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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Aug 05. 2020

서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허무와 권태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같다. 막연히 두려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더 구체적으로 보니 어차피 헤어질 것이므로, 어차피 반복될 것이므로 허무함과 권태함 사이에서 뛰어다녔다. 단세포도 아닌데 허무함을 피해 뛰어가니 권태로움이 있었고, 권태로움을 피해 뛰어가니 허무했다. 권태로움은 남들이 보기에 배부른 소리였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게 살고 있는건가, 죽고 있는건가, 스스로에게 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허무함은 남들이 보기에 신나보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게 중요한가, 헛헛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주인공 네 명도 각각 나름의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외과의사 토마스의 삶은 가볍다. 결혼했고, 이혼했고, 아이도 있는데, 아이에 대한 애착은 전혀 없다. 단지 “부주의했던 하룻밤”이다. 다시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첫 번째 아내와 달리 두 번째 아내는 “돌봐주고 싶고 곁에 두어 즐기고 싶은" 사람이지만, “자기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왜냐면 “동정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많은 여자와, 수 백명이 넘는 여자와 정사를 나눈다.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은 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상대방의 마음과 성기에 대한 “독점성과 배타성"을 전제하고 있잖아. 도대체 왜 결혼한거야?


사진작가였던 테레사의 삶은 무겁다. 테레사가 토마스와 결혼한 이유는 테레사에게는 운명이었다. 토마스는 프라하에서 일을 하는데 업무상 잠시 지방에 갔다가 기차 시간이 남아 호텔 바에서 책을 읽다가 꼬냑을 시켰는데, 때마침 테레사가 주문을 받은 웨이트리스였고, 하필이면 베토벤 음악이 흘러나왔고, 호텔 6호실에 머물었는데 놀랍게도 테레사는 6시에 퇴근시간이라 숫자 6이 일치하고, 어제 테레사가 앉았던 노란 벤치에 오늘 토마스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에게 우연이지만, 테레사에게는 필연이었다. 삶을 한 번만 사는 인간에게는 선택과 해석의 기로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확인해볼 길이 없다. 그래서 나름의 해석과 의미를 부여한다. 우연과 필연을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내 마음 아닐까. 토마스는 테레사랑 자고 싶었다. 그래서 테레사에게 명함을 주었다. 테레사는 엄마를 떠나 결혼이 하고 싶었는데, 그 때 토마스를 만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짐을 다 싸들고 토마스를 찾아 이사를 갔다. 결혼은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인데 너는 네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고, 둘이 잘 맞는지도 모르잖아. 도대체 왜 결혼한거야?


이상적으로는 사비나가 멋있어보였다. 사비나는 가벼움과 무거움 중 가벼움 쪽에 가깝지만, “강요된 상태에 적합한 태도를 찾는다". 자기 성을 알기때문에 이혼 후 재혼을 하지 않아 토마스처럼 배우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공산주의 체제를 활용해 돈도 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은 소련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실패하고, 외과의사 토마스는 쓴 글 때문에 공산주의의 감시, 탄압을 받아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창문닦이가 된다. 그래도 의사가 그의 의무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골에 가서 나름 만족하며 산다. 무거운 삶을 산 테레사는 개 카레닌을 키우면서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는것,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누구를 더 사랑할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질문하고, 의심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것이 사랑을 싹부터 파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하고, 압수하려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들지 않고,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사는” 존재로 본다.


작가에 따르면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무 요기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 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극단에 있던 토마스와 테레자는 차사고로 결국 사망한다. 하지만 사망은 책 중반에 나오며, 책 마무리는 둘이 서로 존재를 예전보다 더 인정하고, 함께 춤을 추다가, 위층으로 올라가 휴식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망이나, 결혼이나, 복수의 성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으로 끝난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 회귀란 이렇게 나와 타인의 권태와 허무를 온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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