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꼭이요!” 2002년 모 카드회사의 CF는 대한민국 새해 인사말을 바꾸어놓았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공부열심히 하라던 할머니의 새해 덕담은 그 이후 “공부 열심히해서 돈많이 벌고 부자되거라”가 되었고, 아버지의 친구들 역시 대박을 기원하며 “올해엔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라”는 인사말을 나누셨다. 의례적으로 ‘근하신년’이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던 새해 인사말을 “부자되라”는 말로 바꾼 이 CF는 당시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해당 CF에 출연하여 “부자되세요”를 외쳤던 탤런트 김정은씨는 그 CF로 인해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는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인터뷰를 했다고 하니, 당시 이 새로운 새해 덕담의 사회적 파장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15년이 지난 지금, 부자가 되라는 덕담은 새해를 대표하는 인사말이 되었지만 우리의 삶은 15년 전보다 더 팍팍해진 것 같다. 헬조선, 하우스푸어, N포세대 등 15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조어들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의 삶은 왜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15년전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서일까?
나는 단언컨대 우리의 노력부족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OECD국가 중에서도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먼저 시작되는 우리의 회사생활은 정해진 퇴근시간을 항상 넘겨서 마칠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회사가 잘되야 국가가 잘되고 내가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열심히 일해왔고 세상은 그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러한 국가와 기업의 눈부신 성장에 비해 우리의 삶은 너무나 초라하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된 것일까? 국가와 기업의 성장은 왜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 못했을까?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 r > g ’라는 공식을 가지고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했다. 여기서 r은 자본수익률을 의미하고, g는 경제성장률을 의미하는데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가 경제성장률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말한다. 즉,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토마 피케티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논란이 되었고, 그 이후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기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어디까지나 논의일뿐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논의가 정책으로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으며, 시간도 오래걸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 r > g ’라는 토마 피케티의 주장은 돈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그저 절망의 공식일 뿐 실질적으로 쓸데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공식보다 오늘 먹게될 밥이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과 자본수익률이 어떤 관계이기때문에 그게 어떻게 되는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심증적으로만 느끼고 있던 부의 양극화가 토마 피케티에 의해 입증되었으니 절망에 빠져있어야 하는 것일까?
토마 피케티가 제시한 공식을 다시 한번 봐보자. ‘ r > g ’ 라는 공식. 토마 피케티는 이 공식을 가지고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가 경제성장보다 빠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부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의깊게 들어야할 것은 ‘ r > g ’이기 때문에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우리에게 투표권이 있긴하지만 법과 제도를 바꿀 힘은 없다.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변인들을 뽑긴하지만 그들은 우리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 피케티의 메시지를 우리는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토마 피케티가 제시한 공식을 처음보고 내가 든 생각은 ‘우리 사회가 불평등이 심하구나’ 이런 것이 아니었다. 불평등이 심하다는 걸 알게되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토마 피케티의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g보다는 r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토마 피케티는 우리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었다. 돈으로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될 수 있지, 노동을 통해서는 부자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부자가 되자”, “돈을 모으자”라는 말이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일정부분은 동의한다. 돈은 우리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으며,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돈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래도 “돈을 모으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1987년 이래 4회에 걸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던 앨런 그린스펀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
우리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긴다. 문명사회에서 글자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삶의 불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학을 만들어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육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런데 금융을 모르는 건 어떤가? 우리는 금융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돈이라는 것은 그저 열심히 일하면 많이 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을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사실은 단순히 게으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양그룹 CP사태, 키코(KIKO)사태, 각종 금융상품들의 불완전판매 등 다양한 사건사고로 인해서 성실히 벌어 놓은 돈을 일거에 날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모두 금융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돈이 없으면 당장 오늘 먹을 물과 식사조차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앨런 그리스펀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경제와 금융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위해서 말이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금융에 대한 공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금융에 대한 공부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위한 우리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