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꿈이었을까.

출근 첫날의 잊지 못할 기억.

by mari

유학을 꿈꾸며 준비하던 졸업생. 얼떨결에 온라인 교육 콘텐츠 바다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첫 출근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벤처인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전공을 살려 교육업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IMF 여파로 다들 어려웠고, 벤처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인기를 끌던 그 때,
1년을 휴학했던 나는 1년 먼저 입사한 친구들보다
연봉을 훨씬 많이 받고 입사를 하게 되어 약간 우쭐한 기분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성남에서 강남까지 버스를 타고. 첫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음... 드디어 강남이야. 공기도 좋군. 지각하지 말아야지.

나는 열심히 걸어 첫 회사를 찾아 갔다. 손에는 책상을 꾸밀 키티 굿즈를 바리바리 들고.

드디어 회사 도착.


#1

문이 잠겨있었다.

시간은 8시 40분쯤...

굳게 닫힌 회사의 철문이 나를 조롱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와, 회사는 처음이지? 그런데 왜이렇게 일찍 왔어.

아니, 8시 40분인데 아무도 없다구요? 실화입니까? 적어도 30분 전에는 와서 업무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꽈~~~~~

앉을데도 없고, 다른데를 갔다 오기도 애매한 시간.

나는 그냥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9시가 되는 20분이 200분 같았다.

9시를 몇분 안남긴 시간이 되자, 누군가가 출근을 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 사람은 나를 보더니, 오늘 출근한다는 신입이구나?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왜 이렇게 일찍와서 오바를 하냐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아 이것이 사회의 맛인가...

어찌어찌 해서 출근을 완료하고, 가져온 굿즈들로 책상을 화려하게 꾸민 뒤,
팀장님이란 사람이 나를 데리고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시켰다.

이렇게 뭐... 햇병아리 출근은 성공적.


#2

첫 출근에 첫 업무가 주어졌다.

졸업하기 전부터, 비슷한 회사에서 여러 번의 알바 경험도 있었고,
C기업에서 신입사원 교육 기획에도 참여했던지라, 대략적인 업무의 흐름은 알고 있었고,
신입이에게 일을 줘도 뭐 얼마나 어려운 일을 주겠나 싶었다.

팀장이 나를 불렀다. E대학을 나온 자부심이 대단한 팀장.

사실, 내가 공부한 전공은 그 당시만 해도, 전국 대학 중에 2개 대학에만 존재하는 학과였다.
그녀가 졸업한 E대학교와 내가 졸업한 H대학교.

그래서인지, 그날부터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십몇년이 지난 그날까지도 그녀는 나를 경계하고 못잡아 먹어 안달이 났었지.

그녀는 나에게 대본같은걸 툭 던져주며,

-이거 나레이션 녹음할거니까, 먼저 한번 훑어보고, 이따가 성우 오면 나레이션 녹음해서 대본에 맞게 잘라놓으세요. 이정도는 할 줄 알죠?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녹음을 안해봐서요.

녹음실이 어딘지도 안알려주고, 프로그램 다루는것도 안알려주고, 다짜고짜 해보지도 않은 성우 녹음과 편집이라니... (지금은 나레이션 녹음을 다 아웃소싱 주지만, 그때는 대부분의 업체에서 직접 녹음을 진행했었다.)

-H대에서는 이런것도 안가르쳐 주고 졸업을 시키나보지?

그녀는 앙칼지게 한마디를 하더니, 나를 데리고 녹음실로 이동했다.


작은 부스 안, 시커먼 스티로폼으로 도배된 그곳에 유리문이 하나 있고, 컴퓨터가 하나 있었다.

성우가 오면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 녹음을 하고, 엔지니어는 유리문 밖에서 신호를 주고, NG를 잡고, 틀린 발음 잡아주고, 끝나면 편집까지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프로그램도 만질 줄 모르는데... 난감했다.

팀장은 나를 덩그러니 두고 나가버렸다.

잠시 후, 회사에서 오래 잡일과 문서 작업등을 봐주는 알바생이 들어왔다.

이런거 해봤냐기에 안해봤다고 처음이라고, 그라도 잡고 하소연을 했고, 그 사람은 친절하게 다 가르쳐 주었다. 테스트까지 해보고 나서 그 사람은 나갔고, 곧이어 성우가 왔다.

투니버스에서 만화 더빙을 하는 유명한 성우라고 했다.


유후. 이제야 기분이 풀렸다. 그렇지 이게 내가 가진 직업의 매력이지.

다양한 방면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

성우는 몇십장의 대본을 프로페셔널하게 순식간에 읽고 스케쥴이 있다며 총총이 사라졌고,

나는 편집에 돌입했다.

작은 부스 안에서 첫날이랍시고 정장을 입고, 대본을 보며 정신없이 편집을 마치고 보니,

어느덧 시간은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 회사는 점심도 안먹고 일하나... 점심시간이 1시부터인가?

부스 밖으로 나와보니,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등도 다 꺼져있어서 사무실은 어두침침했다.

문을 열고 나가보려고 하니 철문은 밖에서 굳게 닫혀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신입이를 두고 다 밥먹으러 간거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출근 첫날, 아무것도 안알려주고 할줄도 모르는 일을 시켜놓고서는
점심도 안먹이고 자기들끼리 다 밥먹으러 나가버린 것이다.

일찍 출근한다고 새벽밥 먹고 나와서 배도 고파 죽겠고, 서럽기도 하고,
정말 요즘말로 멘붕인 상태.

이것은 꿈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꿈이겠지... 신입사원을 두고 다 나가버리다니.

꿈일거야.

한참을 멍하니 불도 켜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그때 철컥 철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루루루루루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신입!!!!!!

나를 녹음 부스에 넣어두고, 다들 까먹고 나가버린 것이다.

후헐헐헐헐


오전에 나에게 겁나게 까칠했던 팀장은, 미안했는지 와서 엄청난 사과를 던져댔고,

결국 나는 팀장 한명, 알바 한명과 함께 1시도 넘어서 나가 결국 점심을 먹게 되었다.

부끄럽고 서럽기도 했지만, 회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모두 팀장에게 뭐라고 하면서 내 편을 들어주었고, 이후로 사람들의 태도가 엄청 우호적으로 바뀌며 프렌들리 해져서 나는 오히려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출근 첫날 먹은 것은
생선구이 정식이었다.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지금도 잊지 못할, 눈물과 짭조름한 생선과 된장찌개가 섞인 맛이다. 사회의 맛.


팀장이 되고, 부장이 된 지금도 그 날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신입사원이 오면 꼭 점심을 챙겨주도록 해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기획자로서 첫 기획서에 대한 업무가 곧 주어지게 되었다.

잘 해낼 수 있겠지? 아자아자!

기획자로서의 결의를 다졌다. 배운 전공도 오만프로 이용해서 기획을 해보리라!

하지만, 부스에 갇히는 것쯤은 새발의 피도 못되는 험난한 일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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