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주, 아트 위크가 시작되었다(키아프 프리뷰)

by the cobalt

여름의 열기가 사라진다 싶으면 키아프와 프리즈를 시작으로 서울의 아트 위크가 시작되었다.(코엑스 몰에서 9. 3-7일까지, 프리즈는 6일까지).

권능, <to Polished Calm>, 2025.


프리즈, 키아프의 지난 5년

먼저 프리즈 아트 페어(Frieze Art Fair)는 2003년 런던에서 시작해 뉴욕(2012), 로스앤젤레스(2019)로 확장했으며, 2022년 서울에 상륙했다. 미술 시장, 간단히 말해 미술을 사고파는 거대한 장으로 세계 최정상에 서 있는 갤러리들의 작품들이 컬렉터들을 찾아오는 것.


정상급 미술시장 아트 바젤(Art Basel)이 아시아 거점으로 홍콩을 선택했다면, 실험적이고 젊은 감각을 선보여 온 프리즈 아트 페어가 서울을 아시아 거점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계는 들썩였다.


프리즈가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의 장이라면, 키아프(Kiaf)는 한국화랑협회에서 2002년부터 운영해 온 국내 최대 아트 페어다. 2022년 프리즈가 서울에 들어오면서 국제 아트페어로 도약했고, "키아프리즈", 즉 보기 드문 이중 페어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2022년 당시에는 프리즈와의 어쩔 수 없는 체급차를 실감하게 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키아프의 성장이 돋보였다. 2025년 키아프 참여 갤러리도 175개 갤러리 중 50여 곳이 해외 갤러리인만큼 다양성과 실험성을 중점으로 프리즈와 차별점을 두면서도, 참여 갤러리 숫자는 오히려 줄이며 작품 내실을 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시장 침체기 속 아트 마켓


2022년 프리즈 판매액이 6000-8000억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되었고 프리즈를 제외한 미술시장 매출이 1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후로 글로벌 경기는 침체되었고 한국의 미술시장 거래규모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키아프는 "공진(Resonance)"라는 주제로 "세계 갤러리들이 모여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예술적 공명의 장"을 만들거라 밝힌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의 말처럼 미술시장의 회복력을 꿰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중저가의 내실 있는 작품들을 향한 구매 욕구는 더없이 강하게 느껴진다. 미술시장 거래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연간 관람객은 꾸준히 늘어, 2021년 70만명에서 2023년에는 110만명의 관람객이 아트 페어에 참가했다(https://k-artmarket.kr 사이트 참고).


2022년 프리즈에서 선보인 600억 원을 호가하는 피카소의 작품보다,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개개인을 보듬어 줄 작품이 더없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2022년 프리즈에 온 피카소 작품

진입장벽이 높은 프리즈와 달리 키아프가 가진 장점은 한국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그 작품을 소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에 명품백 대신 퀄리티 있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들을 찾는다면 이곳에서 미술 컬렉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키아프 개막일인 3일, 가장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키아프를 찾았다. 아트페어는 왠지 고급스럽게 차려입고 가야 할 것 같지만 최소 3시간은 걸어서 작품을 봐야 하는 아트페어는 가장 편안한 운동화가 최고다.



입장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줄에 서 있자니 미술시장의 침체기를 무색하게 했다. 지난 5년간을 비교하면 야단스럽지 않고 다소 침착하면서도 설레는 분위기였다. 첫날이라 그런지 지친 기색없이 친절하게 작품 설명해주시는 갤러리 관계자들과 방문객들의 들뜬 마음이 전해졌다.




K-Art의 가능성을 보여준 키아프의 성장


키아프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한국 현대미술의 신선 함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적인 면모를 신선하게 보여주는 작가들. 한국현대미술의 미래를 만들어 갈 작가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키아프에 출품된 작품들을 함께 보자.


<이상민>

개인적으로 소장욕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자의 색과 문양을 빼고 최대한 단순화시킨 유리 작업이다. 유리에 조각한 도자기는 빛을 받아 그림자를 만들어 형태만 담백하게 전한다. 유리조각과 빛과 그림자가 만나 만들어 낸 형태의 그림자 같은 작품이랄까. 입체적이고도 투명한 조각을 회화 작품처럼 벽에 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도 독특했다.

프랑스로 가서 조형예술을 배운 작가는 유리작업을 "수도승 같은 작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손의 감각과 연마과정에서 나는 소리로 작품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예민한 감각과 육체적 노동이 요구된다. 도공들이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지며 형태를 다듬어 가듯이 이상민 작가도 유리를 재료로 독창적인 '유리회화'라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


작가는 1966년생. 프랑스에서 유학한 중앙대 교수다. 중견작가인 만큼 작품가가 5000-6000만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영롱한 유리 도자의 빛을 담고 발길을 돌렸다.



<이용덕>

이용덕 작가의 <Walking 0549>(2005), <Walking 0403>(2004), <Talking 06021>(2006)은 음각으로 조각했지만 빛과 옅게 입혀진 색채로 양감이 느껴지는 조각이었다. 이런 조각을 '역상조각'이라고 한다. 이 역상조각 작품 속 인물들은 제목처럼 걷거나, 말하는 등의 정적인 모습이지만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음과 양, 빛과 그림자, 돌에 입힌 옅은 색채,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들어가고 나온 양감을 통해 인물들은 무표정 속에서도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임일민>

키아프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갔는데도 벌써 빨간 스티커가 붙여진 작품이 보인다. 이미 판매되었다는 표시다. 임일민 작가의 <Red Background Face>, <Yellow Background Face>이다. 에곤 실레의 인물을 연상시키는 인물들은 예민하고 까칠해 보인다. 그의 인물들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제일 작은 사이즈 작품은 30만원.


잠을 지새운듯한 벌건 눈과 상기된 표정은 젊은 세대의 분노와 불안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99년생으로, MZ 세대의 초상과도 같은 인물화가 도발적이고 신선하다.


임일민<Hug>, 2025.

대형 사이즈는 720만 원. 작가의 작품 총 10점은 하루 만에 완판되었다.


<조셉초이>


조셉 초이의 이국적이고 초현실적인 그림들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조셉초이의 인물의 모습은 다양한 마스크와 기억으로 중첩되어 있지만 그로테스크하지 않다. 앞서 살펴본 임일민 작가의 거리낌없이 감정을 드러낸 얼굴들과 대조된다.


마치 대다수의 현대인이 때와 장소에 맞는 마스크를 바꿔 끼듯 인물이 가진 중첩된 이미지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인다. 프랑스에서 생활한 덕분인지 색감도 예사롭지 않다. 파스텔로 밑그림을 그린뒤 물감으로 입히는 특이한 작업방식이 다채롭고 부드러운 색채에 드러난다.


<이여름>

이여름, <Life in Icecream Circle>, <Life in Icecream>, 2024.

영원히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하나하나에 기억을 담았다.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아이스크림 바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의 기억이 형상화되어 있다. 소중한 기억들이 투명하게 반짝이는 아이스크림에 저장되어 매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레진으로 작업한 이 작업들은 보기만 해도 가버린 여름휴가의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일상을 더욱 빛나게 할 것 같다. 아이스크림 한피스가 담긴 소규모 작업은 250만원, 대형작업은 4800만원.


<반민수>

푸른색 양복을 차려입은 경매사가 경매를 진행 중이다. 판매그림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전쟁과 폭력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쟁의 폭력성, 인간이 만든 가장 참혹한 현실을 냉엄하게 그린 작품은 신고가를 경신하는 중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입찰자들은 작품을 소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작품 사진을 찍어 올리는 동안, 그리고 작품을 소비하는 동안, 작품의 메시지는 어디에 가 닿을 까. 작품마다 가격표가 붙여져 작품 감상보다는 '소비'를 위해 몰려든 미술시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권능>

권능, <to Polished Calm>, 2025.

이 그림만큼 아트 페어에 적합한 그림이 또 있을까. 미술사의 주요 화가들과 그들의 주요 인물들이 펼쳐져 있다. 페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샤넬 백을 걸치고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캔버스 화를 신고 아트 페어에 왔다. 얀 판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속 부부는 임신한 채로 결혼하더니 아이를 낳고 페어를 찾았다. 유모차 속 아이의 얼굴로 보아 피곤함이 역력한 부부의 모습이 이해된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속 남성 인물은 마치 테크 기업 사장처럼 편안하고도 심플한 옷 차림새다. 다비드 상의 다리 사이로는 모나리자가 모델로 환생한 듯 검은 원피스와 하이힐로 전시장을 활보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 속 인물, 그 앞에 카라바조의 바쿠스는 손님들에게 술을 접대한다. 라파엘로가 현재에 살았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까. 과하지 않게 말쑥하고 말끔한 차림으로 왼편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아트페어에서 어떤 작품을 어떻게,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설렘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쾌한 작업이었다. 1990년생인 작가의 신선함과 미술사의 오마주, 그리고 밀도 깊은 유화작업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나는 작업 안에서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예술과 일상 같은 것 들을 구분 짓지 않는다. 모든 위대했던 역사와 예술 위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놓여 있다. 평범한 일상 위에 위대한 역사와 예술은 펼쳐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평범한 일상이 예술적 역사 위에 펼쳐지는 흔치 않은 순간들. 그것이 바로 바쁜 일상 가운데 아트페어를, 혹은 예술을 찾는 이유일지 모른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092246632457824&amp;mediaCodeNo=257&amp;OutLnkChk=Y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20907_0002006173&cID=10701&pID=10700

https://www.etoday.co.kr/news/view/2209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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