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여성의 성장소설
‘아니, 19세기 여성은 그런 결혼을 해야만 했어?’ 21세기 여성이 19세기 여성의 삶을 보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다. ‘아니, 21세기 여성은 그런 애교를 떨어야만 했어?’ 23세기 여성이 21세기 여성을 본다면 똑같은 갑갑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일까?
고아로 자란 제인은 처음에는 친척 집(게이츠헤드 저택)에서 살다가, 이후 기숙사(로우드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크고 스산한 집(손필드 저택)과 작고 따뜻한 집(무어 하우스)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재산을 물려받은 후 거의 모든 것을 잃은 남자와 결혼하고 이야기가 끝난다(펀딘 저택).
제인은 못생기고 고집 센 아이로 묘사된다. 이상적인 여성상인 순종적인 것과 달리 제인은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에 친척과 사촌은 제인을 미워했다. 제인을 귀신이 나온다는 방에 가두기도했다가, 결국 학교로 쫓아 내보냈다. 그곳에서 엄격한 한 선생님에게는 체벌을 받았지만 다른 좋은 선생님과 친구도 만났다. 자신의 생각을 어릴 때처럼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며 조금씩 성장했다.
로체스터 또는 세인트존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직업 선택지는 결혼 전에는 가정교사, 결혼 후에는 가정주부가 거의 유일했다. 제인은 18살이 되자 학교에서 나와 한 저택의 가정교사가 됐다. 제인은 저택 주인인 로체스터를 만난다. 로체스터는 자신의 말을 맞받아치는 제인에게 호감을 갖는다. 주변에서 떠받들여 자라온 남성이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당돌한 여성에게 호감갖는,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라며 사랑에 빠지는 클리셰가 여기서 시작한걸까. 변장까지하며 제인의 마음을 떠보던 로체스터는 제인의 순수한 사랑을 확인하고 청혼한다. 하지만 결혼식 도중에 로체스터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고, 아내를 다락방에 가둬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그 동안 미스테리였던 울음 소리와 화재의 범인은 로체스터의 아내 버사였다. 충격 받은 제인은 그 곳에서 도망친다.
갈 곳도 없고, 돈도 없고, 황량한 초원에 바람만 불었다. 거지꼴로 쓰러져 있을 때 누군가 제인을 도와준다. 알고보니 도와준 사람들은 제인의 사촌이었다. 그 중 한 명은 목사 세인트존이였다. 제인이 자신은 일하고 싶다고 하자 세인트존은 교사직을 소개해줬다. 세인트존은 똑부러지게 일하는 제인에게 반했고, 제인에게 자신과 결혼해서 해외 선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청혼하는거야, 취업 면접 보는거야? 세인트존은 제인을 무급으로 채용하려는 수작일까, 마음 표현이 서툴러서 사랑 고백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걸까? 제인이 결혼하지 않고 세인트존과 해외에 하겠다고 하자, 세인트존은 여자가 미혼으로 해외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인은 그 순간 사랑하는 로체스터의 환청을 듣고 그 곳을 도망쳐나간다.
성모마리아 제인 에어
태어나서 남자 두 명 만나고 그 중 하나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은 가혹하다. 재산도 물려받았는데 그 둘을 선택하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세 번째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에이드리언 리치라는 미국 페미니스트는 “제인은 경제적 독립을 획득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다움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는 남편을 선택”했고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가부장적 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으로서의 결혼”을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제인은 거의 모든 것을 잃은 로체스터의 구원자일 뿐이었다. 버사의 방화로 버사는 사망하고, 로체스터는 저택도, 재산도, 신체 건강도 잃었다. 로체스터에 대한 제인의 마음은 동정심이 아니라 정말 사랑이었을까? 제인이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는 성모마리아상이 됐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