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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Nov 30. 2017

수능에 주식과 부동산 과목이 생긴다면?

노동자 양성에 최적화된 학교교육 시스템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속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기업의 속도는 100마일로 가는데 비해 교육의 속도는 10마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교육은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산업화 시대에 걸맞는 교육이다. 산업화 시대에 의무 교육제도가 시행되면서 그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즉 19세기에하던 교육을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이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표준화된 인재라고 이야기했다. 뭐하나 특출나기보다는 골고루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는 인재말이다. 이러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사회는 학교라는 기관을 통해 교육을 시킨다. 짧은 시간 안에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습득시키는 것에는 학교만큼 효율적인 곳이 없다.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로 손꼽히는 세스 고딘은 자신의 저서 『 린치핀 』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자신을 끼워 맞추라

◆ 지침을 따르라

◆ HB 연필을 사용하라

◆ 꼼꼼하게 필기하라

◆ 매일 학교에 나오라

◆ 시험을 대비하여 공부하라

◆ 과제 제출기한을 놓치지 마라

◆ 예쁘게 글씨를 써라

◆ 맞춤법을 틀리지 마라

◆ 다른 아이들이 사는 것을 사라

◆ 질문하지 마라

◆ 권위에 도전하지 마라

◆ 여러과목을 공부해야 하므로 무엇이든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라

◆ 대학에 들어가라

◆ 좋은 경력으로 이력서를 채우라

◆ 실패하지마라

◆ 난처한 이야기는 하지마라

◆ 운동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을 만큼만 해라. 국가대표가도리수 있을정도로 특출나지 않는한 운동하지마라.

◆ 수많은 특별과외활동에 참여하라

◆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수근대지 않도록 하라

◆ 어떤 주제를 이해했으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라.




  이러한 교육은 특출나거나 개성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다. 보편적이고 무난한, 다재다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다. 어떠한 질서나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들을 지키도록 하는 교육이다. 다시말해 학생들이 가진 특성들을 정해진 규칙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결국 ‘성실’이라는 덕목을 가르치고 윗 사람의 지시를 잘 알아듣고 수행해낼 수 있는 덕목을 길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학교에서 배운 이러한 규칙들은 사실 사회에서 필요한 규칙들이다. 사회에 나가서 우리는 출근시간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하고, 업무시간에는 업무만을 해야 하고, 정해진 날짜까지 각종 서류들을 준비해서 결재를 맡아야 한다. 학교에서 훌륭하다고 가르치는 덕목들이 회사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들이 많다. 단지 등교가 출근으로, 숙제가 업무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도 생각해보면 사회 또는 조직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친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것들은 주로 사회 질서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교양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가르친다. 더하기, 빼기,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상식들,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들 말이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렇게보면 중학교 교육과정까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고 그 이후의 교육은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화 시대는 이런 인재들이 필요했다. 윗 사람들의 지시를 성실하고 잘 수행해낼 수 있는 인재 말이다. 윗 사람들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던지 지시를 잘 수행하지 않는 인재, 자기의 개성이 너무 뚜렷한 인재는 환영받을 수가 없었다. 조직분위기에 해를 가져오고 공동의 목표를 이뤄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벌이 좋으면 쉽게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학벌이 좋다는 것은 좋은 대학, 명문 대학에 진학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초, 중, 고등학교 때의 성적이 우수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결국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에 결석한번 하지 않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조리 받아 적고, 숙제 역시 빠뜨리지 않고 성실하게 수행해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마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연봉과 큰 기업에 들어가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런 학교교육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참 비극적인 교육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이 아닌 양질의 노동력을 양성하기위한 교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평생을 노동자로서 살아가게끔 만드는 교육을 받고 우리는 모두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모으기위해 저축을 한다. 아니 돈을 모으기위해 저축만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돈을 벌수 있는지에 대해서 ‘근로’ ‘저축’ 외에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성실히 일해서 그렇게 받은 월급을 은행에 맡기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돈을 모으는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가난하다. 저축만 해서는 돈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에는 저축만 해도 돈을 어느정도는 모을 수 있었다. 여전히 다른 투자 수단에 비해서는 수익률이 낮았지만 만족할만한 수익을 저축을 통해 얻었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현재에는 저축은 더 이상 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예금 금리가 2%를 밑도는 현실에서 돈을 저축하여 2배로 불리기위해서는 36년이 걸린다. 한평생 다받쳐야 가지고 있던 돈을 2배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니 실질적인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 혹은 오히려 손해이다. 



  그래도 우리는 돈을 벌면 은행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부동산은 투기고, 주식은 위험한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돈을 벌면 은행에 맡겨 이자를 받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모 토크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나와서 자신의 며느리에 대해 칭찬을 한다. 자신의 며느리가 예쁘다면서 그 이유가 주식 같은 것을 하지 않아서 라고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주식은 한순간에 말아먹는 것이니까 그런 나쁜 것을 안하는 우리 며느리는 참 착하다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주식에 대한 인식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가 배우지 못해서이다.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개개인이 따로 배우기도 쉽지 않다. 매스컴에서는 주식해서 망한 사람이야기들만 나오니, 주식은 쳐다보지도 말고 집안을 말아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히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목으로 주식과 부동산이라는 과목을 배운다면 어떻게될까? 온 나라 온 국민이 투기꾼이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배운다고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 무슨 과목을 배우느냐는 사실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1주일에 음악을 1시간 더배우느냐 마느냐, 국어를 1시간 더배우느냐 마느냐는 단순히 수업시간의 조정이 아니라 해당 교과목의 이해당사자들의 권력투쟁이다. 신규과목이 생기게 되면 거기에 따른 교사가 충원되어야하고 해당 과목의 중요성은 훨씬 높아지게 된다. 기존의 과목이 폐지가 된다면 해당 과목의 교사는 더 이상 자신의 지식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고, 해당 과목의 학문 권위도 떨어지게 된다. 이렇다보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엇을 배우느냐의 문제는 꼭 사회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해당 과목의 이해관계가 걸린 아주 복잡한 문제가 된다. 결코 우리가 배우는 과목들이 꼭 중요해서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미분 적분일까? 미분 적분은 나도 배웠지만 문과로 진학한 지금은 거의 쓸일이 없다. 경제학을 공부할 때 조금 쓴 것 빼고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1주일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학생들에게 미분 적분을 배우게하고 있다. 차라리 이런 미분 적분을 공부할 시간에 다른 것을 배운다고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요리 같은 것 말이다. 사람이 생존하는 동안 무엇인가를 항상 먹어야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요리는 정말 평생을 써먹을 수 있는 굉장히 유용한 지식이다. 아마 비용 투입대비 가장 효과적인 교과목이 될 것이고, 맛있는 음식이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삶의 질도 상당히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과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요리를 배우지 않는다. 미분적분은 중요하고 요리는 중요하지 않아서 요리는 배우지 않는 것일까?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보기엔 요리가 미적분보다 100배는 더 중요하다. 이렇듯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라는 것은 꼭 중요해서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 내막에는 뭔가 정치적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무언가가 얽혀있어서 배우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주식과 부동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무언가 돈을 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행위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것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왜 학교에서는 주식, 부동산과 같은 금융지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이러한 활동이 생산성과는 큰 연관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근대공교육의 시작이 산업화의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노동자에게 생산성과 관련이 없는 것은 크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저 적당한 업무수행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만 습득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식, 부동산과 같은 금융지식은 다른 것에 비해 필요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이러한 지식을 가르치지 않게됨으로써 우리는 모두 금융 문맹이 되어버렸다. 주식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고, 부동산이라고 하면 투기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다행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꼭 학교교육이 아니어도 개인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본인이 필요성만 인식하고 있다면 말이다. 서점에 가서 관련된 서적을 읽어도 좋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금융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금융지식들을 습득하지 않는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누군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또 무슨 시험을 따로 치는 것도 아니라서 등수를 매기지도 않으니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매스컴에서 말하는대로 주식, 부동산은 투기이고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에 갇힌채 오늘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그저 저축만 하는 것이다. 물가상승률도 안되는 이자수익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4연속 연임을 했던 앨런 그리스펀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앨런 그리스펀의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글자를 아는 것보다 돈과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돈과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앨런 그리스펀 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교육컨설턴트 세리아 제인 앨러비는 금융교육이 국가 전략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이미 국가 전략차원에서 정규 교과과정에 금융과목이 추가되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돈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한테는 돈을 가르치지 않고,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아이들이 호기심에 돈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아직은 몰라도 돼”라는 말로 최대한 숨기려고 한다. 순수성이라는 개념이 물질적인 것과 상반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 결과 우리는 금융문맹이 되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성인 4명중 1명이 금융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금융 문맹’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3명중 2명이 금융문맹에 속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에서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금융 이해력’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 100점 만점 중 평균점수가 66.5점으로 나왔다고 한다. ‘부자 되세요’ 라는 한 광고 카피가 새해 인사말이 될 정도로 돈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어떻게 돈을 관리하고 불려야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이미 한발 앞서 이러한 돈에 대한 교육을 시행중이다. 미국은 대통령 직속 금융 교육 자문기구를 두고 43개 주(州)의 고교 교과에 금융을 포함시켜 교육을 하고 있다. 이중 17개 주에선 아예 의무교육으로 편성했다고 한다. 영국도 중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금융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은 순수해야한다는 생각에 갇혀 돈에 대해 거리를 두게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다른 선진국에서는 하루라도 어릴 적에 돈에 대해 개념을 갖추도록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돈’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고 ‘돈’이 사람보다 중요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돈을 천하게 여기고 경시하는 문화가 되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돈을 자유롭게 부리고 돈을 통하여 더 많은 자유와 더 인간다운 삶을 꾸리기 위해서라도 돈에 대한 관심과 교육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앞으로 돈은 우리 삶에 더 많은 영역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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