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레온 Aug 06. 2020

서평. 카네기 스피치 & 커뮤니케이션, 데일 카네기


약 150년 전에 쓰인 ‘죄와 벌', 200년 전에 쓰인 ‘프랑켄슈타인'을 사람들이 아직까지 읽고 언급하는 이유는 현재 사람들의 마음의 현과 주인공들의 마음의 현이 동시에 튕기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왕의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혁명가의 연설에서든, 먹방을 찍으면서 구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말에서든, 듣고 보는 사람들이 단두대로 왕을 데려가고, 자신도 떡볶이를 먹으러 나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약 40년 전에 쓰인 이 책은 내가 말할 때 범하는 수십가지 개선점을 언급하고 있다. 개선점은 사람마다 다를텐데 내가 우선 고쳐야 할 세 가지 점은 다음과 같았다.


그림 그리듯이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간결하고 담백하게 핵심만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장황한 묘사나 격정적인 감정보다 정확한 설명과 깔끔한 사실만 전달하고자 한다. 하지만 설명과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계라면 참 좋겠지만, 사람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동물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더 강력하기 때문에 어쨌든 연습을 통해 자세한 묘사와 현실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묘사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요' 라고 했던 것은 연습하기 ‘귀찮아요'라 핑계였었다. 사실을 설명하는 것보다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기자보다 문학가가 되기 더 어려운 이유 아닐까. 나 혼자 내 말이 ‘차분하다'고 착각했지 사실은 ‘죽어있다'는 게 더 맞았으므로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생동감있는 표현을 해야겠다.


두 번째로 청자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물론 화자의 관심사도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나의 관심사를 주로 말해왔다. 내가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내가 관심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당연히 관심갖고 있고, 말해주면 갖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병원에 가면 다 환자로 보이고, 백화점에 가면 다 돈 많은 사람들이 보이듯이, 나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왔다는 것을 어제 또 목격했다. 내가 말하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고, 사실을 설명해줘도 (감정을 묘사를 했어야 하나?) 듣지조차 않았다. 약간 충격을 받았다. 독백이 아닌 이상 청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이고, 최대한 청자가 상대방이 목표를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줘야 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라면 내가 관심을 갖고 찾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청자의 목표와 문제부터 파악해야 한다. 내가 과연 그만큼의 애정과 존중을 갖고 청자를 대했던가?


다행히 마법 공식 하나를 찾았는데, 서론, 본론, 결론이 아니라, 예시, 핵심, 이익 순서로 말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샴푸를 살 때 머릿결이 좋아지는 것을 찾고, 레스토랑을 갈 때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예능을 볼 때 웃긴 것을 찾는 것 아닐까? 핵심은 샴푸, 레스토랑, 예능이 아니라 머릿결, 야경, 웃음이다. 되돌아보면 사람들이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듣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에 내가 제대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릿결이 좋아지고, 야경이 보이고, 웃기다니까요'라고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침묵은 금이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되었고, 이 말을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있다고 본다. ‘침묵하다 침실로 끌려갈 수' 있고 ‘요란한 빈수레에게 채울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에, 이제 나는 할 말을 정확하게, 분명하게, 효과적으로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