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이라는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메이킹매거진 - 2020 연말 결산

by 룬아

지난주 월요일은 내 생일이었고 마침 저녁에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시국에 맞추어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길래 노트북 정도를 상상했는데 Zoom 업체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까만 옷을 입은 덩치 큰 직원들과 음향 시스템, 장비용 하드 박스들이라니. 나는 커다란 방송용 카메라를 마주하고 앉아서 벽에 틀어주신 줌 화면의 몇몇 얼굴들과 다수의 검은 네모 박스들을 보며 토크를 시작했다.


서울산업진흥원과 서울메이드, 책발전소가 만드는 강연 프로그램. 12월의 주제가 공간이었고 나는 <취향집> 저자이기에 '취향으로 가꾸는 공간'이라는 주제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공간에 대한 토크를?'이라고 의심했으나 나름 유익했고, 역시 모든 일은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강연 전에 신청자들의 질문을 받아볼 수 있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질문 하나는 '취향은 어떻게 만드나요'였고, 그다음은 '브랜드는 어떻게 만드나요'였다.

언제부턴가 취향이 갖춰야 할 스펙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관련 콘텐츠가 왕왕 생산되는 중에 '취향껏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채널을 운영하는 나야말로 정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설명하고는 많이, 열심히, 즐겁게 경험하기를 권했다. 취향 관련해서는 따로 장황한 글을 써볼 생각이다.


그건 그거고, 브랜드는 어떻게 만드나요? 브랜드텔링은 어떻게 하나요?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의 질문들은 역시나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글쎄요. 저도 배우는 중입니다. 2020년의 마지막 영상 <브랜드가 되어가는 중입니다>를 올리고 마요네즈의 독자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동안은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만든', '브랜딩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 타깃이라고 얘기해왔는데 후자는 아닌 것 같다. 브랜딩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전문적인 입장에 있고, 마요네즈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업무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굳이 더 짜내 보면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만든 사람들에게 공부는 해야 하지만 정답은 없고 당신의 마음을 따라도 된다는 '힘'을 실어주는 채널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브랜드를 소개하고 그들의 선택(취향 형성)을 거드는 역할은 뭐 (말해야 되나).


종종 "내 취향은 마이너해서 콘텐츠도 마이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왔는데 변명이자 사실이고, 때문에 지지부진하다는 기분도 느끼지만 그 안에서 작은 비전의 씨앗을 본다. 개성과 윤리, 합리적인 기준, 외부보다 내면에 귀를 기울인 소신에 무게를 싣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직 대중이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변화하는 소비자를 따라 브랜드가 핸들을 꺾어야 하는 일들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마요네즈의 시장은 지금 당장보다는 살짝 미래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런 기분은 표면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나의 시선을 지켜나갈 원동력에 불을 지핀다.


평소에 '인터뷰이는 어떤 기준으로 고르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기준이 하나일 리 없기에 매번 다른 대답을 했지만 거기에 꼭 덧붙이고 싶은 표현을 만났다. 유명한 유튜브 채널에서 노희영 씨(마켓오 브라우니, 비비고 만두 만든 사람)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이야기하면서 '한눈에 견적 나오는 건 매력이 없다'라고 한 부분이 통쾌하게 뇌리에 남았다. 정확히 '매력이 없다'라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워딩은 기억나지 않고 나의 해석만 간직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나의 취향을 지지받은 기분은 좋다. 그러니까, 마요네즈는 한눈에 스캐닝되는 뻔한 그림보다 뭔지 몰라도 볼수록 매력적인 조합의 플랫폼이고 싶다.


똑똑한 경영서적들은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매일 내 브랜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아, 나의 진짜 독자는 여기구나. 아, 나의 시장은 저기에 있었구나. 아, 내 브랜드의 매력은 이거겠구나. 어머, 브랜드 컬러가 언제부터 완성되어 있었지?

처음부터 정해놓은 것은 아주 조금이었다. 중심에 있는 막대기 정도랄까. 거기에 붙는 소시지나 밀가루 반죽, 케찹과 설탕 같은 것들은 핫도그를 완성해가는 여정에서 하나씩 발견한다. 그 작은 발견들이 내가, 나의 브랜드가 살아있다고 느끼게끔 해준다.


https://youtu.be/sa2Gl-83PRQ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운과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