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처음 학부모 상담을 했다.
나는 초1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 읽기를 좋아하고, 두 자릿수 덧셈도 하고, 자기가 정한 만큼의 공부도 적은 양이지만 주도적으로 하고 있으면 됐다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긴장은 됐지만 선생님께서 별 문제를 지적하지는 않으실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아이가 소근육이 약해 글씨 쓰는 것에 느리고, 과반수의 아이들이 한글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것과 달리 혼자 읽기는 되지만 쓰기는 자유롭지 않은, 우리 아이는 많은 보충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반에 한글을 전혀 모르고 입학한 아이는 두 명이 있는데, 그 아이들과 차이 많이 나는 "뒤에서 세 번째"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이미 선생님에게 나의 아들은 '느린 아이'였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아이만 바라봐서 아이에 조그만 성장에도 진심으로 기뻤던 나의 교육 가치관이 그렇게 쉽게 흔들릴 줄은 몰랐다.
영어학원에서도 2년간 기초반에 머무르고 있지만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는 것에 만족하고 가끔씩 말하는 영어 단어와 문장에 기뻐하고, 수영 진도를 빨리 빼는 것은 전혀 관심도 없이 아이가 수업하는 50분간 '나의 아이'만을 바라보며 눈이 마주치면 하트를 날리는, 나는 그런 엄마였다.
하기 싫어하는 사교육을 굳이 고집하지 않아도 아이가 좋아하는 천문수업을 예약하기 위해 열의를 다하는 엄마. 그래서 아이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지금의 상태가 너무 만족스러웠는데 내가 아이를 좀 더 끌고 갔더라면, 하기 싫다는 것도 억지로 시켰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내가 애정으로 키운 아이가 이제 줄 세워져서 평가받고, 지적받고, 아이는 스스로 뒤처진다는 기분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참 버거운 하루였다. 더 힘들었던 생각은, 내가 치렀던 지난했던 경쟁의 학창 시절이 이제 다시,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들의 한글이야 나와 더 많은 양의 쓰기 연습을 하면 될 일인데 앞으로의 학업성취에 따라 내 감정이 일희일비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다. 게다가, 앞만 보고 아이와 함께 정신없이 달리는 엄마들처럼 되고 싶지도 않고 될 수도 없으면서, 내 아이가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간다면 실망하지 않을 자신도 없는 나는, 이중적이면서 어찌 보면 더 속물적인 엄마가 아닐 수 없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서울대에 천문학과가 있었지'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였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볼 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가슴에 돌이 하나 쿵. 떨어진 듯한 때가 많았다. 중2 중간고사, 그리고 고1 모의고사. '그래도 쫌 잘하는 줄' 알았던 내가 거품 다 빠지고 숫자로 평가되었을 때.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와는 별개로 내가 이룰 수 있는 만큼의 소망의 양이 정해진 것 같은 막막하고 아득한 느낌. 꿈꾸고 소망하고, 현실이 파악되고 상처받고 또 일어나 노력하고 소망하고, 또다시 나는 그리 큰 사람이 아님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성공도 있고 좌절도 있고. 이 모든 과정을 나는 세 명의 아이들을 통해 세 번이나 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더, 다른 아이와 비교한 등수보다는 내 아이의 작은 성공에 기뻐하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고 하트를 날리겠다. 특히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 들어온다면 감정적으로 받아 무너지기보다 내가 어떻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인가를 고민하기로 했다. 내 아이의 학업적 능력보다는 고유성을 찾아낼 사람, 내 아이를 등수가 아닌 애정으로 바라볼 사람은 엄마밖에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