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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Aug 18. 2020

서평.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만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그럼 새로운 인연에게 내어줄 게 없지. 그런데 아프기 싫어서 그 모든 감정을 버리겠다고? 너무 큰 낭비지!” 어릴 때부터 감정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특히 상대방과의 관계로 인한 슬픔, 질투, 분노는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더욱 싫었다. 그 감정들을 없애기 위해 마음을 거세했다. 덕분에 슬픔, 질투, 분노도 없었지만 함께 기쁨, 설레임,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다. 그게 위에서 엘리오 아버지가 말한 “낭비"였다.


엘리오는 북부 이탈리아에 사는 17살 소년이다. 엘리오 아버지는 여름마다 6주 동안 제자를 그 곳에 초청하는데 1983년 여름, 올리버라는 24살 청년이 초대받았다. 올리버의 하늘거리는 셔츠를 봤을 때부터 엘리오는 신경이 쓰인다. 신경쓰이는 게 티날까봐 엘리오도 무관심한 척, 쿨한 척 한다. “이따 봐”라는 성의 없어보이는 올리버의 말이 섭섭하게 느껴지고, 나를 좋아하는건가?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뀐다. 문소리가 날 때 올리버가 내 방에 들어온 건가? 했는데 알고보니 바람이었고, 내 옆에 온 건가? 했는데 알고보니 모기였다. 올리버와 함께 있을 때 내 모습이 좋았다가도, 좋아하는 걸 넘어서 숭배할만큼 올리버가 너무 멋진 사람이라, 내가 작아보이고 초라해보이고 내가 싫어지기도 한다. 올리버가 나와의 대화를 기억할 때 천국에 있는 것같다가도, 내가 잊혀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사랑은 날카로운 행복이다. 


또한 사랑은 상대방을 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책 제목이다. 책 중간에 둘이 처음으로 달빛을 함께 보는 새벽에,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자신을 “엘리오”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책 마지막에, 20년이 지나 엘리오가 올리버와 재회했을 때, 이번에는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자신을 “올리버”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상대방을 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연애할 때 상대방을 애칭으로 부른다. 그렇게 둘만의 비밀, 둘만의 추억이 생긴다. 그 별명만으로도 서로의 감정을 100% 전달하고 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너를 쳐다보며 내 이름을 부른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네가 나를 보며 네 이름으로 부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서로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내가 너고, 너가 내가 되는,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데, 나만큼이나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를만큼이나 너를 아끼는 건 대단히 이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나보다 또는 나만큼 소중한 사람-부모님, 자식, 배우자, 함께하는 또는 헤어진 연인-이 있을 수 있다.


작년 여름 여행할 때 잠깐 다른 나라 여행자와 대화했는데, 그 여행자는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당시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사랑하는 일 아닌가? 그 여행자에 따르면 궁극적인 목적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근접하게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나에게 기쁜 일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그 소식을 듣고 “정말 축하해! 내 생일 때보다 더 기쁘다!”라고 말한 것이다. 나는 크게 감동받았다. 자신의 생일이 어느 누구보다 어느 날보다 가장 기쁜 날 아닌가?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내가 남의 일에 대해 남보다 더 크게 기뻐하고, 남보다 더 크게 슬퍼했던 적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더 크게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그만큼은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마음을 거세하지 말고 기쁨도 슬픔도 충분히 느껴야지.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지. 그리고 타인을 내 이름으로 부를만큼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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