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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Dec 12. 2017

과거의 성공공식을 잊어버리자!

시대가 변화한다. 성공의 규칙도 변화한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성공한 인생- 사람마다 그 정의는 모두 다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인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고층 아파트, 대형 고급 세단, 멋진 배우자, 안정된 직장, 높은 소득, 행복한 가정. 이런 단어들로 설명되는 인생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인생을 두고 성공했다고하는데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위에 나열된 단어들을 하나하나 자기의 인생에 집어넣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이러한 성공한 인생을 살기위해 지켜야할 규칙이 단순했다.




1. 명문대학교를 졸업한다

2. 고시에 합격한다. 의대에 진학한다.







위 1번과 2번을 해내면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명문대학교에가서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봐서 고위공무원이 되거나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는 인생.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변호사로서 부를 축적할 것인지 아니면 판사 검사가 되어 사회 정의를 구현할 것인지를 고민하였고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면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길 원했다. 자기 자녀의 적성이나 재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재능과 적성, 환경에 관계없이 무조건 공부를 시키고자 했다. 공부만 잘하면 명문대학교에 갈 수 있고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공부만 잘하면 너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란 누구든지간에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회의 암묵적 규칙은 모든 이에게 열린 기회였고 희망이었다.



  그렇다면 명문대학교를 가기위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 등교시간에 지각하지 말아라.

  -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

  - 숙제를 정해진 시간까지 해내라.

  - 수업시간에 늦지말아라.

  - 수업시간에 집중해라.

  - 교칙을 잘 지켜라.

  - 예습, 복습을 잘해라.

  - 친구들과 떠들지 말아라.

  - 선생님에게 인사를 잘해라 



위와 같은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학교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는 모범생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부모님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이런 모습을 지닌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아서 명문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런데 저런 규칙을 잘 지킨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미분, 적분, 2차함수, 뉴턴의 제1법칙, 원소주기율표, 고전시가 등 실생활을 살아가는데는 앞서 언급한 지식들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뉴턴의 제1법칙을 잘 안다고해서 급정거하는 버스 안에서 넘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원소주기율표를 암기한다고해서 쓰레기를 성분별로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분 적분을 잘한다고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대체 왜 저런 지식들을 배우는 것일까? 차라리 2차함수 3차함수를 배울 시간에 요리를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요리를 배우면 같은 식재료로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테니 아마 함수를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실용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가 아닌 함수를 배우는 이유는 교육을 통해 얻고자하는 목표가 실용적 지식획득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지식이 무엇이냐보다는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얻고자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바로 평등한 기회의 제공이라고 생각한다.



  원소주기율표를 외우고 미분과 적분을 계산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잘 한다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참고 해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참고 해내었다는 말은 어떤 일이 주어지든지 그것을 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나 학교에서 주어지는 규칙들을 살펴보면, 등교시간 엄수, 수업시간 엄수, 주어진 과제수행 등이 학생들에게 주어지고 평가하는 주된 규칙인데 이런 규칙들도 따지고보면 ‘성실’, ‘근면’, ‘인내’, ‘책임감’과 같은 덕목과 관련이 깊은 규칙들이다.








  즉 학교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모범적으로 마쳤다는 의미는 성실하고 근면하며 인내심과 책임감을 지닌 인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학교성적 1등이 2등보다 성실하고 근면하며 인내심과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을 100% 장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교성적이 300등인 학생보다는 1등인 학생이 더 성실하고 근면하며 인내심과 책임감이 강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과 비용을 모두 들여서 그 사람을 아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선입견’ 내지 ‘편견’을 이용해서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을 이용하곤 한다. 1973년 마이클 스펜스 교수는 구직자 상호간 학력의 차이를 기준으로 고용주는 구직자 상호간 생산성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하여 ‘시장신호이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교라는 공교육 제도는 이처럼 우리사회의 신호역할을 수행해내고 있다. 그래서 의사를 하든지, 변호사를 하든지, 공무원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간에 일단은 학교수업을 잘 받는 것이 무조건 유리하다. 한번 결정된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성실하고 근면하고 인내심과 책임감이 강한 인재는 표준화된 작업공정을 통해 대량생산을 하는 산업화시대에 딱 맞는 인재였다. 근무시간을 잘 준수하며, 성실하게 출퇴근을 하며 주어진 작업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서 맡은 일도 훌륭하게 해낸다. 언어만 조금씩 바뀔 뿐이지 이미 학교에서 평가기준으로 쓰던 기준이 그대로 산업현장에서도 이용되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능력은 학교나 작업장에서나 차이가 거의 없다. 기업은 작업 공정을 최대한 표준화시키고 단순화시켜서 근로자가 손쉽게 숙련되도록 작업을 최대한 쪼갠다. 그래야 작업공들을 단기간에 숙련시킬수 있을 뿐더러 설령 작업공이 그만두더라도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인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짜여진 생산공정은 작업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생산량도 극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늘날까지도 운영하고 있는 우리의 학교교육 시스템은 이러한 산업사회에 적합한 인재양성기관이었고 훌륭히 그 기능을 수행해냈다. 우리는 이러한 교육의 힘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사적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더 이상 양질의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는 제품이 팔리지 않게 되었다. 아니 싸게도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13억명이라는 중국의 노동력이 터무니없는 임금을 받고 근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의 결핍과 필요는 충족되어 물건을 팔기위해서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야 했다. 기존의 물건을 더 싸고 더 좋게 만드는 것으로는 더 이상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없게 되었다.




  학교는 그러한 사회변호에 맞춰서 새로운 인재를 양성해내야 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성실’, ‘근면’, ‘인내’,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도전’ ‘창의’ ‘혁신’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바뀐 시대에 맞춰 도전적이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면서도 열정을 지닌 인재를 찾아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 학교의 제 역할이었지만 학교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 역시도 미국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기관을 시속 100마일로 비유하면서 학교는 시속 10마일, 법은 시속 1마일이라고 이야기했다. 학교나 법이 사회변화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너무나도 늦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의 성공을 머릿 속에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학교는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는 학교에서의 평가기준에 따라 우리의 아이들을, 학생들을 훈육하고 있다. 불확실한 내일보다는 확실한 오늘을 선택하는건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과거의 성공 공식으로는 이미 성공을 할 수가 없는데 과거의 성공 공식에 따라 인재를 길러낸다면 그 인재는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도 사회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매우 열심히 자신의 인생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가며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그에 대한 보답은 과거와 같이 크지 않은 것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30년 전만해도 서울의 4년제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들이 서로 모셔갈려고 했었다. 그 시대에 대학을 다닌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과 사무실에 쌓인 기업원서 몇장 쓰면 대부분이 합격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대학생은 30년전의 대학생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가? 성실하지 않았는가? 인내심이 부족한가? 근면하지 않은가? 



  내가 주위에서 지켜보는 친구들의 모습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 토익을 비롯해서 토익 스피킹, 경제능력시험, 한국사시험까지 이른바 스펙이라는 걸 쌓기위해 방학때도 학교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 방학기간 조금이라도 쉬면서 노는 것을 절대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으로 여긴다. 오히려 19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선배님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 운동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대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대학생들의 취업이 더 어려워졌다. 100장의 자소서를 쓴다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명문대 졸업생들이 취업이 안되서 일부러 학교를 휴학을 하고 추가학기를 다니는 것도 이제는 당연시 받아들여진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우리는 과거의 성공 공식에 따라 자신을 가꿔나가고 있다. 그 공식은 이미 답을 찾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는 데 1시간을 준다면, 먼저 도끼날을 가는 일에 45분을 쓰겠다”고 말하였다. 링컨의 이 말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과거의 성공공식을 잊고 새로운 성공공식을 생각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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