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5 사진
2009년 1월 25일 미놀타 디카로 찍었던 사진
당시에 적었던 글
심한 감기로 1920년대 시인처럼 시간을 보냈다. 연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이상'을 떠올려본다. 수요일에는 병원에 가야겠다. 전을 하는 동안 눈이 내렸다. 나이가 들 수 없을 정도로 바쁘면 좋겠다. 그래.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적어도 흘겨보긴 할 테지.
'전을 하는 동안'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아빠 제사가 떠올랐다. 당시에 '전'을 할 이유는 추석 차례상과 아빠 제사 외에는 없었다. 엄마가 신부전 환자가 된 후에는 주변 어른들의 조언대로 더는 아빠 제사를 하지 않게 됐다.
많지 않은 나이에 아빠를 보낸 엄마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한 달을 가까이 울었다. 나중에는 가족들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기 싫다고 옷장 안에 들어가 울기도 했는데,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엄마에게 물었다.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우는 거냐고. 그날 엄마의 답은 단순했다. '나 자신이 불쌍해서.'
그 답을 들은 후로 더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우는 엄마를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저러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란 걱정도 들었지만, 엄마는 49제가 지나고 스스로 우는 걸 멈췄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은 평소처럼 살아갔다. 하지만 몇 년 간은 아빠의 흔적이 느껴지곤 했다. 집에 들어갈 때면 안방에서 아빠가 나올 것 같았고, 길을 걸을 때는 맞은편에서 오는 중년의 남자가 아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여러 착각들이 지속되자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혹시 죽음이 위장된 게 아닐까. 장례와 화장이라는 퍼포먼스로 아빠를 숨긴 건 아닐까. 아빠는 다른 사람으로 세탁해서 재밌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는 엉뚱한 상상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빠가 다른 사람으로 재밌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시에 사진과 함께 올렸던 글 중에 '나이가 들 수 없을 정도로 바쁘면 좋겠다'라는 글을 읽고 가볍게 웃었다. 15년 정도가 훌쩍 지난 지금, 바쁘면 나이만 더 빨리 들더라는 걸 깨우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