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빅픽쳐
그것은 어쩌면, 미래에서 온 빅픽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던 나...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는, 흔하디 흔한 취업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유학을 준비했다. 미국에 가서 멋진 여성, 멋진 척척석사, 척척박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다 취직을 할 때, 나는 취직 같은 건 하지 않겠다며,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유학 준비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빈둥거리고 있을 때, 과 선배님이기도 하고, 교수님이기도 한 Y교수님과 함께 연구조사원으로 C기업의 신입사원 오프라인 교육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일 서울역으로 출근해서 기존의 오프라인 교육을 분석하고, 기존 사원들을 만나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하고, 교육 담당자의 Needs를 분석하여 문서를 만들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우던 것들이 현장에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한없이 재밌었다.
그리고, C기업의 구내식당 밥은 정말 맛이 있었다. 그래서, 알바였지만, 매일의 출근이 즐거웠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같이 일하던 친구와 Y교수님, 그리고 나는 C기업의 한쪽 프로젝트 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교수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고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예. 아 그러십니까? 아 여기 똘망똘망한 애들 두 명 있는데, 예 알겠습니다. 얘기해보겠습니다."
교수님은 전화를 끊지도 않고, 나에게(이미 그때 다른 친구는 다른 회사에 취업이 확정된 상태였다.) 물으셨다. 온라인 교육을 하는 탄탄한 벤처기업이 있는데, 출근하겠느냐고.
나는 마음속으로 '아, 저 유학 갈 건데요, 출근은 좀...'이라고 생각했으나, 가기 전까지 다녀볼까? 하는 마음에 얼떨결에 예 뭐...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교수님은 "네네. 그럼 3월 2일에 보내겠습니다."라고 전화기 속 상대방에게 대답하고 계셨다.
IMF로 98, 99년에 선배들은 한참 취업난을 겪고, 2000년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벤처 열풍이 불던 그때.
대기업이 아닌 벤처기업에 덜컥 취직하는 건 좀 불안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의 기류를 타고 내게 온 좋은 기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교수님 백으로, 면접도 없이 낙하산으로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2000년 2월에 입사가 확정된 것이다.
유학 가기 전까지 잠깐만 다녀야지, 그때까지 돈을 모아서, 미국으로 떠날 때 부모님께 돈도 좀 드리고, 나도 사고 싶은 거 사고, 학비에도 좀 보태야지...라고 생각하며 했던 첫 출근이, 2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를 먹여 살리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요즘 말로 1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C기업에서의 일도 슬슬 정리를 하고, 첫 출근 때 입을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구두를 사면서 나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의 바다에 띄워질 배에 승선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유학가겠다는 생각을 안했더라면, 다른 친구들처럼 착실히 취업준비해서 HRD쪽으로 갔더라면,
오프라인 교육을 했더라면, C기업에서 Y교수님과 프로젝트를 안했더라면,
교수님이 전화 받은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얼떨결에 네... 라고 대답을 안했더라면,
그리고 2001년에 그 일이 없었더라면,
예정대로 유학을 갔더라면...
이 흔들리는 배에, 나처럼 겁 많고 멀미 많은 아이가 승선하지 않았을텐데....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드디어, 첫 출근의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배에 올라타자마자,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