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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Nov 16. 2022

화가의 장소

앙티브의 피카소

   나는 화가의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화가의 작품이 걸려있는 박물관이나 거대한 미술관보다는 화가에게도 '특별한 장소'였던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엔 대개 화가를 기념하기 위한 자그마한 미술관이 있기 마련이고 작품과 화가, 장소가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에게 연속성을 주기 때문이다.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던 장소를 직접 경험하면서 나의 일상도 화가의 작품 그 연속선상에 있는 묘한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화가를 품어주었던 장소는 대체로 여유롭고 아름다워서, 관광객에 휩쓸려 다니며 봐야 하는 유명 도시에서의 박물관 견학보다 더 만족스러운 경험을 보장해준다. 


대표적인 예로는 남프랑스에만 앙티브/피카소, 생 폴드 방스/샤갈, 아를/고흐, 엑상프로방스/세잔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피카소가 여름휴가 때마다 찾았던 앙티브는 피카소의 작품 속 푸른 색채와 여유로운 곡선이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 그리고 뜨거운 햇살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준다. 

    주로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피카소는 거의 매년 여름 남프랑스, 앙티브를 찾았다. 니스에서 가깝지만, 니스만큼 휴가객들로 붐비지는 않으면서 지중해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최고급 호텔에서 어머니와 지인들을 초대하고 여름휴가를 보낼 때에도 피카소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심지어는 호텔 영수증 뒷면을 사용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피카소는 1930년 부아젤루 성(Chateau de Boisgeloup)을 사서 여름 별장을 썼다. 이혼을 하고, 마리 테레즈를 만나고, 또 프랑수아즈를 만나는 과정에서 그는 여름마다 앙티브를 찾았다. 그러다 1946년 당시 시의 소유였던 그리말디 성(Grimaldi Castle)을 작업실로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해 작업실에서 그린 23점의 회화와 44점의 스케치를 성에 기증하고 파리로 떠났다. 시에서는 이후로도 피카소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이고 기증을 받았고, 마침내 1966년 그리말디 성은 <피카소 미술관>이 되었다. 

Three Bathers, summer 1920.

     지중해를 수영하는 사람들과 남프랑스 햇볕 아래 발가벗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연인들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들은, 그림이 그려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한다. 그중에서도 1920년대에 그린 '해변에서' 시리즈는 이미 남프랑스 지중해에 넋을 잃었을 여행자들에게 피카소만의 '푸른빛'을 선물하는 작품이다. 

    작업 환경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여름휴가 중에 제작된 작품들이기에 완벽하기보다는 유연하고, 재치 있고, 사랑스럽다.  거장의 긴장을 뺀, 여유로운 선과 색채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Portrait of Francoise, Antebes, Autumn 1946.

   그중에서도 <프랑수아즈의 초상>에서 사용된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청색은 그의 작품 초기의 '청색 시대'와는 전혀 다른, 한 여성의 내면에 깃든 자유로움, 독립성을 표현하고 있다. 피카소의 푸른색이란, 초기의 청색시대만으로 기억한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피카소의 이렇게 밝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청색이라니. 

   앙티브에 펼쳐진 지중해와 강렬한 태양과 바다의 물결소리, 일광욕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일상적이기에는 너무나 빛나는 광경들이 응축된 작품들 사이에서 나 또한 나만의 푸른빛을 간직한 채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수아즈의 상반신이 푸른색이듯, 나의 마음도 지중해의 푸른 기억을 간직한 채,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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