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과거와 미래를 지배하는가
불과 1년 전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뒤바뀔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40년 후를 상상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조지 오웰이다. 오웰은 사회가, 특히 전쟁을 겪은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지배하는지 묘사했다. 1984년 가상 현실에서 빅 브라더라는 단일 정당은 생각과 언어를 통해 개인을 통제한다. 통제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사회에서 정부 기관은 4개다. 진리부는 언론과 교육을, 평화부는 전쟁을, 애정부는 법과 교화를, 풍요부는 경제를 관장하는 부서이며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에서 근무한다. 윈스턴이 하는 일은 정당에서 생산량 등 틀린 예측을 한 과거 기록을 수정하고, 적과 동맹이 바뀌었을 때 그런 변경이 없었던 것처럼 역사를 정정한다. 다시 말해 기록을 조작하는 일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중사고를 한다. 진실을 인식하지만 거짓말을 말한다. 즉 기록이 조작됐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게 장기화되면 기억도 조작된다. 기록이 조작되면 사람들은 현실이 바뀐 것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희미해져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기록된대로 기억한다.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상처받은 것만 보면 상처받은 기억뿐이고, 사랑받은 것만 보면 사랑받은 기억뿐이다. 하물며 권력계층은 물론 피권력계층인 주변사람 모두 나와 다른 생각과 기억을 한다면 나는 내 생각과 기억은 물론 눈에 보이는 사실까지 의심하고 결국 주위에 동조될 것이다. 결국 기억이 왜곡됐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인 것처럼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권력의 속성이다.
누가 감정과 언어를 지배하는가
빅 브라더가 하는 또 다른 일은 매일 신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하루에 몇 백개 구 언어의 단어를 없애고 갯수를 최소화한다. 좋다라는 의미와 유사한 훌륭하다, 뛰어나다, 우수하다 등 단어를 다 없애고 "좋다" 하나만 남기는 셈이다. 나쁘다라는 의미와 유사한 저급하다, 천박하다, 해롭다 등 단어를 다 없애고 "좋지 않다" 하나만 남기는 것이다. 단어가 없어지면 사고도 그만큼 줄어든다.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언어학자는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크기만큼이 자신의 세계관 크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물질은 간소화하더라도 생각을 단순화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감정을 표현할 때가 그렇다. 유치원생은 그냥 운다. "싫어"는 초등학생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화가 난 그 감정이 섭섭한 것인지, 안타까운 것인지, 질투심인 것인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른인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표현하기 전에 감정을 알아야 하는데 일단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명령과 복종만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소설 속 빅 브라더 사회에서는 당이 하는 발표에 대해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면 표정죄로 체포당한다. 인간의 감정을 싹부터 철저히 제거해버린다. 사랑, 연애도 허용하지 않으며 청소년은 순결 동맹에 가입시킨다. 완벽한 성 본능을 말살하는 것이 목적이며 그게 불가능하면 본능을 추한 것으로 변질시킨다. 결혼과 출산은 오직 당을 위해 헌신하는 아이들을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런 억압 등으로 인구 85%인 노동계층의 쌓인 분노는 빅 브라더의 적, 당을 배신한 자들을 향한 '2분의 분노' 시간에 퍼붓는다. 분노 대상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종종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물타기가 있다.
누구를 위한 시대 사상인가
어느 시대나 시대 정신이 있다. 소설에서 비판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전체주의뿐만이 아니다. 유교에서는 나이 있는 남성이 최고고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최고다. 이런 사회에서는 각각 첫째 아들이 중요하고, 부자가 존경받는다. 이런 사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하지 않은채 다들 아들을 낳으려 하고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다면 정말 중요한 가치를 놓치지 않을까. 빅 브라더 사회에서는 어린 딸이 엄마 아빠를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고발한다. 유교주의 사회에서는 "너 몇 살이니?" 묻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네 수입과 재산이 얼마일까?" 확인하려고 한다. 자본주의가 변질되서 돈을 위해 부모 자식과 싸우고 살해하기도 하고, 친구와 애인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천민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로 된 듯하다. 애초에 왜? 라고 묻지 않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인지 의심스럽다. 주인공 윈스턴은 자신처럼 빅 브라더에 대해 반항심이 있는 사람을 찾으면서 오브라이언도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근거 없는 착각이었다. 매사 의심하면 삶이 피곤하고 반대로 근거 없이 믿기만 하면 사기당한다. 이 때 사회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개인에게도 왜? 라고 물어보면 어땠을까. 오브라이언은 알고보니 윈스턴의 사상을 검증하려고 덫을 놓았던 빅 브라더의 일원으로 사상범으로 체포된 윈스턴을 고문한다. 신체 폭력은 물론 전기 고문을 하고, 급기야 윈스턴이 가장 무서워하는 쥐를 이용해 얼굴을 갉아먹힐 것이라는 협박을 한다. 윈스턴은 고문에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쥐 앞에서 무너진다. 금지된 정신적 및 신체적 사랑을 나누었던 줄리아와의 관계, 대화, 계획을 자백하고 만다. 결국 당이 말하는대로 2 더하기 2는 5라는 것에 수긍하고 자신이 전복하려고 했던 빅 브라더를 이제 "사랑한다"고 세뇌당하며 소설은 체제의 승리로 끝난다. 이런 체제와 사상은 22세기에도 23세기에도 있을 것이다. 시대 사상은 질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경우 개인을 억압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감정, 생각은 세뇌된지도 모른채 세뇌된다. 나는 어렸을 때는 반항하지는 못했지만 반항심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차피 내가 체제를 바꾸지 못하니 이 체제에서 내가 성공하면 되지 않아? 하며 타협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비판의식이 있어도 세상을 바꾸기 쉽지 않고, 애초부터 비판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주인공 윈스턴은 주 60-90시간 일을 한다. 그럼 주 5일 근무해도 12-18시간을 일하는건데 이렇게 일만 하면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 사회 비판의식이 생길 여유조차 없다. 사회의 역사와 내 개인의 역사를 똑바로 보자.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것을 따르기만 하는 체제 순응적인 사람은 지배당하는 줄도 모르고 지배받는다. 바쁜 일상이지만 마음과 시간을 내보자. 편하게 살고 싶을 때일수록 정신줄 꽉 붙잡자. 무엇보다 왜? 라고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