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by 카멜레온

램지 부인


램지 부인은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못, 휴지, 유리조각, 꽃잎, 조개껍질, 천조각을 모아 스케치북 한 페이지에 다 붙여놓는 풀같은 존재다. 나이, 성별, 성격 모두 다른 램지 씨와 램지 부인, 부부의 여덟 자식들, 부부의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 만찬을 연다. 램지 부인은 까탈스러운 남자들, 특히 남편에게 싫은 내색 없이 남편의 기를 살려준다.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특히 아내를 무시하고, 팩트폭행하는 말을 하고, 알파벳 순서대로 Z가 가장 큰 업적이라면 R에서 막혀버려 관심과 위로를 구걸하는 남편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준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내일은 비가 와서 갈 수 없을 거예요”.


릴리 브리스코


화가 릴리 역시 램지 부인의 은은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 여행을 떠난 이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램지 부인도, 램지 부부의 자식들도 죽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다시 같은 여행지로 떠났을 때, 릴리는 그제서야 램지 부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램지 부인은 릴리에게 남편이 필요하다고(결혼하라고) 했지만 릴리에게는 그림이 있었다. 램지 부인에게는 남편이 빛이었고 자신은 램지 씨의 그림자 속에 머물렀지만, 릴리는 자기 자신이 빛이었고 그 빛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램지 부인은 만찬의 순간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다. 릴리는 글이나 그림같은 예술작품이야말로 영원하다고 믿었다. 각각의 등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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