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싸이 형 하고 싶은 거 다해
얼마 전 나이키 Nike에서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라는 새로운 캠페인이 나왔다.
이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의 앰버, 청하, 박나래가 등장한다. 이 영상은 여러 셀럽을 통해 여성이 본인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때,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번에는 한국시장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풀어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서 해당 캠페인의 일환으로서 나이키에서 주최한 ‘위대한 페스티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엠버, 박나래 같은 셀럽의 토크쇼, 롤러스케이팅, 미로 풋볼, 에어라운지 등의 상시 프로그램과 런 위드 엠버, 로즈런 5k 등의 스포츠 프로그램, 싸이, 제이팍, 청하, 쌈디, 박나래 등의 아티스트가 공연하는 뮤직 페스티벌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놀라운 건 스포츠 프로그램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무려 공짜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는 기회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당장 신청했고, 며칠 후 등록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토요일에도 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있었지만 스케줄이 있어서 패스하고 일요일 저녁부터 함께했다.
일요일 저녁에는 '쇼미더머니'에서 줄곧 봐왔던 아티스트들이 이어 공연했다.
나플라, 루피는 두터운 우정이 잘 느껴질 만큼의 무대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팔로알토와 싸이먼 도미닉의 공연. 싸이먼 도미닉은 중간중간 실수는 있었지만 원곡 파일을 틀어놓은 듯한 랩 퀄리티를 보여줬다. 확실히 연차가 더 쌓인 래퍼의 공연이라 그런지 관객과의 소통이나 여유로움이 앞선 나플라, 루피 와는 비교되는 부분도 있었다. 쌈디가 자신의 ‘싸이먼~싸이먼 도미닉~’ 노래에 맞춰 ‘싸이 형 싸이 형 마지막’ 노래를 장난스럽게 흥얼거리고 나니, 드디어 피날레를 장식할 싸이가 등장했다!!
적당히 힙합 아티스트들의 곡에서는 힙하게 움직이던 모든 관객들은 엄청난 함성과 함께 그를 반겼다.
싸이가 정기적으로 선보이는 ‘흠뻑쇼’ 공연은 빠른 시간 안에 매진되기로 유명하다. 작년 18년도 여름 흠뻑쇼는 티켓 오픈 15분 만에 10만 장이 판매되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싸이의 흠뻑쇼는 아이돌 공연이 아닌데도 엄청난 피케팅에서 살아남아야 공연을 즐길 수 있기로 유명하다.
과연 싸이의 공연은 어떻게 힙합팬들도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등장과 동시에 모든 관객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들고 찍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기자회견 장에 와있는 기분이 듭니다(웃음) 제가 그렇게 찍을만한 비주얼은 아닌데, 멀리서 그렇게 찍어도 건질만한 사진이 별로 없어요~ 오늘 핸드폰으로 기억하지말고, 몸으로 기억을 남깁시다!
그렇게 그는 'I lUV IT'곡을 시작했다.
노래방에서 가장 중요한 가사. 즐겨 듣는 노래라 하더라도 직접 내 입에서 부르는 것과는 또 다르다. 노래를 직접 부를 때는 가사를 전체 100% 다 알고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공연장에서는 더더욱 ‘떼창’이라는 것이 공연의 흥을 돋우는 맛 중에 하나다.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같이 노래는 부르고 싶은데 가사를 모를 때가 많다. 대부분 멜로디만 따라 하거나 유명한 후렴구만 흥얼거린다.
앞서 나왔던 나플라, 루피, 팔로알토, 쌈디 전부 그랬다. 랩의 특성상 다 따라 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꽤 대중에게 알려진 곡은 잘 알려진 후렴구 정도에 떼창이 나온다.
하지만 싸이의 공연은 달랐다. 모든 곡의 가사가 양 옆 스크린에 떴고, 모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길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떼창이 가능한 싸이의 공연은 관객의 참여도가 높은 공연으로 완성되었다.
‘싸이’하면 떠오르는 개성 있는 비주얼은 가수의 외적인 부분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히트 친 강남 스타일의 앨범 디자인과 뮤직비디오 비주얼은 강남스타일과 싸이의 개성을 반영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공연 때는 유명한 강남스타일뿐 아니라, We are the one, 아버지 등에 따라서 곡에 맞는 테마의 영상이 메인화면과 때에 따라 사이드 화면에도 띄워줘서 공연 중 청각적 효과뿐 아니라 시각적 효과까지 극대화해 공연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의 메인 화면은 중앙의 세로형 메인 화면+양 옆 작은 여러 화면으로 스크린이 구성되어 있었다. 중간 화면이 세로형이라서 독특했는데, 싸이는 이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활용했다. 하이라이트가 필요한 부분은 중간에 가사 모션 그래픽이 지나간다던지, 본인의 퍼포먼스나 곡이 끝난 후의 멘트가 필요할 때는 중앙 화면에 본인의 전신만 뜨기도 했다. 곡에 맞게, 공연 상황에 맞게 스크린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공연장에 엄청 많은 관객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싸이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왼쪽, 센터, 오른쪽 나눠서 함성을 지를 거예요. 함성을 질러서 소리가 작게 나오면 그쪽에는 그 어떠한 눈빛도 관심도 조명도 주지 않을 거니까 이제 한번 함성을 질러볼게요
섹션을 나눈 다는 것은 마치 효과적으로 응원하기 위해 왼쪽 오른쪽 섹션을 나눠 응원하던 학교 체육대회의 상황이 떠올랐다.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 불특정 다수가 한 공간에 모인 개념이 아니라, 관객 내부에서 약간의 경쟁심과 그러면서도 하나 됨을 느끼게 하는 짤막하면서도 재미있던 순간이었다.
이 섹션별 관객들은 앵콜을 외치는 그 순간까지 '왼: 앵콜 / 오른쪽: 앵콜’을 번갈아 외치며 하나인 듯 따로인 듯 싸이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에너지를 덜 쏟고' 놀 수 있었다.
공연을 좀 다녀본 분들은 알겠지만, 넓은 공연장에서 앞 쪽 무대만을 향해 서있는 관객들은 보다 앞에서 아티스트를 보고 싶어서 공연을 즐기면 즐길수록 나도 모르게 앞으로 발과 몸이 쏠리곤 한다.
싸이는 들어오자마자 앞서 말한 핸드폰을 놓고 즐길 것과 공간을 확보해주는 멘트를 먼저 날렸다.
앞쪽에 있는 분들이 많이 찡겨(?) 있거든요. 자 제 공연에서는 많이 뛰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딱 3 발걸음만 뒤로 가실게요~ 1, 2, 3
그렇게 한층 넉넉해진 자리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무대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이 뛰고 즐길 관객까지 배려하는 싸이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싸이는 공연 도중 말했다.
저는 깜깜한 곳을 향해 공연을 하고 싶지 않아요. 관객분들이 하나하나 비칠 수 있게끔 조명을 조절해주세요. 너무 직접적으로 쏘면 관객분들이 눈이 부시니까 약간 간접적으로 방향을 바꿔주세요.
싸이는 단순 본인의 공연만 보여주는 일방향적 공연이 아닌 쌍방향적 공연을 추구했기에 이런 배려도 나올 수 있던 것 같다. 관객 쪽에서는 조명이 무대를 비추면 아티스트가 더 주목되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관객에게 조명을 약간 비춰주었던 그 순간,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싸이가 빛나 보였다.
공연 포스터에는 '20:00-21:00 싸이'라고 쓰여있다. 그 시간 안에서 어떤 노래들이, 어떤 순서로 진행될지는 공연 관계자들과 아티스트만 알고 있는 사항이다. 싸이는 이러한 사항을 최대한 잘게 정보를 쪼개서 관객에게 공유해주려 했다.
“이 곳에 20대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분들과 같은 노래를 하겠습니다.”라는 멘트와 동시에 ‘챔피언’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약간의 위트가 들어가 있으면서도 공연 흐름에 끊기지 않는 적절한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관객들은 상세한 시간들을 알 수 있었다.
공연이 거의 끝날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원래 공연의 끝이 없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나이키 측에서 폭죽놀이를 준비하셨데요. 강남권에서 폭죽놀이를 하려면 미리 구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9:30까지만 허용이 되어있어요. 역으로 계산해보면 20분가량 폭죽놀이가 진행되니, 앞으로 약 10분 정도 제가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앵콜 안내는 처음이었다. 아마 나이키 입장에서도 고마웠을 것 같다. 공연이 진행될 때는 그 시간엔 전적으로 아티스트가 주관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길게 공연하기로 유명한 저 사람이 공연을 계속 이어가진 않을까’ 걱정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대에서 스케줄에 관해 공식적으로 말함으로써, 나이키가 준비한 다음 프로그램 실행이 한결 쉬웠을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언제 끝날지 짐작이 가능하게 되고, 공연의 흐름상 어떤 분위기의 노래가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 때문에 내 페이스까지도 조절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싸이 공연에서는 끊임없이 뛰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을 불태우기 위한 마음과 몸의 조절이 필요했다.
최근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기 관리에 실패한 싸이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비수기라고 살 빠지는 것 보소’라는 글을 올렸다.
항상 통통한 모습을 유지하던 싸이가 살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자 재치 있게 올린 글이었는데, 이에 싸이는 ‘다시 관리 들어가겠습니다’라는 글로 본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다행히도 3/10 위대한 페스티벌에는 자기 관리된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번 공연은 공식적으로 1시간으로 잡혀있는 스케줄이었는데도, 1시간 내내 정말 열과 성을 다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런 공연을 선보이는 그가 ‘자기 관리된 모습’을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잘된 자기 관리라고 느껴졌다.
We are the one 노래 도중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노래를 이어가기도 하고, 강남스타일 도중에는 "뛰어!!" 하면서 공연에 정말 집중해서 즐기게끔 유도했다. 공연에 충실한 퍼포먼스와 곡 중간에 관객과의 호흡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캠페인에서 쓰는 메시지의 톤이있다. 나이키의 경우 Just do it의 슬로건에 맞게 도전적이고 역경을 헤쳐나가면서도 약간의 감동스토리까지 얹어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스토리의 광고를 주로 선보인다. 각 로컬시장에 맞는 트렌디함은 플러스다.
아디다스의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Mnet 대표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의 브랜드 협찬을 하고 있을 정도로 스포츠 브랜드들은 몇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힙합 아티스트들과 콜라보하고 있다.
#너라는위대함을믿어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된 위대한 페스티벌에서 가장 마지막 무대에 싸이를 배치했다는 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는 마냥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수 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 이후로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이번 페스티벌에서 겨냥하는 타겟층이 선호하고, 시장에서 주로 다루는 젊은 힙합아티스트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도 일반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뮤직 페스티벌에 대거의 힙합 뮤지션들을 등장시키면서 요즘 트렌드에 맞게 선보였다. 하지만 루피, 나플라, 팔로알토, 쌈디의 등장에는 적당히 환호하던 20대 관객들이 마지막 싸이의 공연에서는 주문에 걸린 사람들처럼 열광하기 시작했다.
싸이라는 아티스트가 나이키의 그루브에 어울리지 않을만한 아티스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키의 너라는 위대함을 믿으라는 주제에 맞게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싸이의 '챔피언'공연에서 타겟층은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이런 위대한 페스티벌의 개최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활동 중의 하나다.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자아도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고 충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나이키와 싸이를 재조명하게 되었고, 1시간 남짓하는 싸이의 공연을 보고 난 후에 ‘흠뻑쇼’에 한번 꼭 가보고 싶지만 아마 싸이의 밤샘 공연은 저질체력 덕분에 좀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3월 어느 평범한 주말에 위대한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어서 나이키와 싸이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