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by 카멜레온

해외여행을 할 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비밀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소문이 새나갈 일이 없다는 안전함,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절대 그들에게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전한 사회일까?


베로니카 Veronica는 죽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과다복용했는데 아쉽게도(?) 살아남는다. 깨어나보니 정신병원 빌레트 Villete이었다. 정신과 의사 이고르 Dr. Igor는 약 때문에 심장이 회복될 수 없을만큼 손상되어 살 날이 5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무려(!) 5일씩이나 남았냐며 더 빨리 죽을 방법을 궁리한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 간호사는 안정제 주사만 놓고, 주변에는 공황장애 환자 마리 Mari, 우울증 환자인 제드카 Zedka, 조현병 환자 에두아드 Eduard가 있다. 현실에서는 “공황장애로 집에만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연예인이라 “연예인 질병"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우울증 때문에 약 먹은 적 있어요"라고 하지만 극히 소수고, 대부분 과거형으로 지금은 극복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에서 대체된 단어로 그 질병이 없는 살인자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현증은 “살인자 질병”이라는 편견이 있다.


정신병원에 퇴원한 후 사회에 재적응하는 비율은 감옥에서 출소한 후 재사회화되는 비율만큼 낮다고 하지만 베로니카는 세상과 격리된 그 곳에서 자신을 재발견한다. 이 지점에서 베로니카는 입원이 아니라 휴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됐다. 베로니카는 돈이나 직장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한 게 아니다. 삶이 무료하게 반복되서, 의미가 없어서, 그런 고통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무기력해서, 외로워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반복되지 않는 삶이 어딨을까. 반복이 싫다면 일단 밥 메뉴라도 바꿔보고, 항상 지나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걸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의미가 없다면 누가 의미를 주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내 삶에 작은 의미라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가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데 그건 모르는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부터 하면 어떨까. 무기력하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 나를 즐겁게 해주는 소소한 취미라도 하면 어떨까. 외롭다면 누구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보다 내가 먼저 안부인사라도 보내면 어떨까. 안다. 말은 쉽다. 나도 말은 하는데 잘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을 책 속에서 보니 도와주고 싶었다. 거리를 두고 보니 내가 베로니카를 도울게 아니라 내가 나를 챙겨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가면을 쓰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다들 가면을 쓰는데 나 혼자 쓰지 않고 있으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신병원이라는 공간때문에, 어차피 나는 미쳤다는 판정을 받았으니까 사람들은 안심하고(!) 마음껏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발현할 수 있었다. 가장 의아했던 장면이 베로니카가 자신이 호감 있는 에두아드 앞에서 자위하는 장면이었다. 왜 자신의 표현이 자위 장면으로 그려져야 했을까? 그것은 성적 수치심을 넘어서는 자기 욕망을 표현하는 최대치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한계선이었다. 남들은 짜장면을 먹는데 나는 짬뽕 먹고 싶다고 말하는 자기 욕망의 표현이 10점 만점 중 1점이라면 이 장면은 10점인 셈이다. 금기시된 인간의 욕망을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 유지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상식과 도덕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배우자를 존중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욕구가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변명으로 성매매 업소에 드나들게 된다. 남성만큼 여자도 성적 욕구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노는 여자”로 상대방에게 인식될까봐 남자의 로망이자 소주 이름인 “처음처럼" 연기하고 있다. 이런 환상을 깨고 서로에게 “이런 게 좋아 해보자" 또는 "이런 건 싫어 하지 말자"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 그리고 제발, 싫다는 건 싫다는거다 - 더 자유롭고 즐거운 성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제안, 승낙, 거절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려면 솔직하게 표현해도 괜찮다는 개인에 대한 존중, 사회부터의 똘레랑스가 필요하다.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가 욕구와 예술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미친놈" 혹은 “또라이"라고 규정짓는 것같다. 해외에서는 “올바름"이라는 고속도로에서 대자로 뻗어있으면 그럴 수 있지,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실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도 비정상이라고 배제하는 듯하다. 에두아드는 말을 하지 않는 청년이었는데 베로니카가 자신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입을 뗀다. 그는 외교관의 아들로 외교관이 되라는 부모의 압박 때문에 캔버스를 찢으며 화가의 꿈을 버렸지만 그 덕분에 조현병을 얻고 벙어리가 됐던 것이다. 한편 베로니카는 변호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결국 도서관 사서가 됐는데 알고보니 어릴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입원 전에는 몰랐는데 정신병원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그리고 계속 피아노를 쳐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에두아드 덕분에 어릴 적 꿈이 불현듯 되살아났던 것이다. 베로니카는 에두아드에게 우선 자신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둘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숨겨왔던 욕망과 꿈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랑스러운 OECD 1위, 하루 약 40명이 자살하는 한국 사람 1명,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람 1명을 줄일 수 있을 것같다. 솔직히 표현해도 포용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회에게 바라기 전에 이상해서 정상적인 스스로를 인정하고, 독특해서 정상적인 옆 사람을 안아줘야겠다. 일단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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