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똑똑한 사람일까?

잘 살지는 못할지언정, 로봇이 되지는 말아야 겠다

by 꿈꾸는자본가




# 1.




2017년 들어서 내게 뭔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람을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블로그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든, 어떤 모임을 통해서든, 강연회 참석을 통해서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나의 정보들이 어느 정도 있기에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난다. 2017년 이전에는 나는 나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만났다. 나는 그냥 나 자체일 뿐이니까. 블로그를 운영한다던지, 돈이 얼마가 있다던지, 주식을 한다던지, 부동산 투자를 한다던지 등은 나라는 존재를 설명할 수도 없으며, 설명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모두 나의 부수적인 것들에 불과하므로 나의 본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것들로 나를 인식하고 설명한다는 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코끼리의 긴 코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를 길쭉하다고 이야기할 것이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를 두꺼운 기둥 같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코끼리의 일부를 설명하는 말이 될 뿐 코끼리라는 동물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길쭉한 게 코끼리일리 없으며, 두꺼운 기둥이 코끼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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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사람들은 자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만나보니 어떤 것 같다' 'ㅇㅇ 씨는 그런 것 같네요' 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말에는 외모나 성격 등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기 마련이다. 가령 인상이 좋다던가, 성격이 좋으신 분 같다는 식으로 말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인상이 좋다던가 성격이 좋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아예 없는 말은 예의상 인사말로도 건네지 않는 듯하다.




그런 내가 어떤 사람을 마주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머리가 좋으신 것 같네요' '똑똑하시네요'라는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 보는 나를 두고 머리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들이 예의상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것 같다'라는 말이 인상이 좋다던가, 성격이 좋은 것 같다 라는 말보다 더 쉽게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의 깊이 이런 것을 느끼고 알 수 있으니까 그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머리가 좋다라는 표현에 큰 감흥이 없다. 일단 내가 살아오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고, 나 정도의 생각은 누구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아주 보편적인 두뇌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두고 머리가 좋다고 하는 말들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그냥 흘려듣는다.




그래서 어제는 가까운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가식을 다 걷어내고 진짜 솔직하게 답해달라 했다. 먼저 이 친구를 소개하면, 서울 안에 법과대학을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법원직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이다. 법원직 공무원을 학교 다니면서 1년도 안되는 수험기간 동안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런 친구에게 먼저 내가 물었다. "너는 너의 머리가 100점 만점에 몇 점 정도 되는 머리라고 생각하냐?" 친구는 자신이 머리에 대해서 65-70점 정도로 평가했다. 그리고 물었다. "나는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 라고. 그 친구가 말했다. "75-80점 정도"되는 것 같다고 했다. 머리의 좋고 나쁨은 상대적인 거니까 이 친구는 내 머리가 자신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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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머리가 좋은 건 아닐까? 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난 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번 생각해봤다. 내가 정말 머리가 좋은 건 아닐까?









# 3.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내가 머리가 좋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일단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학교 성적. 뭐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SKY를 갈 정도는 아니었다. 암기력이 좋은가? 사람 이름도 잘 못 외운다. 대체 어떤 게 나를 똑똑하게 만드는가. 사람들은 왜 내 머리가 좋고, 왜 나를 두고 똑똑하다는 말을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를 설득할만한 똑똑하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2가지 정도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경험이 있긴 하다.





Episode 1.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급별로 1박2일 수학여행을 떠났다. 우리 반은 강촌으로 갔다. 나는 학급 회장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자, 남고에 남선생님이었던 우리 반은 당연히(?) 선생님과 함께 신이 주신 물방울을 잔에 따라 마셨다. 신이 주신 물방울을 마실 땐 항상 건배사 같은 게 필요한데, 그때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있는 그 자리에서 '20년 역사상 ㅇㅇ 고등학교를 가장 빛낼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하시며 건배 제의를 했다. 당시 이것이 이해가 안 가는 이유는 일단 내 성적은 반에서 1등이 아니었다. 학급회장이긴 했지만 1등을 놔두고 2등인 나를 그렇게 표현하시는 건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인문계 고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모두가 듣는 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었을까였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도 될 텐데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있는 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Episode 2.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나는 학부모와 선생님의 유착관계가 싫었다. 치맛바람이 센 학부모들이 학부모회에 가입해서 학교에 여러 가지 후원도 하고 각 선생님들과 친해지면서 "우리 아들 잘 봐주세요" 하는 이런 행태가 싫었다. 당시 나는 2학년 전체 학생회장이었다. 학생회장이 되자마자 나는 어머니께 학부모회에서 탈퇴하시라고 이야기했다. 학생회장의 어머니가 당연히 학교에 더 많은 후원을 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선생님과 밀착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학급반장만 해도 그런 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처음에 '그래도 되냐' 하시면서 망설이셨다. 그 뒤로도 어머니는 고민하셨지만 나는 무조건하지 말라고 했다. 아들이 회장이니까 부모가 뭘 해야 한다는 구태연한 관습에 정말 화가 났다. (맞벌이 부모를 둔 친구들은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런데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은 알 것이다. 아들이 학급회장만 하더라도 반 친구들에게 피자나 햄버거를 돌려야 한다는 것을. 회장이 된 아이는 그것을 당연시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뽑았으니까 당연히 피자나 햄버거를 먹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친구들에겐 조금 미안한 얘기이지만 중고등학교 때 학급회장, 학생회장을 하면서 피자, 햄버거를 돌리지 않았다. 피자, 햄버거 먹으려고 반장 뽑는 거면 차라리 날 뽑지 말라고 했다. (리더십은 돈으로 살 수 없는거고, 리더는 돈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어찌 되었든 우리 어머니는 내가 학생회장이 된 2학년 때부터 모든 학부모회의 활동을 중단하셨다. 2학년 2학기. 우리 어머니는 학부모회에 참석하지 않으셨지만, 학부모회는 운영되었다. 학생회장의 어머니가 없으니 각 반 회장과 총학생회 부장들의 어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학부모회는 운영되었다.

2학년 2학기 학부모회와 선생님들의 모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자녀들의 성적이나 학교생활 이야기를 했다. 우리 어머니는 학부모회에서 탈퇴하셨으니 당연히 그 자리에 없었고, 며칠이 지나서 그 모임에 참석한 다른 어머니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나의 담임 선생님이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하셨단 거였다. 'ㅇㅇ 처럼 해야 한다고. 내가 교직생활 20년을 넘게 했지만 ㅇㅇ 같은 아이는 처음 본다고.' 칭찬을 하셨다고 했다. '이 자리에 ㅇㅇ 어머니가 계시지도 않지만, 개인적으로 뭐하나 얻어먹은 거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학부모와 선생님들 자리에 일단 우리 어머니는 없었으니 우리 어머니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은 아님은 분명하다.








# 4.



'내 머리가 좋은건 아닐까?'라는 질문에 100번 양보해서 근거를 대자면 이 2가지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2가지 경험이 딱히 머리가 좋아서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다. 머리가 좋다고 하기엔 성적이 탁월하진 않았으니까.



뭐 어찌되었든 학생회장도 하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친구들도 머리 좋다고 하는 거 보니 머리 좋은 거 맞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진심 100%), 100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하자. 그래야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면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데 "난 왜 이렇게 사는걸까?" 친구들은 공무원도 하고, 대기업 사무직으로 초봉 5천 이상 받으면서 잘 다니고 있는데 나는 왜? 그들보다 잘 살지 못하고 있는거지? 머리가 좋으면 더 잘사는게 당연한거 아니야?








# 5.




머리가 좋다는 것, 똑똑하다는 것은 분명히 인간 사회에서 큰 장점이다.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머리가 좋은 사람이 더 잘 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던 애들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지도 않다. 대체 왜 이런 거지? 머리가 좋으면 더 잘 사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나?




그동안은 이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리고 살았었다. 더 잘 살고 못 살고는 머리 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 삶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 거기에는 머리도 분명히 있지만 용기, 결단력, 인내력 등 다양한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그런데 뭔가 좀 시원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좋은데 잘 살지 못한다면, 그 좋은 머리를 상쇄할 만큼 용기나 결단력, 인내력 등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리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머리가 좋은데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은 겁쟁이 중에 겁쟁이고, 결정 장애가 있을 정도의 우유부단한 사람인가? 주변에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냥 보통 사람들 만큼은 다 생각하고 다 살아가는 것 같았다.







# 6.



나만 해도 그렇다. 100번 양보해서 주위의 평가대로 내 머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다고 해보자. 나는 살면서 내가 결단력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인내력?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밤 11시까지 책을 읽으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지독하게 독서했다. 인내력이 없는 건가? 머리가 남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다른 능력들- 결단력, 인내력 등도 남들만큼은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런데 왜 나는 주위 친구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있지? 내가 그렇게 머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좋고, 다른 능력들도 뒤지지 않는다면 지금의 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거지?








# 7.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일까? 무릎을 탁 칠만한 통찰력이 필요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왜 더 잘 살지 않는 거지? 왜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는 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더 유리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거야?



나는 살아가면서 남들이 나만큼은 다 생각하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보니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다. 나만큼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런 것을 보고 사람들은 나를 똑똑하다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신기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정도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단 말이야? 그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이야?



모델하우스에서 아파트 견본만 보고 몇억 짜리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사람들, 대형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물건들을 그냥 비교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이게 대다수 사람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라는 건가? 평생 모은 몇억을 쓰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도장을 찍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 8.



2시간을 고민했다. 사회 구조를 생각했다.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생각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을 가졌다는 것이고, 이성은 생각을 하게끔 하고, 사상을 만들어내 더 나은 사회로 인류는 진보해왔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머리가 좋다는 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머리가 좋은 순으로, 똑똑한 순으로 삶의 질이 순위 매겨지지 않는가?





머리 말고 다른 요소들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 답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답이다. 그래서 그 답은 답이 될 수 없다. 그 답이 비록 맞는 답이겠지만, 그렇게 결론 내리고 이 글을 마친다면 이 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리고 2시간동안 고민을 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 9.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산업사회. 비록 지식정보화 산업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인류 사회가 운영되고 있다. 산업사회의 핵심은 분업이다. 생산과정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서 생산량을 극대화했고, 업무를 지극히 작게 만들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일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그 결과, 인류는 전례가 없는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인구론을 쓴 멜서스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무색하게 할 만큼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 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사회구조에 말이다.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명목하에 자행되고 있는 '분업화'와 '전문화'. 이 구조에 내가 찾던 답이 있었다. '분업화'를 통해 '전문화'를 추구하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생산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극히 작은 생산과정의 일부만을 맡아서 하는 산업사회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옷핀을 만드는 작업에서 핀을 구부리는 작업만을 맡은 사람에게 생각보다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생각은 생산에 방해가 된다.










# 10.





다시 좀 더 그럴듯한 말로 정리해보면, 노동자는 자신의 결정과 계획에 따라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노동을 해야 한다. 자본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이뤄지는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는 노동을 하면 할수록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은 제각각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생존을 위해 노동만을 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생산을 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린 각 개인들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처해졌고, 그렇게 인간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머리가 좋다, 똑똑하다, 생각이 많다라는 건 더 이상 더 잘 사는데 필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시키는 일을 잘하고 묵묵히 참고 견디는 사람이 조직의 틀 안에서 승승장구하는 세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왜?'라는 질문은 효율성에 방해가 될 뿐이기에 '왜?'라고 묻는 사람이 아닌 '네!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 11.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알파고 등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봇들이 사람을 대체할 것이고 사람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의 소멸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정말 그럴까? 로봇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버릴까? 로봇은 인류의 적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전환되는 것이다. 과거에 전화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전화교환원'이 있었다. 발신자가 전화를 걸면 중간에 전화교환원은 수신자에게 다시 연결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전산화된 지금은 이제 전화교환원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전화교환원이 사라졌으니 일자리의 숫자는 줄어들었는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새로운 일들이 필요해졌다.



알파고가 인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자,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포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로봇을 이길 수 있을까? 이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분명한 건, 인류는 '이성'을 통해 생각이라는 걸 무기 삼아 다른 동물보다 우월적 존재로 거듭났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생각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처하자 인류는 굳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무섭지 않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이빨을, 치타의 빠른 달리기를, 코끼리의 강력한 힘을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생각하는 로봇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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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나는 똑똑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제 내가 똑똑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증명할수도, 알 수도 없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건 알겠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요가 없으니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이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효율성'을 미덕으로 배워온 우리에게 그 밖에 모든 것은 낭비이며 사치이며 할 필요가 없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고, 스스로 로봇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대로 가면, 언젠가 로봇이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Cogito ergo sum ) "



나는 비록 잘 살지는 못할지언정, 로봇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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