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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Jul 27. 2020

서평.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땅 위에서 하늘 위를 보면 구름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구름이라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수증기가 모여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막에서 보면 멀리 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층을 이뤄 빛의 반사 때문에 일어난 신기루 현상일뿐이며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10분이든 10년이든 우리는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로벨리에 의하면 시간은 상대적이다. 정밀한 시계로 측정을 하면 산 꼭대기에 있는 사람의 시간은 산 아래 있는 사람의 속도보다 빨리 흐른다. 지구의 질량과 중력 때문에 지구 표면에 가까이 있을수록 시간의 속도를 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머리에서 측정한 시간의 속도는 발바닥에서보다 더 빨리 흐른다. 즉, 어디서 측정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다.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빨리 움직이는 우주선 안에 있었던 사람의 시간은 우주선 밖에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더 천천히 흐른다. 시간이 위치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인데, 그럼 공간은 어떨까? 내가 한국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와 프랑스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 역시 같을 수 없다. 프랑스에 있는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면 내가 보는 친구의 모습과 친구의 목소리는 과거의 것이다.  ‘지금 여기' 내 눈과 귀가 인식하는 형상과 소리는 빛과 진동이 전달되기 전 그 당시 ‘지금 여기' 이므로 시간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양자물리학 관점에서 본 세상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사건과 관계로 이루어졌다.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과 나를 이루는 양자가 계속 변화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에서 미래로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들의 관계가 엮이는 것을 우리가 시간으로 인지할 뿐이다. 유리컵은 컵에서 조각으로 깨지며, 건물은 붕괴되어 먼지가 된다. 변화는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엔트로피, 즉 무질서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조각이 컵이 되지 않고, 먼지가 건물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컵은 있는 것이 아니라 깨지는 과정에 있고, 건물은 있는 것이 아니라 붕괴하는 과정에 있듯이, 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사물을 뿌옇게 보면 특정하고 질서가 있어 보인다. 여러 카드를 쌓아놓고 위에는 빨강, 아래는 검정으로 보면 색을 기준으로 질서가 있다. 하지만 카드를 손으로 섞으면 어떻게 될까? 색을 기준으로 무질서하다. 하지만 여전히 카드는 내 손안에 있으므로 그 안에서는 카드가 쌓여있다는 질서가 있다. 카드를 방에 던지면 어떻게 될까? 카드는 이제 손 밖을 넘어 무질서하다 하지만 방을 기준으로 보면 내 방 안에 있으므로 질서가 있다. 관점을 확장하면 구분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래가 현재가 되고, 곧 과거가 되듯이, 과거가 현재가 되고 곧 미래가 된다. 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강이 어디서 끝나는지 구분할 수 있을까? 엔트로피의 높고 낮음이 있을뿐 시간과 공간을 구분할 수 없다.


시간은 존재가 아니라 인식이다.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의해 어렸을 때는 자식, 후배, 학생이 되기도 했다가 나이가 들면 자식, 후배, 학생의 역할은 사라지고 부모, 선배,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예상에 따라 시간이라고 인식하는 것일뿐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시간이 빨리 간다, 느리게 간다, 멈추었다는 것 역시 인간의 인식일 뿐이다. 현재조차 구름과 신기루와 같아서 다만 늙어가는 변화 속에 많은 사건과 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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