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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Aug 03. 2020

서평.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유럽에서 여행객끼리 만났을 때 “어디에서 왔니?”가 보통 첫 질문이다.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건 나는 “한국에서 왔어.”라고 하는 반면 유럽인은 “밀라노에서 왔어.” 또는 “로테르담에서 왔어.”라고 한다. 그나마 대도시면 위치라도 감이 올텐데 소도시이더라도 어쨌든 도시 이름을 댄다. 마치 내가 아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이후부터 나도 내 소개를 이렇게 했다. “서울에서 왔어.”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니 많은 유럽인이 스스로를 독일인, 체코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유럽인인데 사는 곳이 쾰른이고 체스키크롬로프라고 인식하는 것같았다. 이 책은 그 19세기 말부터 형성된 이 유럽 공동체 의식의 배경에 대해 재미와 정보를 결합해 설명해준다. 세 사람의 삼각관계 속사정이 궁금했고, 압도적인 정보의 양을 흡수하기 위해 두 번을 읽으며 교양을 쌓았고, 무려 천페이지를 완독해냈다는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스페인 출신 프랑스 오페라 가수 폴린 비아르도, 남편 프랑스 변호사 겸 사업가 루이 비아르도, 그리고 폴린의 친구인듯 애인인듯 평생 폴린을 지원하다 죽기 전에는 폴린에게 전 재산까지 남긴 러시아 귀족 출신 작가 투르게네프, 이 세 명이다. 일단 폴린이 부러웠다. 폴린의 매력, 다재다능함, 만인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부러웠다. 폴린은 오페라 가수로서 연기, 노래, 작곡, 여러 언어까지 구사했다. 남편과 투르게네프뿐만 아니라 당시 여러  왕국과 제국의 왕과 황제, 작곡가, 화가, 비평가 등 예술 전문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본인 스스로 유럽 최고의 오페라 가수임을 자부하며 유럽 최고 공연비로 계약을 성사시키는 실력자다. 책에는 폴린의 사진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 외모에 대한 품평은 여전한데, 폴린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너무 못생겼다"고 했고, “그렇지만 다시 보면 미칠 듯이 사랑에 빠져들 것같다”라고 했으니, 그리고 실제 그랬으니, 그 매력이 치명적이었을 것같다.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고, 애가 넷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르게네프는 평생 폴린 옆에 - 심지어 한 때는 셋이 한 집에 산 적도 - 있었다.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스러워져라고 했던가. 내 매력을 키워야겠다.


폴린, 루이, 트루게네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문화 중개인의 역할을 했다. 이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 덕분에 유럽은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그 전에 초석을 깐 것이 기술이다. 우선 철도 기술 이후 인쇄술이 유럽을 통합했다. 철도의 발달로 예술인들은 여러 대도시, 소도시에서 공연을 했다. 철도를 타고 사람들 간, 특히 예술가 간 상호교류가 일어나면서 유럽 예술은 국경을 넘나들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형성하고, 변화시키고, 또 새로운 예술이 창조됐다. 이어 인쇄술이 발달해 과거 및 현재 음악, 미술, 문학이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영향을 줬다. 러시아에서는 고골,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 조르주 상드, 에밀 졸라, 플로베르,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세잔, 드가 등이,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디킨스, 바이런 경 등이, 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는 괴테, 베토벤, 모차르트, 바그너, 바흐, 브람스, 하이든, 헨델, 슈만 등이,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 파가니니 등 작품이 번역, 인쇄돼 재생산되면서 대량 보급됐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작권이 문제였는데 잘 작동되면 예술인이나 일반인에게 서로 이익이었다. 예술가 이름 목록은 읽다 지칠만큼 방대해 아는 예술인이 나올 때마다 반가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았다.


이렇게 개인의 역할, 기술의 역할이 유럽인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 경제가 문제다. 폴린, 루이, 투르게네프는 유럽 문화 전성기, 특히 프랑스에서는 소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벨 에포크 시대' 때만 살고 세계1차대전을 목격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중간에 프랑스에서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53년 러시아-오토만 제국 간 크림 전쟁,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간 보불전쟁 등이 문화교류를 단절시킨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폴린, 루이, 투르게네프는 정치적 혼란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한 적도 있고, 셋 다 예술인으로서 공화주의를 지지하자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감시, 수감, 가택연금까지 당했다. 문화예술이 융성하려면 사람 간 이동이 필수적이다. 아쉬운 점은 문화예술이 지역 협력과 공동체를 설립하는데 촉매가 될 수는 있지만 정치, 경제앞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치 등 경성 권력(hard power)이 예술 등 연성 권력(soft power)를 이기지 못한다.


요약하자면 유럽인이라는 대륙의 정체성은 철도와 인쇄기 기술을 토대로 사람 간, 특히 국제주의 정신을 가진 예술인의 교류를 통해 흥했다가 민족주의와 전쟁을 통해 쇠락했다. 판테온에 모신 위인의 절반은 위고를 비롯한 예술인이 절반이라던데, 한국에서도 예술인이 딴따라, 글쟁이 대접이 아닌 존중받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한국 음악, 미술, 문학 시장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까. 모차르트가 비엔나와 오스트리아를 먹여살리고,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먹여살리듯이, 300, 500년 후에도 남을 한국 태생의 세계적 예술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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