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리아스 7-12, 호메로스

by 카멜레온

트로이 전쟁에서 고전하는 그리스 연합군


지난 1-6권에서는 신들이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반면 이번 7-12권에서는 인간이 주로 활약하고 인간세계에 개입하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신은 조금씩만 등장한다. (권:행)


그곳에 서서 [불화의 여신 에리스] 여신은 크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함성을 질렀고 아카이오이족 저마다의 마음 속에 쉬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큰 힘을 불어넣었다 (11:12)


아테나와 헤라가 크게 천둥을 쳐서 황금이 많은 뮈케네 왕의 명예를 높여주었다 (11: 45)


신들 중 오직 [불화의 여신 에리스] 그녀만이 싸우는 자들 곁에 있을 뿐 다른 신들은 아무도 그들 곁에 있지 않고 모두 울림포스 골짜기에 그들 각자를 위해 지어놓은 아름다운 궁전의 홀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11:73)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군의 본격적인 전투 장면이 마치 전쟁 영화를 상기시키는 듯했다. 처음에는 양측이 격돌하는 장면을 멀리서 보여준다. 그러다가 늦은 저녁에 양측 모두 적군을 염탐하러 떠나는데 트로이측 돌론과 그리스측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만난다. “어깨에는 활을 메고, 그 위에 잿빛 늑대가죽을 걸치고, 족제비 가죽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날카로운 청동 창을 든” 돌론이 그리스쪽으로 몰래 다가가는데, 그 모습을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목격한다. 돌론을 잡기 위해,


두 사람[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은 길 밖으로 나가 시신들 사이에 누웠다 (10:349)


그는 그들이 적군임을 알고 날랜 무릎을 움직여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들도 급히 추격했다 (10:359)


그[돌론]의 입안에서는 이빨들이 덜거덕거렸고 그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파랗게 질려 있었다 (10:376)


처음에는 줌 아웃되어 양측 전쟁 대열을 보여주다가 이제는 포위된 돌론의 표정을 클로즈 업해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같았다. 돌론은 살려달라며 그리스 연합군에게 자신이 알고있는 트로이측 전략을 솔직하게 누설한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트로이측 스파이를 살려줬을까?


디오메데스가 칼을 들고 달려들어 그의 목덜미 한가운데를 내리쳐 힘줄을 둘 다 끊어버리니, 아직도 무슨 말을 하고 있던 그의 머리가 먼지 속에 나뒹굴었다 (10:455)


대굴대굴 잘린 머리가 구르는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이번 부분에서 전투 장면이 길어 좋아하겠지만, 나는 큰 흥미는 없었다. 현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과는 달리 일리아스는 전반적으로 전쟁에 대해 왜? 라는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전쟁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처럼 내가 왜 싸우는거지? 누구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는거지? 정부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아니야?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공산주의는 뭐야? 민주주의는 뭐길래?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듯이 고대 그리스인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게 당시 경제활동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퇴근 이후 회식이 있듯이 오늘 하루 전쟁이 끝나면 전우들과 잔치하듯 푸짐하게 먹었다. 그리고 회사원이 야근하듯이 전사들은 늦은 밤까지 적진으로 들어가 정탐을 한다. 마치 전쟁은 피할 수 없고, 필연적이고, 심지어 결과까지 이미 정해져있는 듯한 관점에서 우리는 열심히 싸우자, 라는 태도를 보는 것같았다. 하지만 왜? 에 대해 그나마 약간의 고민을 하는, 아직까지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아킬레우스다.


가늘고 길게 또는 짧고 굵게


아킬레우스는 같은 편이지만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아가멤논 때문에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있다. 그리스 연합군이 열세에 놓이자 - 고대 사람들은 이 것도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화를 풀어주고 궁극적으로 참전시키기 위해 오디세우스 등을 통해 선물을 전달한다. 선물은 어마어마하다: 세발솥 일곱 개, 황금 열 탈란톤, 가마솥 스무 개, 말 열두 필, 여인 일곱 명 (당시 여성은 전쟁 승자가 패자의 재산과 함께 약탈하는 전리품이었다. 또는 주고 받는 선물처럼 상품 취급을 받았는데 그건 약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아가멤논이 억지를 부리며 빼앗았던 아킬레우스의 브리세이스는 물론 자신의 딸 셋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딸을 구혼 선물을 받지 않고 지참금을 더해, 일곱 도시도 주겠다고 했다. 아킬레우스는 선물을 포함한 아가멤논의 화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킬레우스는 선물(따위는) 거절하고 짧지만 명예로운 삶을 선택한다. 진정성이 없는 사과여서 그랬나? 아가멤논이 선물 목록을 말로 나열할 것이 아니라 진짜 갖고 갔든지 아니면 남을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가서 진정성 있게 사과를 했어야지, 제대로 용서를 빌었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가멤논이 몸소 그 선물을 실제 가져갔다 하더라도 아킬레우스는 흔들리지 않았을 것같다. 아킬레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내게 죽음의 종말이 서둘러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9:412)


나는 예전에 얇고 길게 살고 싶었다. 가진 것에 감사하며 건강하며 장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대목을 보니 아킬레우스처럼 짧고 굵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같다. 그러려면 아킬레우스처럼 명예든 뭐든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은 너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부자되는 방법에 대한 책이 많고, 심지어 돈의 신으로부터 사랑 받는 방법에 대한 책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지혜의 신이 있었는데 현대는 돈의 신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싸워야 이기는가?’ 라는 질문보다 ‘왜 싸우는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한 것처럼, ‘어떻게 돈을 버는가?’ 라는 질문보다 ‘왜 돈을 버는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최소한 철학이라도 있었다. 스토아 학파든 뭐든 학파가 있었고 실존주의든 뭐든 사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환경이 파괴되든 말든, 사람이 죽든 말든,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빨리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너무 돈돈돈만 찾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일부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중시하던 인품과 인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돈의 빈곤이 아니라 철학의 빈곤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같다.


일리아스 1-6권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7-12권에서 반복해서 나오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전쟁터에서 사람이 죽는 순간, 그 사람의 일대기를 요약해 소개하는 것이다. 추모사처럼 어느 가족에서 태어나 어떤 일을 하다가 어떻게 죽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국 장례 문화에는 없지만 서구 장례식에는 누가 별세하면 가족 친구들이 모여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사람들 앞에서 짧은 연설을 한다.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서 유명한 기업가가 사망하면 그가 어떻게 기업을 성장시켰고, 얼마나 일자리를 만들었는지 업적을 말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일 수는 있지만 얼마나 의미있는 삶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의미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책이 나에게 질문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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