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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Aug 04. 2020

서평. 작품, 에밀 졸라





아이유가 설리를 생각하며 작사, 작곡한 노래 ‘복숭아'가 있다. 노래는 살짝 아이유도 닮고 살짝 설리도 닮아서 발표 당시,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한동안 입술에 맴돌았다. 노래도 사랑스럽지만 그 둘 간의 우정이 더 사랑스러웠다. 얼만큼의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친구에게 영감을 받아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작품'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재밌는 이유는 사실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실제 친구였던 폴 세잔과의 우정이 40년간 이어졌다고 한다. 폴 세잔은 화가, 에밀 졸라는 작가를 꿈꾸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예술가였다. 책에서는 폴 세잔이 클로드 랑티에, 에밀 졸라가 피에르 상도즈로 등장한다. 주인공 클로드는 최대 미술전 살롱전에 출품하지만 매번 낙선이다. 번역본에는 첫 번째, 두 번째 클로드가 출품한 작품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내용을 보니 각각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그리고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로 짐작된다고 한다. 세잔은 실제 대기만성형으로 노년에 그리고 사후에 더 유명해졌고, 소설에서는 일 영역에서나 가족 영역에서나 비극적인 사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기 때문에 세잔이라는 사실을 살짝 가리기 위해 마네 작품으로 모델삼지 않았을까. 번역본에는 실제 두 작품이 삽입돼있다. 아는 명화가 나오니 아는 사람 만난듯 반가웠다. 


폴 세잔, 아니 클로드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창작의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비 오는 날, 마차가 끊긴 처음 보는 크리스틴을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하필이면 후덥지근한 날씨라 자면서 크리스틴은 몸무림치다가 이불을 차고 나체가 됐는데, 클로드는 그 아름다운 얼굴, 몸매, 자세를 보고 급하게 (잠깐, 반전 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놀라 깬 크리스틴에게 모델이 되달라고 거의 구걸하다시피 사정을 하고 크리스틴은 그의 ‘예술인으로서 열정’을 인식하고 모델이 된 후 홀연히 사라진다. 두 달만에 다시 나타난 크리스틴은 이제 정기적으로 클로드를 방문한다. 둘은 파리를 떠나 숲 속 오두막에서 동거를 시작하고 클로드는 비로소 ‘남자로서의 열정'을 보여주며 그림그리기는 내팽겨친다. 크리스틴도 걱정하고, 나도 걱정했는데, 4년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온 클로드는 크리스틴과 내 걱정이 무색하게 예술에 혼을 바친다. 낙선이 되도, 다른 예술가 친구들과 비교되도, 혹평을 받아도, 계속 보고, 그리고, 예술에 미쳐버린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폴 세잔의 친구답게, 인상주의 시대의 작가답게 쓴 에밀 졸라의 아름다운 문체다. 세잔이 그림을 통해 빛을 포착했다면, 졸라는 글을 통해 포착했다. 빛이 나뭇잎에, 강에, 살결에 반사되는 순간을 묘사하는 문장을 읽으면 글이 반짝이는 것같았다. 당시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는 책에도 반영돼 작품 속 여인을 질투하는 크리스틴의 마음이 생생히 느껴졌다. 요즘으로 치면 워커홀릭 남편을 둔 아내가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같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클로드의 증세는 점점 심해져 크리스틴 근육이 마비가 될 정도로 하루종일 모델을 서라고 하면서 나이든 아내를 보고 “겨드랑이에 주름이 잡혔잖아. 직접 봐봐", “이 포즈를 서려면 아이를 가져선 안돼”라고 하고, 심지어 아들 쟈크에게도 모델을 시키며 움직인다고 혼내고, 시끄럽다고 혼낸다. 결국 둘은 작품을 위한 수단이었나, 클로드에게 화가 났다. 실제 아들이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데 당시 임종 모습을 보고 (잠깐, 반전 주의) 그림을 그려 살롱에 출품했다. 저 정도까지 가야 예술가가 되는건가,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면서도, 가족은 불행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나머지 인류는 혜택은 행복하니 안타까우면서 기쁘다.


창작은 기쁘면서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우면서 기쁘다. 누구는 음악을 만들고, 누구는 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글을 쓴다. 이 세 친구가 만나면 어떤 작품들이 탄생될까. 책 주인공 클로드가 본인이라는 것을 안 세잔은 분노해 졸라와 절교했다고 한다. 졸라 역시 우정보다 예술을 선택했으니, 예술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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