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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Oct 14. 2017

착취세대의 탄생

청년들은 좀 잘 살고 싶다

착취 세대의 탄생



  오늘의 2030세대를 부르는 명칭은 많았다. N세대, G세대, 88만원세대, N포세대, 달관세대 등. N세대는 ‘Net 세대’의 줄임말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세대’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인터넷과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임을 의미한다. 



G세대는 ‘글로벌(Global)’과 ‘그린(Green)’의 G를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태어나 글로벌 마인드와 미래지향적이고 미국이나 유럽 등과 같은 선진국에 견주어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세대를 의미한다. 



88만원세대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20대의 월평균 급여 88만원에서 파생된 명칭으로 취업난과 더불어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는 20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N포세대는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뜻하는 3포세대부터 시작해 내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세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에 이어 많은 것들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에서 나온 명칭이다. 



달관세대는 저성장 국면과 높은 실업률로 이미 좌절한 청년들이 희망과 의욕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진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처럼 N세대와 G세대 등 희망이 넘치는 명칭에서부터 88만원세대 N포세대, 달관세대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명칭들까지 시대는 그들에게 많은 이름을 부여했다. 그 많은 명칭들에 담긴 의미 하나하나가 오늘의 2030세대를 잘 나타내주고 있지만, 이런 수많은 명칭을 가진 그들에게 또 하나의 명칭을 부여해보고자 한다. 바로 ‘착취 세대’이다.





  나 역시 2030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정적인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막막한 미래와 팍팍한 현재 사이에서 삶이 그저 고달프게만 느껴지는 나에게는 누군가 나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빼앗아 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마치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처럼, 나의 시간과 노력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마치 헤밍웨이의 작품 『 노인과 바다 』에서 노인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항구에 다달았을 때 노인이 느낌 감정이랄까. 청새치를 상어들에게 모두 뺏기고 결국에 자기 손에 남은 것은 뼈만 남은 그런 느낌말이다. 뭔가 노력은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막상 내게 남겨진 것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나는 착취라고 규정지었다. 나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든 성과물을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것. 










  착취라는 말이 전근대적 단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계급사회에서나 존재했던 개념을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현대사회에서 사용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착취’라는 단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우골이란 말은 학비 마련을 위해서 부모가 내다 판 소의 유골이라는 뜻인데, 이런 등록금을 가지고 건물을 짓는 대학의 행태를 풍자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소를 내다 팔아도 등록금을 댈 수가 없다. 최근 한우 가격이 많이 올라서 소 한 마리 가격은 1천만원정도라고 한다. 2016년 대학교 평균 등록금은 667만 5천원이다. 소 한 마리 팔아봐야 3학기 정도의 등록금이 마련될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소를 팔지 않는다. 대신 정부에서 돈을 빌려준다.




  담보능력이나 상환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정부가 학자금을 저리로 대출을 해준다. 정부에서는 학생일 때 빌려주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상환받겠다는 의도로 이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취업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채용규모가 과거와 같이 충분하지 않게 되었고 대졸자는 과거보다 더 늘어나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취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신용불량에 처하게 되었고 취업이 된 학생들도 졸업과 동시에 마이너스에서부터 출발을 하게 되었다. 시작하자마자 0이 아닌 마이너스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금리가 저렴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얼마되지 않는 초임 임금에 생활비를 제외하고 학자금 대출을 갚다보면 저축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을 학자금 대출을 갚는데 쓰고만다. 학자금 대출 갚느라 연애는 사치가 된지 오래다.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하는 나의 20대, 나의 가장 소중한 젊음은 마이너스에 빠진 나의 삶을 간신히 지표면으로 끌어올리는데 쓰는 것이다.





  학자금 대출만이 문제가 아니다. 나의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르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 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그나마 가처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전세 물건은 점점 사라지고 따박따박 월급에서 일부분은 떼어줘야하는 월세만 시장에 가득나와 있다. 전세 물건이 귀하다보니 전세값은 오르고 또 오르고, 아무리 정부에서 저금리로 전세대출을 해줘도 그 이자금액이 만만치 않다. 





  쥐꼬리만한 월급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서 월급날이 오면, 원천징수되어 금액은 기대치보다 작다. 그 세금은 대부분 복지에 쓰이는데 얼마전부터 정부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노인연금을 주기 시작했다. 노인 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노인빈곤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그들에게 경제적 보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표율도 높고 인구수도 점점 늘어가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나라정책은 그들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2030세대의 정책보다는 5060세대의 정책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령화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성장이,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지난 40여년간의 유례없는 고성장 끝에 이제는 어느정도 한계점에 이르러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장의 과실 역시 정체되기 시작했다. 과거 고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에는 올해 100의 성과물이 나왔다면 내년에는 110의 성과가 나왔는데, 이제는 102의 성과물이 나올 뿐이다. 이처럼 성장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기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과거에 A회사의 신입사원이 100명이었다고 해보자. A회사는 전반적인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회사 역시 고성장을 이어갔다. 100명의 신입사원은 100명의 대리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100명의 차장, 100명의 부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00명의 부장들은 본사의 임원으로, 혹은 자회사의 임원으로 승진하여 자기자리를 찾아갔다. A회사의 사업이 번창하자 사업부서의 확대가 필요했고 그렇게 생겨난 사업부서의 숫자만큼 부장의 자리 역시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A회사에 신입사원이 100명이 입사했다고 하면, 지금은 1명정도가 임원을 달 수 있다. 여기서 1명은 CEO가 아니다. 기업의 임원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성장이 정체되기시작하면서 기존 사업부의 구조조정이 필요해졌고 그렇게 정리된 사업부의 숫자만큼 자리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물론 사라진 사업부의 숫자만큼 2030세대들은 자신들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N세대, G세대라는 그 어느 세대보다 화려한 명칭과는 다르게 그 속은 어느 세대보다도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았고,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88만원세대, N포세대, 달포세대와 같은 N세대와 G세대 정반대편에 위치한 다른 세대명칭들은 이러한 2030세대의 속내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2030세대의 어려움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전반에 자리잡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 고성장과 저성장, 빈익빈 부익부로 요약할 수 있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에서 2030세대는 미래를 이끌어가야 하는 세대임과 동시에 약자인 세대다.




  미래를 이끌어간다는 책임감과 아무런 힘이 없는 무력감 사이에서 2030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20대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아르바이트 현장을 보면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난다. 2017년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이름은 최저임금이지만 사실상은 최고임금이다. 최저임금으로 정해진 그 금액이상을 주려는 사업주는 없다. 그마저도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 교육비, 수습기간 등의 명목으로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기술도, 마땅한 경력도 없는 20대들은 그저 그 제안을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일을 하지 않던지 이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그 돈이라도 받을 것인가 말것인가의 상황에 몰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것과 같다. 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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