직업들은 다른 국가에서도 지위와 대우가 좋은 직업들이긴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이다. 미국의 경우 프로그래머 개발자나 통계학자, 기업가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직업의 선호도가 변화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자 직업들의 인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사’자에 대한 선호도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욱 강한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유교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농공상’이라고 하여 ‘사(士)’를 최고로 치고 ‘공’이나 ‘상’을 천시했다. 서구 유럽권의 경우 일찍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업가나 ‘상’행위에 대해 인식이 좋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사치라는 말로 상행위를 하는 사람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조선시대가 아니다. 이는 곧 유교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우리나라는 이제 서구와 같이 ‘자본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즉, ‘사’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변호사들의 수입이 예전같지 않아졌다. 법률의 메카라고 불리는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일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과거에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대기업에 입사하면 ‘과장’대우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이와 같은 대우를 받기 힘들다.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고령화사회로 인해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양의학에 대한 선호로 인해 한의학은 설자리를 잃고 있으며 치과의사 역시 지속적으로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 배출되는 치과의사들이 마땅히 개원할 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에 위치가 좋은 곳들은 이미 먼저 배출된 치과의사들이 사무실을 열고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의사는 아직까지 ‘사’자 직업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는 직업인데 막대한 장비임대료와 사무실 임대료, 경쟁의 심화로 개인회생 신청을 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4/nwdesk/article/3410209_18451.html)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자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려면 열쇠3개를 가지고 가야한다는 말은 이제 옛날에나 통하는 말이 되었다. 이제는 ‘사’자 직업을 가져도 그 남자가 개천에서 난 용이면 결혼시장에서 배우자 선호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유교사회의 영향으로 돈보다는 신분, 명예, 지위 등의 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사’자 직업에 대한 평가가 높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법연수원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사람은 로펌을 가기보다는 판사나 검사를 지망하는 비율 훨씬 더 높았다. 돈보다는 사회적 위상이나 명예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교사회에 자본의 논리가 점점 침투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는 직업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리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자 직업들이 타 직업에 비해서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오직 딱 하나이다. 진입장벽을 통한 수를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신자유주의 논리가 들어서면서 무한경쟁이 시작되었다. 경쟁을 시켜서 최상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시장논리 앞에서 ‘사’자 직업들이 누리던 기득권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물론 기득권이 붕괴되는 만큼 위상도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라고 해서 특별히 더 높은 가치를 쳐주는 것은 없다. 오로지 자본의 측면에서 모든 가치를 평가할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명문대학교의 우수한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기도 하고 학원 강사가 되기도 한다. 과거만 해도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부모님 억장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두 손 들어 환영하는 진로는 ‘고시를 보겠다’ 라는 말이었다. ‘사’자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았으니 말이다. 또한 학원 강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명문대학 나와서 대한민국 악의 근원인 사교육을 이용하여 학벌장사를 한다는 인식과 함께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졸업생들이 선택하는 진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스타 강사들이 나오고 이들이 몇 십억의 수익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자 스타강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31501031409314001)





  이처럼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 직업이 선호도가 높다. 사농공상 시대만 하더라도 ‘돈’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돈얘기를 직접적으로 꺼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유교적 영향이 크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모은 부자들을 두고 나쁜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금을 탈루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든지,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의심한다던지, 부자들을 보는 시선 자체가 그리 곱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방송에 나오는 랩퍼들만 하더라도 자신의 부를 마음껏 뽐낸다. 몇십억짜리 슈퍼카를 타고, 팬트하우스에서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TV에 공개한다. 그것을 보는 대중들도 과거엔 부정적으로만 보았다면, 지금은 부러움과 동시에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 한 래퍼는 이런 자신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공개하는 것이 허세가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이런 성공을 널리 알려서 자신처럼 어려운 학생들도 자신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했다. 부에 대한 시선이 과거처럼 여전히 부정적이었다면 지탄 받았을 인터뷰였지만, 방송 후 누리꾼들의 반응은 보기좋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사회가 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의 가치가 그 어떤 시대에서보다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는 ‘사(士)’의 시대가 종말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말한다. 바로 ‘주(主)’의 시대다. 




    여기서 ‘주(主)’란 주인을 뜻하는 주(主)이다. 창조주, 조물주, 건물주, 주주, 소유주와 같은 단어들에 쓰이는 글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소유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간의 욕심을 바탕으로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소유권이 주어질 때 인간의 욕망이 주어진 자원을 가장 잘 활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권에서 바로 ‘주(主)’가 탄생한다. 책의 주인, 물컵의 주인, 자동차의 주인, 건물의 주인, 가게의 주인, 선박의 주인, 비행기의 주인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다.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허나 지적재산에도 모두 주인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수많은 주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이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근대 이전의 사회가 계급을 통해 운영되던 사회였다면 근대 이후의 사회는 계약을 통해 운영되는 사회이다. 근대 이전에는 계급에 따라 자신의 직업이 분류되고 사회적 역할이 정해졌지만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계약에 따라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역할이 정해진다. 예를들어, 내가 A라는 기업에 근로계약을 맺으면 A회사의 직원이 되는 것이고, B라는 기업과 납품계약을 맺으면 B회사의 협력회사가 된다. 이처럼 근대 이후의 사회는 내가 어떤 계약을 맺느냐에 따라 나의 직업과 역할이 정해지는 계약사회이다. 이런 계약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맺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쪽에게 유리하고, 다른 쪽은 불리한 계약을 맺게 될 때도 있다. 이때 유리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높은 쪽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인이다. 주인이 아닌 자는 불리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의 소유권은 주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주식을 가진 주인들을 우리는 주주라고 부른다. 즉 회사의 주인은 주주인 것이다. 주주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주식의 비율만큼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가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주식을 많이 보유한 대주주가 가장 큰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기업의 의사결정을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주식을 소유한 주인을 우리는 오너 또는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어찌되었든 주주들은 회사를 이끌어갈 직원들을 채용하게 된다. 기업 경영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장부터 시작해서 신입사원까지 모두 주주들이 채용한다. 실제로는 기업의 인사팀에서 채용절차를 진행하고 신입사원을 뽑지만 이들에게 급여를 주는 것은 주주들이기 때문에 주주를 대리해서 인사팀에서 채용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신입사원이나 인사팀 직원이나 급여를 받는 직원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선발된 회사의 직원들은 회사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하고, 판매하여 기업이 흑자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기업에서 이익을 내면 그 이익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급여나 기업을 운영하는데 들어간 각종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모든 비용을 제하고도 기업의 이익이 남게되면 그것을 이익잉여금이라고 하는데 이 이익잉여금은 주주들의 몫이 된다. 주주들은 이 이익잉여금을 배당하여 자신들이 나눠가질 수도 있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가치를 높이기위해 투자활동에 쓰거나 유보시켜둘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주주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기업에 다니면서 급여를 받는 것과 기업의 주인이 되어서 투자에 대한 이익을 수취하는 것. 어떤 것이 더 유리할까?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채용이 되어야 한다. 주주와 구직자로서 계약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직자를 채용할 회사는 많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은 구직자는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주들은 훌륭한 구직자를 가장 저렴한 가격에 쓰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급여와 같은 비용을 이익에서 다 제하고도 자신들이 챙길 수 있는 이익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우수한 인재와 고용계약을 맺으려는 주주와 높은 임금을 받고자 하는 구직자가 서로 고용계약을 맺는다고한다면 주주가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구직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임금을 최저치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의 입장에서 임금을 낮게주면 줄수록 기업은 경쟁력을 갖추고 보다 많은 이익을 창출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이익은 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 근로자는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없고, 주주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기업 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하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에서도 집주인이 임차인보다 유리하다. 대한민국의 땅은 한정되어있다. 특히 전체 인구의 1/4이 몰려사는 서울의 땅은 더욱 한정적이다. 인구는 많고 땅은 비좁다. 서울에 대부분의 일자리가 있기에 지방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집을 얻을 수도 있지만 출퇴근 시간이 멀기 때문에 가급적 서울 안에 집을 구하려고 한다. 부동산 임대차계약의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집을 가진 사람의 숫자는 적고 서울에 방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은 상황이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제한적이므로 당연히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지속적으로 돈을 풀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경제정책은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고 실물자산의 가치를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과 임차인 중 계약을 맺을 때 우위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구조적으로 집주인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계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소유한 주주가 되든지, 부동산을 소유한 건물주가 되든지 말이다. 21세기 자본론을 쓴 토마 피케티는 자본이 자본을 벌어들이는 속도가 경제성장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이야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주인이 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결국 주인이 더 큰 주인이 되고, 주인이 아닌 자는 주인이 되기 더 힘들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 ‘종(從)’의 마인드가 아니라 ‘주(主)’의 마인드가져야 한다. 단순히 남들이 한다는 이유로 대기업에 따라서 입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가거나 자신의 비즈니스를 해야한다. 기업과 개인에게 자금을 빌려주는데 사용되는 저축예금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인 주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고민해봐야한다. 이처럼 기존에 정해진 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그 룰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미 정해진 룰에는 경기를 지배하는 승자가 존재하고 그 경기에서 내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그 룰의 승자가 되는 것보다는 새로운 룰을 만들어 승자가 되는 편이 훨씬 손쉬운 일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룰을 거부하고 새로운 경기의 룰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사고를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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