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흑백

20081227 사진

by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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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7일 미놀타 디카로 찍었던 사진



당시에 적었던 글


- 뭉크의 일기 중에서 -


당구대. 당구장 안으로 들어가 보라. 가서 아주 진한 초록색의 시트를 한동안 쳐다보고 나면 신기할 정도로 붉은 기가 빙 둘러서는 것을 보게 된다. 네가 검은색이라 알고 있는 옷을 입은 신사들이 붉은 벽돌색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당구장 안의 벽이나 천장 역시 온통 붉은 색조를 띤다. 얼마 후에야 신사복 색깔은 다시 검정으로 돌아간다.


네가 당구대가 있는 정경을 그리고 싶다면 빨간 벽돌색으로 그려야 한다. 한순간의 인상을, 분위기를,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다.



이때 <에드바르드 뭉크>라는 책을 읽는 중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인문학에 관심이 많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 읽던 중 뭉크의 책을 읽게 됐었다.


지금도 이때 읽었던 뭉크의 일기가 잘 잊히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 다르게 생각하면 찰나에 포착한 현실을 그리는 것.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미대를 가려다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영화연출과의 입학과 편입에 성공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단편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대안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그런 상상을 한다.


그래서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소재의 웹소설이 인기인 걸까란 상상까지.


원래 번아웃이 오면 만약에,라는 질문이 빈번하기 마련이다. 번아웃이 왔을 때는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쉬는 게 맞는 것 같다. 반년 가까이 손 놓고 있다가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글이라도 쓰게 되니까 말이다.


가끔은 해변가에 떠밀려온 고래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바다가 밀물로 바뀔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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