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빌리브 미, 에디 이자드

by 카멜레온

최근 연말 시상식에서 어느 유명한 엠씨가 후배 희극인(코미디언)들이 설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희극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극인이 있는 사회란 삶이 힘들지만 그 속에서 기쁨을 찾고, 사회 모순에 대한 풍자를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웃음을 찾기보다 죽음을 선택하거나, 정치인을 비판했다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출연을 배제하고 탄압하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표현이 존중되지 않은 사회임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희극인들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을까?


트렌스베스타이트


작가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영국 출신 희극인이다. 다른 희극인과 차이점이 있다면 트랜스젠더라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알았지만 트렌스젠더(transgender)는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태어날 때 성별과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트렌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란 단순히 다른 성별의 옷을 쑈를 위해 코스튬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선천적으로 남성이지만 4살 때부터 친어머니의 가터벨트를 즐겨 하고, 새어머니의 옷을 몰래 입고, 여자 화장품을 가게에서 몇 번 훔치다가 결국 경찰한테 걸리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반은 남성, 반은 여성으로서 인식한다. 자신과 같거나 다른 성별의 상대방을 좋아하는지를 나타내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자신을 어떤 성별로 인지하는지 나타내는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은 다르다. 나는 LGBT+를 비판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자드는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은 선천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정해지고, LGBT+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대부분 아주 어릴 때부터 안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 자신을 남자로 생각하는 여자,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에 대한 내 편견이 조금 깨졌다. “자연스러움"은 개인마다 다르다.


인생은 희극


자신의 성적 지향성, 성적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한 작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커리어를 통해서도 이를 표현한다. 한국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있나? 내가 본 개그맨은 외국에서처럼 코미디언이 나오는 바(bar)가 아니라 주로 방송국 공채를 통해 선발된 사람들이다. 일부 코미디는 안타깝게도 몸으로 웃기려하거나, 장애인이나 여성을 비하하거나, 야한 얘기를 하거나, 말장난으로 억지 웃음을 쥐어짜낸다. 반면 진정한 코미디는 일상에서 한 꺼풀 드러내야 보이는 인간의 이기심, 특히 가진 자들의 위선을 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기업인도, 역사도 비꼴 줄 안다. 한국에서는 그런 코미디언은 불법 사찰을 당하고, 커리어는 막히고, 설 무대를 빼앗긴다. 작가는 티비가 아닌 길거리나 바에서 공연하면서 10년 동안 잔뼈를 기르며 코미디 체력을 쌓았다고 말한다. 빨리 성공하려고 하기보다 제대로 성공하는게 목표였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래서 오랫동안, 세계 각지에서 입지를 쌓을 수 있었다. 집에 있는 기간보다 40개 국가 이상에서 해외 순회 공연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트랜스베스타이트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는 23살에, 아버지에게는 29살에 커밍아웃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됐었고, 밝히면 비난, 혐오 혹은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코미디언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어느 직업이라도 어느 상황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목표가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자세로 임하면 어쨌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작은 어려움에도 금방 포기한다. 그래서 제목이 빌리브 미(believe me)이다. 나를 믿자. 작가는 나도 믿고 사람도 믿자고 한다. 정작 신은 믿지 않는 무신론자인 작가는 역사를 보면 문제도 인간이 저지르고 해결도 인간이 했으므로 인간을 믿자고 한다. 어쩌면 사람,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은 그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가능한 듯하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풍자하지도 않았겠지. 직업희극인뿐만 아니라 나 또한 내 인생에 대해서도 너무 심각하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인생은 웃기니까 지금부터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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