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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분노와 애정, 도리스 레싱 등 여성 작가 16인

by 카멜레온

한 방송인의 자발적 비혼모 보도에 따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민낯이 드러났다. 시험관 아기는 자기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인간의 욕구를 그대로 보여준다.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고 정자가 필요한 것이고, 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궁이 필요한 것이다. 한부모가 되기로 할 때 물론 조건이 있다. 경제적 안정성이다. 유학, 기숙학교, 보모 단계에 앞서 이제 돈만 있으면 이제 정자, 난자, 대리모를 구할 수 있게 됐다. 여성작가는 엄마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1 레싱 - 레싱은 여성들끼리 차 마시는 모임에 나가며 대다수의 여성들이 그랬듯이 당시 “시대정신”에 따라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본인은 백인 영국인이고 흑인 하인을 두고 있었고,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노예제도에 대해 의문을 갖고 글을 썼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농노제도의 부당성을 인지하고,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도의 불평등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 양심과 통찰력을 존경한다.


2 스마트 - 스마트는 “시인 조지 바커와 결혼도 동거도 하지 않고 그와 함께 네 아이를 낳았다”는 배경을 알았을 때부터 한숨이 나왔다. “나는 내가 현명한 여성가 아니라는 걸 안다”, “언제나 애들 옷 예쁘게 입히기. 모든 것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평소보다 약 25키로 더 나간다” 라는 표현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며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알파걸, 수퍼맘의 압박이 느껴졌다. “조지가 내게 오지 않는다/못한다 걸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조지가 오기를 기다린다”, “조지는 오겠다고 말한 때에 절대 오지 않는다”, “조지는 언제나 사라져버린다”, “좌절과 고독의 반복뿐” 이라는 표현을 보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조지를 왜 사랑할까, 지나친 자기 비하 때문에 자초한 게 아닐까 안타까웠다. “어느 날 갑자기 부서지고 무너져 내려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스마트의 자기예언이 실현될 것같다.


3 플라스 - 플라스는 본인이 배란을 하지 않아 불임이 될 수 있다고 진료받았던 시기에 여성으로 태어나서 임신과 출산을 하지 못한다면 “삶을 허비하는 것” 이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며 “나의 글은 수준 낮은 대체불이자 공허가 될 것이다” 라고 했고 “모든 기쁨과 희망이 사라져버렸다”라고 표현했다. 실제 아이들을 낳아 키우지만 남편의 외도, 별거 이후 30살에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했으며, 플라스의 아들 역시 자살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과 자식도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마찬가지로 출산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역시 허구일 수 있다.


4 미드 -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모두가 한자리에서 조부모와 손주를 만나야 한다”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결혼이나 출산을 해야만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착각이 떠올랐다. ‘나의 반쪽’을 찾았다며 결혼했다가, 근데 이혼하고, 어머니가 되어 이제 ‘진짜 여자’가 됐다고 했다가, 근데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 단위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기억과,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손주가 그 기억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 사이의 공간”이라는 표현을 보며 “완전한 인간”에 대해 말한 이유는 인류학자인 작가가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이어져나왔다는 연속성을 강조하고자 한 표현이었을까 되짚었다. 현재에 매몰돼서 식민지 시대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한국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들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그 위의 모든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긴 호흡을 해본다.


5 그리핀 - 사회의 경제 권력에 따른 서열은 가정에서 반영된다. 사장이 직원에게 기대하듯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남성은 본인은 바람피고 육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여성은 정숙한 섹스파트너이자 똑똑한 양육자이길 기대한다. 남자도 똑같이 시도하기나 한다면, 과연 둘 다 잘할 수 있을까?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일까? 이러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감시, 억압받고 죄책감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한부모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 취업부터 승진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득 기회의 차별이 문제의 근원이 아닐까. 작가의 말대로 “그 평화롭고, 주름없는, 미켈란젤로의 성모마리아상의 얼굴이 영영 사라지기를, 아니면 적어도 금이라도 가기를 바랐다 […]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흔적이 드러나길 바랐다” 내용이 이해됐다. 누구를 위해 섹스와 어머니됨을 신비롭게 포장하는걸까?


6 라자르 - 노예제도 붕괴도, 시민혁명도, 노동개혁도 각각 노예, 시민, 노동자가 힘들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시작했다. 남녀차별이 사라지려면 여성이 발언하는 데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본인을 “부족한 엄마” 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이상적인 엄마로 보이는 한 이웃집 여성을 만난다. 작가는 “아이가 밤에 안 자요. 전혀 안 예뻐요. 가끔 아기를 안 낳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 어떤 때는 애를 죽일 수도 있을 것같아요.” 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웃집 여성은 물론 여러 여성들이 작가를 공감은 커녕 비난했다. 하지만 “애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애들이 진짜 미워요”라는 다른 이웃 여성과 이웃 여성들의 모임이 결성되면서 아파트에는 점점 아이들과 노는 남성들이 늘어난다. 한 명의 목소리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씨앗이다.


7 리치 - 남성이 가사노동을 했다면 가사노동의 가치는 월 몇백만원으로 책정됐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가사노동을 하지 않았다. 오직 돈을 버는 남성의 노동만이 “생산적”이고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사회에서 돈을 받지 않는 “요리사, 청소부, 세탁부, 가정교사, 보모” 로 노동하는 아내이자 엄마는 오랫동안 무시받았다. 이런 가부장 사회에서 권력관계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반영된다. 아이를 때리는 엄마는 남편에게 맞는 경우가 많다. 작가의 말대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내가 시키는대로 해. 네게 무엇이 좋은지는 내가 잘 알거든” 이란 말은 “내가 시키는대로 해.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거든”이라는 뜻이다. 엄마란 인간이 가지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다. 정체성이 하나만 있다면 아이가 성인으로서 독립할 때 엄마로서의 상실감은 남성이 모든 것을 바친 회사에서 해고당할 때의 상실감보다 클 것이다. 엄마도 “다시 돌아갈 자기 자신이 필요하다”


8 올슨 - 책에서 인용한대로 “오로지 최고의 작품을 희생해야만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 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여자의 창의성을 말라버리게 하”고, “아이가 있는 삶은 시간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상상력까지도 고갈시킨다” 라는 말이 개별 사례이길 바란다. 인류가 존속하려면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 키워야하고, 범죄부터 환경까지 인류가 자멸해가는 분위기에서 누군가는 상상을 통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최고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들은 - 대부분 남성인데 - 집필하는 동안 육아에 몇 시간을 쏟았을까? 쏟기나 했을까?


9 워커 - “흑인 여성에게 질이 있다는 걸, 흑인 여성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흑인 여성도 여성이라는 걸 부정하는게 낫지요.” 인간은 자신이 속한 그룹과 상대가 속한 그룹을 구분하고 상대를 지배해왔다. 지배 집단은 피지배 집단에게 너는 지능이 낮다, 게으르다, 감정이 없다, 라고하며 자신들이 하는 차별과 지배를 정당화했다. 이 것은 개인 간에는 폭력, 국가 간에는 식민지로 발현된다. 앞에서 언급된 흑인, 여성은 물론 아시아인, 동물의 천성에 대한 자료를 의도에 맞게 조작해 누구나 태어나면서 갖고있는 생존권과 행복권을 박탈했다. 정말 지배하려는 대상이 천성이 나쁘거나, 생각이나 감정이 없을까? 그럴만한 자본과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건 아닐까? 더 연구하고 기록해야하는 게 아닐까?


10 오스트리커 - “그동안 작가들은 엄마가 아니었기에 사실상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주제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읽은 책의 작가의 성별을 되돌아봤는데 대부분 남성 작가였던 것 같다. 일부러 남성 작가의 책을 고른 건 아니고 남성 작가가, 특히 시간을 거슬러 갈수록, 대부분의 책을 썼다. 어머니가 된 한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육아를 하면 체력, 특히 시간이 부족해 책을 쓰거나 읽기는 커녕 본인이 쉴 시간도 없다고 한다. 사회에서의 노동은 주 40시간이라는 기준이라도 있는데 왜 가정에서의 노동은 주 168시간이라도 아무도 이의제기하지 않을까?


11 르 귄 - 작가는 글쓰는 것을 낚시하기에 비유했다. 낚시대로 물고기 잡아 올리듯이 이성으로 상상력을 낚아채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의 어머니는 아이를 다 결혼시키고 난 후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좀 더 일찍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 좋았을텐데.” 자꾸 이렇게 미루다가 나도 후회하지 않을까? “[글을 쓸 때만큼은 책임을 지는거야. 이 때만큼은 자율적인거야. 이때만큼은 자유로운 거야.” 무엇을 두려워하는걸까. 책임? 평가?


12 러딕 - “많은 사회에서 엄마됨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억압한다. 엄마됨 이데올로기는 엄마의 일을 건강과 즐거움, 야망을 희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정의한다.” 한 개인이 잘못됐을 때 우리는 그의 어머니를 너무 많이 탓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엄마들은 아이의 지적 능력과 감정, 취향, 야망, 우정, 섹슈얼리티, 정치관, 도덕성을 예측할 수도, 또 통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엄마의 권력은 기술의 발달, 개인과 집단의 경제적 자원, 변화하는 사회 및 군사 정책, 고용 기회, 주택 정책, 가족 형태 […] 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 아이가 입은 피해는 절대로 엄마의 실패라는 한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제가 잘되도 못되도 크게 엄마 덕분이나 탓이 아니예요.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는거니까 엄마는 마음 편하게 지내시길 바래요.


13 휴스턴 - “만약 모험을 하고 싶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지 엄마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엄마는 언제나, 예상대로, 뻔하게, 자식의 목숨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는 자식이든 가족이든 항상 보호하고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본인이나 보호 받는 대상이나 정말 모험과는 거리가 있었다. “윤리는 문학에는 독이다.” 많은 문학에 폭력, 살인, 전쟁이 있고 여성은 항상 섹슈얼리티가 거세된 성모마리아, 가정의 천사 역할을 해왔고, 그런 편견은 여성으로서 그래야 한다는 억압을 존속시켰다. 남성 킬러는 그려러니 하는데 여성 킬러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야기를 지어내고 적어내려가는 것, 모험을 하고 모험을 상상하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받아들이는 것, 기존 도덕을 위반하고 전복하는 것. 여성들이 삶과 죽음을 직면하려 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으로 남성의 특권이었던 이 모든 것들을 여성도 할 수 있게 되었다.”


14 맥마흔 - “아이를 낳는 건 내가 어렸을 때 바랐던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의 가능성을 늘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왜요? 하고 묻자 “무조건 내 편이 생기니까” 라고 답하셨다.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 인생에서 남편도, 친구도, 부모도 할머니 편이 아니었던걸까.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할머니의 자식들은 항상 할머니 편이었나보다. 작가는 “[아이가 독립하면서] 작품 활동에 필요한 정신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아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수 있다.


15 윌리엄스 - “우린 계속 새끼를 낳으며 바글거린다. 그리고 우리의 이기심으로 다른 수천 종의 생체들을 멸종시킨다.” 저출산시대에 임신 및 출산을 반대하는 작가의 주장에 얼마나 지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관점이 하나의 국가가 아닌 하나의 지구로 바뀌면 이런 주장도 가능하다. 현재 세계 인구는 76억명 이상이고 계속 늘고 있다. 이번 코로나가 지구의 자정작용이라는 주장이 있다. 청정지역을 침범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 인간이 초래해서 받는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멈춘 공장과 깨끗해진 하늘. 인구가 줄어들면 지구적 관점에서는 축복일 것이다.


16 겟스킬 - 누구는 아이를 낳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했다. 누구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을까?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서든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든 각각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아이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보고 ‘인생이 무의미하고 공허할 것’이라고 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일에서 오는 성취감을 모를 것’이라고 한다. 아이든 일이든 각자 인생에서 의미를 두는 목표가 다를 뿐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대로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의 특권”이다. 하지만 이 특권을 사용하든 하지 않든, 모든 여성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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