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층 더 오른 샹산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타이베이에 도착한 첫째 날,
별다른 계획이 없는 P의 성향이 이 때도 드러났다. 함께 한 동료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샹산으로 향했다.
象山의 한자를 보면 코끼리 상, 뫼 산으로 산의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모양을 분석할 여유는 없었지만 그렇겠거니 생각해 본다.
MRT를 타고 象山역에 내렸다. 산의 입구까지는 좀 걸어가야 했는데, 낯선 공기가 주는 신선함이 나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파트 몇 채가 보였다.
타이베이의 아파트에서 생경함이 느껴졌다. 천편일률 적인 아파트의 형태에서 벗어나 저마다 형태의 자유를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파트는 직선의 형태로 MBTI의 T처럼 느껴졌고, 어떤 아파트는 둥글둥글 공감을 해주는 F처럼 다가왔다. 건물의 자유로움은 2주간 자유를 획득한 나의 영혼과 비슷한 듯 보였다.
아파트에 대한 사색을 즐기는 길을 따라 샹산 입구에 도착했다.
사실, 샹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산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타이베이 101 타워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경사가 있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심장은 두근두근 빨리 뛰기 시작했고, 운동 부족의 체력이 숨에서 고스란히 튀어나왔다.
게다가 8시가 넘은 시간이라 앞이 캄캄했다.
계단을 오르다가 동행하던 선생님께 말했다.
“지금 계단을 오르는 길이 교무부장의 길과 비슷한 것 같아요.”
몇 년 전 저경력의 나는 교무부장을 했었다. 왜 이 일을 내가 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계획되지 않은 어둠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의 불안감과 내면의 갈등이 샹산을 오르는 길에서 떠올랐다. 가파른 계단이 많이 힘이 들긴 했나 보다.
체감 약 20분 후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사진을 찾아보니 사실은 10분 정도의 시간만이 흘렀을 뿐이었다. 시간은 참 상대적이다.
중간 지점에서 타이베이 101 타워가 보였다. 101 타워는 요일마다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 이 날은 보라색과 푸른색 옷을 입은 마천루가 타이베이의 야경을 빛내고 있었다.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묵직해졌고, 평소 등산애호가는 아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야경에도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렇지만 ‘难得的机会(쉽게 오지 않는 소중한 기회)’ 는 ‘더 높이’라는 도전의 가치를 일깨웠다. 중간에서 내려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은 늘 결정적 순간에 튀어나온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넓은 타이베이 시내를 보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천리 밖을 보기 위해, 한층 더 누각을 오른다.)'라는
왕지환의 시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숨이 차올랐지만, 다시 한번 어둠의 계단을 묵묵히 밟아 갔다. 목표지점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예상하지 못한 순간, 해발 184m의 샹산봉에 도착했다.
조금 전 아래서 보던 것과는 다른 넓은 시야가 펼쳐졌다. 얼굴을 서서히 스치는 바람과 반짝이는 야경에 가슴이 확 트였다. 중국 천진 첫째 날 밤의 그 느낌이 떠올랐다.
‘이 온도, 이 습도, 이 분위기’
마음이 열리는 공간에서, 동행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음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내가 본 것은 타이베이의 야경만이 아니었다.
그곳에 오르기까지의 숨 가쁜 호흡과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맺힌 땀방울,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생각의 시간들.
타이베이의 아름다운 첫째 날 밤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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