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레온 Nov 16. 2020

서평. 태어난 게 범죄, 트레버 노아

어머니로 시작해 어머니로 끝나는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만큼 미국에서 활동하는 남아공 출신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의 삶에 그의 어머니가 큰 영향을 끼쳤다. 어느 모임이든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재밌는 사람이 됐을까 궁금했었는데 책을 보니 노아는 남들보다 더 재밌는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고 힘든 인생을 웃음으로 승화한 사람이었다. 작가는 글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아픔을 이겨낸 것처럼 희극인은 웃음으로 극복하는 듯하다.


버스 사건


노아의 어머니가 잠결에 있는 노아를 버스 밖으로 밀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너무 웃기지만 배경을 읽어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18세기에는 네덜란드, 19세기에는 영국이 남아공을 식민지로 삼았다. 소수 유럽인은 다수 선주민을 지배하면서 백인과 흑인 간 성관계를 - 결혼도 아니고 성관계부터 - 법적으로 금지하고, 적발시 약 5년의 구금형을 내리는 소위 부도덕법 Immorality Act 을 1927년에 제정했다. 20세기에 백인 집권층은 제도적으로 인종을 차별하는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정책을 실행했고 90년대 중반 이 제도가 서서히 무너지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인종차별은 체계적으로 계속됐다. 노아의 어머니는 아이를 갖고 싶어서 스위스 남성에게 다가가 어떠한 경제적 도움도 요청하지 않을테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정자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한다. 대범하고 도발적인 노아의 어머니의 행동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당시 남아공 흑인 간에도 종족끼리 싸움이 심했는데 인종차별에서 나아가 여성차별적인 버스 운전기사가 난폭운전을 하며 생명을 위협하자 노아의 어머니는 잠결에 있는 노아를 버스 밖으로 밀어버리고, 땅에 내동댕이쳐지며 졸다 깬 노아는 영문도 모른채 “뛰어!!!” 라는 엄마의 외침에 가젤이 사자 피하듯 목숨을 걸고 내뛰었다.


인종차별


인종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노아는 친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다. 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했다. 노아는 밝은 피부의 흑인 외모인데 아버지는 새하얀 백인이고, 어머니는 새카만 흑인이라 그 둘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순간 범죄가 발각되기 때문이다. 책 제목 그대로 태어난 게 범죄였다. 노아에게는 인종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수혜자이기도 했다. 노아가 장난치다 잘못을 저질러도 피부색이 다른 흑인들보다 밝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주인님 Master 같다며 손자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손자를 보고 주인님이라니… 세뇌된 인종차별은 사람들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는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은 흑인으로 분류되려는 노아에게 그러면 여러 기회를 박탈당하고 손해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길거리에서도, 감옥에서도 인종차별이 있었는데 노아는 밝은 피부색이라 그나마 차별을 덜 받았다. 또한 여러 종족의 언어를 아는 덕분에 폭행, 절도 등 문제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언어는 그만큼 “우리 편"이라고 말해주는 강력한 도구다.


남녀차별


어릴 때는 가끔 친아버지와 만남이 있었지만 새아버지가 생기면서 새아버지는 노아를 친아버지와 만나지 못하게 하고,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새아버지는 노아를 구타하기 전에 노아 어머니를 먼저 구타했다. 노아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해도 “여자가 화낼만한 짓을 했겠지, 가정사에 경찰이 개입되면 안된다, 진짜 남편한테 범죄 기록을 남기게 하고 싶냐” 며 어처구니 없게 남자 편을 들고 노아 어머니를 집으로 돌려 보낸다. 노아 어머니는 도망가면 남편이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도망가지도 못했고, 자동차 수리공인 남편 사업에 모든 시간과 돈을 쏟았지만 그 돈은 빚을 갚고 남편 술값을 내는데 쓰였다. 둘 사이에는 노아 외에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참다참다 못한 노아 어머니는 결국 이혼하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 분노한 새아버지는 노아 어머니를 처음에 멀리서 쏴서 엉덩이에 맞았고, 이후 코앞에서 얼굴에 4방을 쏘았으나 기적적으로 불발되고, 도망가는 노아 어머니 뒷통수에 총을 쏘아 총알은 머리 뒤에서 코로 통과했다. 죽은 줄 알았던 노아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살았다.


신이 없어도 되는 사회가 오길


신은 없지만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노아의 어머니가 안타까웠다. 정부도, 가족도, 노아의 어머니를 지켜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구타당해서 경찰에게 가도 “원래 그래" 라며 눈감아줬고, 가족에게 가도 “다들 그래" 라며 참고 살라고 했다. 노아도 책에서 언급했듯이 백인이 만든 인종차별 제도로 대다수의 흑인이 오랫동안 핍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이 만든 기독교라는 제도로 대다수의 흑인에게 구제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은 위선이다. 권력, 자원, 정체성까지 모든 것을 빼앗고 사탕 하나 던져줬던 식민지 지배층은 정말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이름에는 운명의 의미를 부여한다. 노아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염원하며 흔하고 아무 의미 없는 트레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모든 인간이 인종, 성별에 따라 차별없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파르크 슐링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