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레온 Aug 15. 2020

서평. 빗속을 질주하는 법,  가스 스타인

나도 엄지손가락이 있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의 화자는 개이다. 항상 우리집 반려견도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는데 개의 관점에서 쓴 책이 실제 있었다. 굳이 반응하거나 조언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반응하지 않고 조언하지 않기 때문에 개가 가장 좋은 친구라는 말이 생긴 것같다. 잘 관찰하고, 잘 듣고,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기쁨이 된다.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집 반려견을 정말 사랑한다.


엔조는 농장에서 입양된 강아지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엔조는 평생 함께 한 세 가족 구성원을 관찰한다. 남자 주인공 데니, 아내 이브, 자신보다 2년 늦게 태어난 딸 조이가 있다. 데니는 레이싱 카 선수인데 아내 이브가 뇌종양이 생겨 투병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문제는 여기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딸 조이에 대해 이브의 부모가, 즉 데니를 결혼 전부터 탐탁치 않게 생각한 조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데니를 상대로 양육권 소송을 한다. 엔조는 조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항상 세트로 옷을 입어서 ‘쌍둥이'라고 불렀고 손녀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내자 ‘사악한 쌍둥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15살 먼 친척에 대한 강간 혐의도 받는다. 엔조는 이 범죄 혐의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그런데 법정에서 목격자 진술을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한 노릇이다.


개 엔조는 레이싱 카 옆좌석에서 빗속을 질주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 전부터 빗속을 질주하는 레이싱 카는 많이 봤었다. 사람들이 집을 나서고 결국 집에 혼자 있으면 온갖 법정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고, 제일 많이 본 장면은 레이싱 촬영 비디오이다. 비가 오면 차가 미끌어지는데 그 때 대응하려고 하면 이미 늦다. 미리 방수 타이어로 교체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살지 않고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와 차, 차와 길, 길과 내가 하나가 돼야 한다. ‘눈이 가는 곳으로 차가 간다'는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다. 눈이 벽으로 가면 결국 벽과 충돌한다. 비가 올 수 있다. 미끄러질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오더라도, 미끌어지더라도 눈은 항상 목표에, 길 위에 두어야 한다. 블랙&화이트 깃발이 휘날리며 경기가 종료됐다고 알려올 때까지 질주는 끝난 게 아니다. 개는 색맹이라던데 흑백 깃발이 흔들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질주한 엔조를 따라 나도 계속 달려야겠다.


엔조는 다큐멘터리에서 몽골에서는 개가 죽으면 다음 생에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도, 나도 그런 얘기를 들어봤다. 전생, 후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엔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자신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 데니는 결국 강간 혐의 각하, 양육권 승 판결을 받고 페라리 회사에 취직해 딸 조이와 함께 F1 경기장 가까이 있는 북부 이탈리아 이몰라로 이사간다. 그곳에서 어린 남자 아이를 우연히 만나는데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처음 만난 그 아이가 데니에게 한 말이 무엇이었을까?


전지적 시점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개의 관점이라는 점, 인생 고난을 흔히 비에 비유하긴 하지만 비가 단순히 오는 게 아니라 목숨을 내놓고 레이싱 카를 달린다는 점, 불교/힌두교 환생을 도입한 점이 신선했다. 우리집 가족사는 우리집 반려견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비밀과 아픔과 고민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반려견에게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카네기 스피치 & 커뮤니케이션, 데일 카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