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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Oct 24. 2022

글쓰기가 널 구원해 줄 거야.

나는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다. 

아이들은 생동감 넘치게 자라고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아름다운지 의식하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현재를 충실히 살아낸다. 건강한 아이 셋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내 마음 가득히 채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외동을 키우는 엄마들은 다자녀 엄마를 볼 때 힘들겠다는 위로를 먼저 해 주고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조차 위로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세 아이. 정말 좋아요. 셋이서 뛰노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하죠. 그런데 제 인생에 그것밖에 없어요."라고. 아이들이 있어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것과 스스로를 채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갑작스레 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을 때 그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엄습한다. 아이들이 주는 충만함과, 혼자 있을 때 스스로 느끼는 공허함, 허전함의 간극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없을 때 그 공백이 주는 편안함은 사실 오래가지 않는다. 그 고요함과 움직이지 않는 사물들, 정지된 화면과 같은 상황이 되려 부담스러워 웹서핑, 쇼핑, 넷플릭스 등으로 스스로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책을 읽으려 해 봐도 나의 머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30대 후반인 나이도 한몫하는 것일까. 이제는 뭔가를 읽어도 나의 머릿속에 쌓여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귀도 일상에 잠식당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글을 쓰면서 읽은 것들을 재해석하고 곱씹기 전에는 아무것도 내 것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도, 글쓰기를 통해 그날의 감정, 색깔, 느낌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그날의 기억은 수십 장의 사진과 몇 개의 동영상을 남기고 증발해 버렸다. 나는 나 스스로를 채우기 위해 다시 쌓아 올려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아주 소중한 나의 공백의 시간 내가 나에게 돌아오도록 이끌었다. 사실 그 공백의 시간이 첫째 아이를 학원에 라이드 해주고 카페에서 기다리는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둘째 아이를 발레에 보내고 또 대기를 하는 40분의 시간, 남편이 주말에 감기 걸린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오는 두 시간처럼 잘게 쪼개어진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에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나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글쓰기밖에 없었다. 나의 일상을 돌아보고 어떤 하나의 주제와 흐름을 가지고 사고하며, 책을 읽더라도 기록하고 그것에 곁가지를 붙여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였다. 

   나의 평범한 일상도 글의 소재가 되니 나는 지나가는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려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을 누리지는 못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는 순간 자연스레 행복했던 순간은 즉시 인위적인 것으로 바뀐다. 그 순간을 포착하려 사진을 찍은 것인데 오히려 그 순간을 잃어버린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사진 찍기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해서 나도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짜증을 내는 시기까지 찍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카메라 대신, 나의 오감이 그 순간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더욱 나의 감각에 귀를 기울였다. 글을 위해서는 미래에 다시 보기위해 찍은 사진보다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허전한 내가 연결이 되기 시작했고 점차 잘게 쪼개진 '대기조'의  증발해 버리는 시간들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중간에 글을 쓰다 끊겨도 괜찮다. 미처 마치지 못한 설거지처럼 찝찝하지가 않다. 일상 속에서 더 좋은 소재가 찾아와 쓰던 글이 더 풍부해질 수 도 있으니까. 그리고 나의 글은 내가 완성해 주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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