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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Dec 27. 2022

수영, 6개월의 기록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자유롭게는 아직 아니지만 물속에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쉬며 헤엄을 칠 수 있게 되는 날. 이 경험은 마치 처음 운전대를 잡고 자동차라는 공간을 주행시키며 느꼈던 짜릿함에 비교될 만하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수영을 하고 운전대를 잡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다. 그 순간은 세상이 달리 보인다. 나의 머리는 산소로 채워졌고 눈은 맑아졌다. 수영에 갈 때는 운전 중에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투머치토커를 유튜브로 찾아 헤매며 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쓸 데 있는 이야기는 없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나에게 돌고 있는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된다.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수영을 시작하는 처음부터 이런 쾌감을 느낄 수는 없다. 특히 나같이 내향형의 사람은 수영장의 첫 경험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수영장은 할머니들의 놀이터고, 만남의 장이며, 천국이다. 그들은 선생님들께, 그리고 청소해주시는 분들께 돈을 모아 명절을 챙기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수영장을 이용한다. 서로의 등을 닦아주고 로션도 발라주며 친목을 도모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불협화음도 있다. 타인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한 80년대, 90년 대생들에게는 불쾌한 상황들도 연출된다. 

   호탕하게 어르신들과 친해질 수 없는 성향에 초보라면 개인레슨을, 중급이상이라면 새벽반을 추천한다. 새벽반에는 출근하기 전 각을 잡고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아침형 파이터들이 많다고(들었다). 극 내향형에 초보라면 당연히 개인레슨이다. 내가 다니는 곳은 월 8회 45만 원으로 1회에 5만 5천 원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이 금액은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PT를 이용할 때 1회는 6만 원에서 9만 원 정도로 책정되는 데, 수영에서 1인 레슨가격은 한 레일을 모두 이용하는 요금에 샤워부터 탕을 이용하는 목욕탕 이용권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한 레일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뒷사람, 앞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페이스대로 자세교정을 꾸준히 받으며 수영을 할 땐 이만한 호사가 어디 나 싶을 정도다. 

    수영을 직접 해 보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수영하는 장면을 봤을 때 수영만큼 자유로운 운동이 있나 싶었다. 물속에서 부드럽게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그러나 발과 손을 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전신 운동인 수영은 숨이 헐떡거릴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배영도 마찬가지다. 휴양지에서 물 위에 누워서 헤엄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중심을 잡고 팔을 돌리고,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게 앞으로 차면서 나아가는 과정은 온몸의 발란스와 무엇보다도 발란스를 유지하려는 힘이 필요하다. 

   50분의 수업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온탕 안에 들어가 물이 솟아져 오르는 것을 가만히 본다. 불을 보고 멍 때린다는 '불멍'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나는 이 시간을 '물멍의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요가에서도 명상에서도 '생각 비우기'가 그렇게도 되지 않더니, 에너지를 쓰고 나와 탕 안에 들어가 있으면 생각에서 벗어나 나의 가빠진 심장과 숨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이번 해 내가 했던 도전 중 하나였던 수영이 나의 작은 일상을 변화시켰기에 수영장 선택 팁과 부작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수영 선생님과 레슨 후 발가벗은 채로 탕 안에 들어가 수다 떨었던 것도 기분 좋게 생소했다. 처음 만난 여자 둘이 수업 후 발가벗고 탕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매우 낯설지만 그만큼 서로를 한순간에 가깝게 만들었고 할머니 수영 회원들 간의 끈끈함도 이해가 됐다. 선생님과의 수다는 영역을 가리지 않았지만 수영장에 한정시켜 알려주신 팁과 나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1. 수영장을 고를 때는 수영장 시설보다는 수질이다. 

수영장이 얼마나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리모델링되어있는지 보다, 수질이 가장 중요하다. 내 몸에 닿는 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수영장의 수질보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수질이 더 좋다고 한다. 기관에서 하는 수영장은 의무적으로 수질 검사를 실시해야 하고 그 기준이 더 까다롭다고 한다. 

수질에 관련해서 아이들이 다니는 수영장(특히 학원차로 아이들을 픽업하는)은 성인들만 이용하는 수영장보다 수질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한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의 수영전 샤워와 머리감기를 꼼꼼히 봐줄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물만 묻히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2. 오래된(나이 든) 회원이 많은 곳은 텃세는 있어도 그 자체로도 인증된 곳이다. 


3. 열탕과 사우나가 있는 수영장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여유와 쉼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기만 한 것은 없다는 것이 슬플 정도로 수영이 나에게 가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탈모와 건조증이다. 머리숱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내가 수영 6개월 차에 탈모에 좋다는 영양제 비오틴을 먹고 탈모 샴푸를 쓰고 있다. 게다가, 수영 후 어김없이 탕이나 사우나에 들어가 있었더니 온몸이 간지러운 건조증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생리 기간 동안 수영을 쉬면서 그만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 자체뿐만 아니라 수영 후 여유롭게 목욕을 하고 알몸으로 머리를 말리고 몸에 로션을 발라주는 그 모든 과정 또한 나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엄마들이 공감하겠지만 아이들 낳은 후에는 마음 편히 가져본 적 없는 나의 몸을 위한 시간이기에, 수영이 주는 단점을 잘 관리하면서 지속하고 싶다. 언젠가는 휴양지 바다에서 태양이 주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헤엄치는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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