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혹은 형제 관계를 중심으로 쓴 책이나 얼마나 될까. 동화부터 소설까지 대부분의 구조는 남녀 관계가 중심이고, 이어 파생되는 부모-자식, 경쟁자-경쟁자 등 구조이다. 하지만 무려 네 자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작은 아씨들 1'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을 배경으로 메그(16), 조(15), 베스(13), 에이미(11) 자매들 간 어떤 일이 펼쳐질까. 비슷한 시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책 ‘제인 에어'와 비교하자면 더 재밌었다. 일단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이다.
‘제인 에어’의 주인공 제인은 냉혹한 친척집에서, 엄격한 학교로, 스산한 로체스터 집으로, 정이 가지 않는 세인트존 집으로 자꾸 도망간다. 자꾸 도망가는 인생이 정말 안타까웠다. 남자 주인공도 20살 연상인 로체스터, 10살 연상인 세인트존으로, 제인은 20살이 채 되지도 않아 고작 그 둘만 만나고 그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하는게 답답했다. 내가 남자를 소개시켜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작은 아씨들 1’을 보면서 혈혈단신 고아였던 제인에게 필요한 건 남자가 아니라 자매나 친구였다는 걸 알았다. 집 안에만 있었던 제인 에어와 달리 네 자매는 집 뿐만 아니라 옆집 로리 집, 마치 대숙모 집, 파티장 등 놀러가는 곳도 많아 활동 반경이 넓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각각 뚜렷하게 구분되는 매력이 있다.
로리
또 남자 주인공도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와 세인트 존은 둘 다 별로였던 반면, ‘작은 아씨들 1’의 로리는 한 명이지만 매력적이었다. 로리는 1부를 끌어가는 원동력 중 하나다. 메그와 춤 출 때는 메그와 잘 되려나, 조와 쿵짝이 맞게 대화를 할 때는 조와 잘 되려나, 에이미가 마치 대숙모 집에 갔을 때는 로리가 에이미를 매일 방문할 때는 에이미와 잘되려나, 1부가 끝날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아 2부가 궁금해졌다.
마치 부인
또 네 자매의 어머니인 마치 부인도 심상치않다. 부와 명예가 있는 가문으로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달리 생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의 최대 과제였던 19세기에, 21세기에도 논란이 있는 “불행한 아내가 되느니 행복한 싱글이 낫다.”라며 남편과의 힘든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을 딸들에게 하며, 마치 부인은 딸들 결혼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돈 많은 친척에게 비굴하지 않고 거절할 줄도 알고, 돈 많은 계층을 부러워하는 딸들에게 자기존중, 사랑, 자긍심을 심어준다. 남편은 1년 동안 남북전쟁 (책에는 전쟁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종군 목사로 파견된 동안 마치네 집은 유토피아처럼 화기애애하다. 연기를 잘 하는 메그, 글을 읽고 쓰기 좋아하는 조, 착하고 착하디 착한 피아노 치는 베스, 미술에 재능이 있는 에이미 네 자매는 투닥거리면서도 대부분 서로를 챙기고, 사이가 좋다. 이야기의 사건과 장소 경우, ‘제인 에어'는 굵직하지만 한정적인 반면, ‘작은 아씨들 1’은 소박하지만 다양하다. 그래서 후자가 더 볼거리가 많았다.
조와 에이미
가장 인상 깊은 장면에서는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조와 에이미가 나온다. 조가 몇 년 동안 썼던 책을 에이미가 불살라버리는 장면이다. 조와 로리가 자신을 연극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에이미는 조의 책을 태워버린다. 이후 에이미는 조와 로리가 강물 얼음판 위에서 노는 걸 보고 따라가다가 판이 깨져 얼음물에 빠져버린다. 내가 쓴 책을 어이없는 이유로 누가 불태웠다면 나는 순간적으로 그 사람을 얼음물에 밀어 넣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와 에이미는 얼음판 사건을 계기로 다시 화해했다. 참 이상적인 자매관계다.
베스가 빨리 죽은 이유
가장 안타까운 캐릭터는 베스다. 이건 작가의 의도적 장치인 듯하다. 베스가 너무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 세 캐릭터가 돋보인다. 결국 베스는 죽는데 마치 “너무 착하고, 순종적이고, 남의 기대에만 부응하면서 살면 너 결국 일찍 죽는다.”라고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같았다. 살아남은 세 자매는 생존자 느낌인데 결국 “네 꿈이 있고, 할 말을 해야 너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에게도 매력적이다.” 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같았다. 나머지 세 자매의 꿈이 - 메그는 (연기자가 아니고) 현모양처, 조는 작가, 에이미는 화가 - 이루어질까? 2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