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관이 뛰어난 호암미술관에 거대한 거미가 내려앉았다. 적어도 이 땅은 내 것임을 주장하는 듯, 얇지만 단단한 강철로 만든 다리가 자신의 공간을 만든다. 위쪽을 올려다보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알을 품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엄마>,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엄마>(Maman), (1999)이다.
"엄마가 왜 이렇게 무서워?" 작품을 올려다보며 딸이 말한다.
"마망"은 프랑스어로 어린이들이 엄마를 부르는 말로, 작가인 루이즈 부르주아는 재봉사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거미로 표현했다. 거미가 실을 짜고 집을 만들듯이, 그녀의 어머니도 직조공으로 실을 다루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이 모성을 보호의 이미지로 환원하지 않는다. 높이가 10미터가 넘는 <엄마> 속에 들어가면 관람자는 거미 아래 포획된다. 전통적으로 어머니에게 주어진 따뜻함, 다정함이라는 감정이 느껴지기보다는 위협적이고 딸의 표현대로 무서운 감정이 앞선다. 어머니의 팔과 다리가 공간으로 확장되며, 모성이 지닌 이중성—감싸는 동시에 옭아매는 힘—이 물리적으로 체험된다. 이 작품은 따뜻하고 희생적인 엄마의 신화에 가려진 보다 본능적이고 치열한 모성을, 혹은 보호하는 동시에 속박하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시장 안에 있는 <좋은 엄마>는 팔이 잘려나간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엄마>과 달리 이 엄마에게는 어떠한 공격성을 보이지 않지만 '좋은 엄마'라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기괴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태피스트리 재봉사였던 어머니처럼, 바늘과 실로 작업하며 어머니와 동질감을 느꼈다. 천과 실로 만들어진 작업을 통해 그녀는 어머니와 자식 간의 복합적인 심리 관계를 손으로 직접 꿰매고, 매만졌다.
세 아들을 두었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엄마의 위치에 직접 선다.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를 표현한 <좋은 엄마>는 어떤 자율성도 없다. 실에 묶여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은 엄마의 무한한 희생과 자기 삭제를 상징한다. 출산과 동시에 끊어낼 수 없이 묶이는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지워지는 자아를 작가는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바느질하며 응시했다.
루이스 부르주아만큼 가족 간의 복합적 관계 사랑과 애정뿐 아니라 증오, 질투, 두려움에 대해 탐구한 작가도 드물다. 부르주아가 보여주는 '가족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루이즈 부르주아의 처절한 '가족의 세계'
특히 '감정과 무의식'을 다룬 제2 전시실에 들어서면 한 개인의 기억 창고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무에게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지하 어딘가에 묻고 꺼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루이즈 부르주아는 그 기억들을 세상으로, 작품으로 꺼내 올렸다. 그렇기에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사적이고 더욱 처절하다. 90이 넘은 나이에도 매달려 있었던 작품들인데도 아직도 피가 철철 나는 듯 생생하다. 오죽하면 전시 소개에도 "본 전시는 관람객에 따라 불편할 수 있으니 유의 바랍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첫 설치 작품인 <아버지의 파괴>는 부르주아 개인사와 페미니즘 미술사 모두에서 결정적 장면이다. 이 작품은 특히 작가의 어린 시절 내내 외도와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담겨있다. 자궁 속 같기도 하고, 유혈이 낭자한 침실로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식탁이다. 아버지가 저녁 식사시간 가부장적 억압과 폭언을 일삼았던 저녁 식탁, 형제들과 묵묵히 아버지의 존재를 감내만 해야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 그는 가부장적 권력의 상징이던 식탁을 자궁 같은 공간으로 변환시키고 억압의 근원과 정면으로 대면한다.
작가는 60이 넘어서야 그 살인 충동을 작품을 통해 실현시키고야 만다. 고깃덩어리를 본떠 만든 작품은 아버지의 살덩이를 상징하고 형제들과 이를 먹어치우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은 많은 함의를 가진다. 오이디푸스처럼 남성이 아버지를 죽이는 신화는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이는 아버지를 죽여야만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로소 얻게 되는 남성 위주의 권력 승계구조를 반영한다.
반면 <아버지의 파괴>는 아버지의 존재로 인한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어릴 때는 표출하지 못했던 분노와 폭력성을 마침내 드러내고 아버지를 죽이는 딸의 서사로 나아간다. 이는 권위와 억압, 모든 폭력에 대항하는 치유되지 않은 피해자의 분노이자, 치유를 위한 복수극이다.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분노와 살의가 비로소 예술의 언어로 치환된 것이다.
작가가 스물한 살에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은 부르주아에게 마치 어머니에게서 버려진 것과 같은 상흔을 남긴다. 미술을 공부한 후 아버지의 테피스트리 가게 옆에 갤러리를 차린 그는 가게에 찾아온 미국인 교수와 결혼해 도망치듯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도망친 소녀>는 가족들을 파리에 남겨 둔 채 바다를 건너는 자신을 표현한 그림이다. 무덤덤하게 바다를 건너 이주했으나 작가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파리에서 뉴욕으로의 공간적 이동은 작품의 제목처럼 '도망'이었을 테지만 기억에서부터, 아물지 않은 상처는 줄곧 부르주아를 따라다녔다.
<집-여자>를 보면 뉴욕이, 그리고 새로운 결혼생활이 작가에게 자유와 신선한 새 출발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삼 형제를 육아하며 식구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여성, 엄마, 아내 예술가로서 쉽지 않은 삶은 부르주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는 작가가 47세에 기록한 "나는 아내로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안주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사업가로서 실패했다"(I have failed as a wife / as a woman / as a mother / as a hostess / as an artist / as a business woman)는 고백과 연관된다. <집-여자>에서 여성과 동일시된 집은 어둡고 폐쇄적이며 자유를 속박한다. 아버지에게서 도망 나왔지만, 여자는 잿빛의 집에 갇혔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들은 이런 점에서 자서전 같기도, 일기 같기도 하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직관적이고 몽환적이기도 하고 한 그의 그림들은, 가정 내 한 여성이 예술가로 재탄생하기 위해 분투한 기록들이다.
식탁을 잘라 작업대로... 나이 일흔에 첫 회고전
"그녀의 나이 70이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어요"(She was already 70, yet things were just beginning)."
텔러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작가 생전 매니저 역할을 했던 고로보이(Gorovoy)의 말이다. "대기만성"이란 말이 루이즈 부르주아만큼이나 들어맞는 작가는 찾기 힘들다. 미술계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만 거론되곤 했었던 부르주아가 명성을 얻은 나이는 70이 넘어서였다. 뉴욕 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시작으로 부르주아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갔고,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명사들의 사적 공간을 찍은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가 서울 복합전시공간 피크닉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다. 각계각층에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이들의 고급진 취향을 과시하는 집들에서 유독 루이즈 부르주아의 허름한 뉴욕 아파트에 눈이 갔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작은 아파트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식탁을 잘라 작업대로 만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아파트는 작업 중인 작가가 방금 나간 듯, 그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종이들과 사진들, 펼쳐진 책들과 패브릭 조각들, 앉으면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의자들로 채워진 이 작업실 겸 집에서 부르주아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대로 마주한 걸작들이 탄생했다. 가족을 상징하는 다이닝 테이블을 자르고 예술을 위한 작업대로 만들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상처받은 딸에서, 세 아들의 엄마이자 아내에서, 예술가로 변모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잘려나간 다리 위에 핀 꽃
"빨리 나가고 싶다", "작가 정신세계가 이상해",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너무 매달려있는 거 아니냐" 전시가 진행될수록 동행인이 힘들어하며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픈 기억은 덮는다. 결핍을 포장하고, 자신이 얼마나 흠없이 완벽한 개인임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반면 부르주아는 거대한 암흑 같은 자신의 내면을, 잘려나간 다리를, 미칠듯한 몸부림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잘려나간 다리에 목발을 짚고서 뻣어나간 나뭇가지에 푸른 꽃이 핀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꽃은 기어이 움트고 피어난다. 부르주아 자신이 그러했듯이.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호암미술관
관람료 16000원.
2026년 1월 4일까지.
참고:
https://www.telegraph.co.uk/culture/art/10890373/Inside-artist-Louise-Bourgeois-New-York-home.html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2/apr/06/louise-bourgeois-fre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