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룬아 Jan 10. 2016

뮤지션 일레 X 포토그래퍼 강지영 인터뷰

소울메이트

자매가 싸우면 무섭다. 풀어헤친 머리끄덩이를 서로 휘어잡고 티셔츠가 찢겨나갈 정도의 격한 몸싸움을 목격한 적도 있다.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말다툼으로 인해 집안은 온통 서늘한 냉기와 카랑카랑한 두 목소리로 메워진다. 성보라와 성덕선의 일상은 그리 과장된 것이 아니다.

유독 친해 보이는 한 쌍의 자매가 나란히 삼십 대가 되었다. 얼굴만 보아도 가족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둘 중 언니는 몽롱한 음악을 만들었고, 동생은 또렷한 사진을 찍었다. 동생의 손을 거친 사진 속의 언니는 예뻤다. 독특한 케미를 기대하며 연락처를 받았고, 동생의 문자로 넘어온 언니의 전화번호는 ‘폭군’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좌 강은영(일레) ⓒSopia.K / 우 강지영(Sopia.K) ⓒJDZ CHUNG


각자 소개 부탁합니다.


강지영 - 저는 강지영(이하 지)이라고 합니다. 포토그래퍼고, 이제 서른이 되었어요.

강은영 - 저는 강은영(이하 은)이라고 하고, ‘일레’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영이보다 두 살 많아요.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자매가 둘 다 예술계통에 종사하고 있는 것에는 가정환경의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지 - 중학교 때 아빠가 올림푸스 필름카메라를 사주셨는데, 거기에 재미 들려서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당연히 사진과로 진학했는데 막상 공부만 하려니 좀이 쑤셔서 패션포토 어시스턴트를 자처했어요.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줄곧 사진만 고집해왔는데 잘못한 건가 싶어서 신방과로 편입까지 했어요. 하지만 역시 다른 걸 접해보니 제가 왜 사진을 좋아했는지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아버님께서 필름카메라를 사주셨다는 부분이 흥미롭네요.


지 - 아빠는 문화적 호기심이 많은 분이에요. 카메라뿐 아니라 하모니카도 사다 주시고, 팝송 시디도 모으시고, 영화도 많이 보여주셨어요.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아빠가 듣고 싶은 곡의 악보를 사 와서 쳐달라고 하세요. 정작 하시는 일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은 - 덕분에 일찍부터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었지만 전 대중문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고2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MTV에서 비요크Bjork를 보게 되었어요. 그야말로 충격이었죠. 정확히 뭔지 알 수 없는 희한한 것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거예요. 저런 것도 음악이라고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처음 알았죠. 그때부터 마이너 감성에 푹 빠졌고, 매일같이 외국 인디음악만 찾았어요.

하지만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하고, 독어독문 전공을 했어요. 대학에 가면 주체성 강한 친구들끼리 모여 뭔가 새로운 걸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냥 공부 잘하는 게 다였어요. 고3 생활의 연장 같았으니까. 결국, 혼자 떠돌다 우연히 기타학원에 등록했는데, 학원 선생님께서 음악가로서의 눈을 처음 뜨게 해주셨죠. 배우지 않았는데 다양한 곡을 쓰는 걸 보면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저도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예대 편입을 권하기 시작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학교에서 배우기는 어려워 보였어요. 보컬 학생 열의 열은 모두 머라이어 캐리를 부르고 있더라니까요.


외국으로 나가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은 - 그래서 일본에 갔죠. 일어라고는 ‘곤니찌와’, 정도 할 줄 알았나. 그래도 가서 부딪히면 뭐라도 보일 것 같았어요. 환율이 1,800원까지 치솟았을 때라,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뛰며 밴드 활동을 했죠. 1년 정도 있었는데 일단은 생계유지에 쏟는 에너지가 너무 많았고, 당시 일본 음악사회에서 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타지에서의 경험은 무시할 것이 못 되죠.


은 - 무엇보다 독립심이 자란 것 같아요. 돌아와서 작업실도 만들고 페스티벌도 나가기 시작했어요.

ⓒSopia.K


각자의 2015년은 어땠나요?


지 - 가장 바쁜 해였어요. 2014년에 워낙 침체돼서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새해가 밝자마자 1월부터 12월까지 쉼 없이 바빴어요.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했나요? 인물사진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지 - 거의 브랜드 룩북 촬영이에요. 인물을 좋아해서 일이 잘 맞아요. 제가 촬영하는 대상의 매력을 잡아내는 작업이 너무 재미있어요.


지영씨의 사진을 보다 보면,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이미지보다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어서.


지 - 분위기보다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보니 클로즈업을 많이 찍어요. 예전에는 전체적인 그림에 신경을 많이 써보려 했는데, 인물을 살리는 것이 제가 가장 잘하는 거예요.


은 - 2015년에는 지영이다운 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 대상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찍어주고 싶어하는 포토그래퍼에요. 룩북이야말로 모델과 착장이 가장 예뻐 보여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모델에게서 매력을 끄집어내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지 - 그건 영원한 숙제예요. 사람마다 에너지가 다르니까요. 일단 차분하게 시작해서 저와 모델의 리듬을 맞추는 시간을 갖고, 저 자신을 낮추어서 편하게 해주려고 해요. 무엇보다 촬영 중에 아이 컨텍을 많이 하죠.

일레씨의 타이틀곡 블랙문Black Moon의 영상이 참 몽롱해요. 영상제작을 동생이 했나요?


지 - 아뇨, 제가 20대 초반에 방송촬영을 하다 알게 된 분이 있어요. 언니 이미지에 딱 맞을 것 같아 연결해주었어요.


앨범이 두 개 나왔던데.


은 - 20대에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과 헤어지고, 절대적으로 혼자가 되었어요. 결과물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1월에 싱글 내자마자 정규앨범 준비하고 8월에 발매했어요. 혼자 작곡, 녹음, 편곡, 마스터링까지 다 하느라 거의 작업실에만 있었죠 뭐. 아쉬움도 남지만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것을 해내서 마음속 찌꺼기를 많이 배출한 느낌이에요.


오랜만에 독특한 느낌의 음악을 접하게 되어 좋았는데, 듣다 보니 창이 넓은 고층 오피스텔에서 불을 다 끄고 야경을 바라보며 하이볼 한 잔 곁들여서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은 - 원래 구체적인 이미지로부터 출발해서 곡을 만들어요. 블랙문은 큰 창에 달빛이 드는 고층 오피스텔에서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상상하며 썼어요. 그렇게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뜻이 전달되었나 봐요. 기쁘네요. 이런 곡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은 -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도 헤어진 뒤에 썼어요. 너무 긴 연애 뒤에 다른 사람을 만나니 감정들이 굉장히 자극적으로 남더라고요. 그 느낌을 꼭 쓰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사람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역시 아픔과 재생의 반복이 창작의 에너지원이 되나 봅니다. 두 분 다 큰 점프를 한 해였던 것 같네요. 작업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두는 부분이 뭔가요?


은 - 나다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오는 걱정들도 있지만.


지 - 전 그 ‘나다움’을 깎아내라고, 울타리에서 나오라고 잔소리하죠. 자기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잖아요.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니까요. 사람은 상호작용을 해야 하고, 그래야 삶의 이유가 생기고 지속가능성이 생기는 거예요. 언니는 더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만들어야 해요.


은 - 곡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각자 해석하고 받아들이기에 달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가 불분명해지더라고요. 자기만족 때문이라면 삶을 몽땅 쏟아부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방황하던 중 한강에 온종일 누워있는데,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있는 거예요. 아, 내가 저렇게 멋진 일을 하려던 거였지,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영이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죠.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지영이고, 저 또한 지영이에게 그렇고요.

ⓒSopia.K / 우 ⓒChoigo


정규앨범 재킷을 지영씨가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촬영은 최고은 프토그래퍼가 맡았어요.


지 - 음악도 음악이지만 시각적으로도 관심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킷 이미지에서부터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촬영했어요. 그랬더니 너무 예쁘게 나온 것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고친 부분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보고자 최고은 포토와 작업했죠.


은 - 재킷 촬영을 할 땐 가벼워 보이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제 안의 모든 걸 쏟아내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나니 조금 재미있게 해보고 싶더라고요. 음악과 달리 제 본래 성격은 엄청나게 밝고 활발하거든요.


일반 클라이언트와 언니와의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 - 언니는 저보다 이미지에 더 집착하는 편이라, 언제나 자료를 수집하고 시안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유튜브YouTube로 뮤직비디오 보는 거고. 일상이 문화 공유의 연속이에요.

아무래도 언니와 작업할 때 제 주관이 더 강해지죠. 언니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답이 나와요.


은 - 정말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 그대로 뽑아줘요.


최고의 콜라보네요. 부럽습니다. 상반되는 성향이라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가족이기 전에 베스트프렌드이자 조력자인데요.


지 - 맨날 싸우는 베프. 독설이, 장난이 아니에요.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만큼 많이 듣기도 하지만 결정권은 뺏기지 않아요.


잘 싸울 줄 아는 관계가 건강하죠.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싸움을 잘하기는 어렵잖아요.


은 - 전 지영이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해요. 작업뿐 아니라 행동이나 성격에 대한 조언도 항상 구하고요.


지 - 반면에 전 언니에게 육체적으로 의지하죠. 촬영하고 집에 오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리거든요. 언니가 밥도 다 해서 먹여주고 아침에 시간 맞춰 깨워주고 그래요.


은 - 이제 뭘 해도 혼자가 아니라 둘을 생각해요. 흐트러지고 싶어도 지영이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되고, 지영이가 있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해요.


지 - 언니는 저 때문에 더 굳세어진 게 사실이에요. 보살펴야 할 대상이 있으면 강해지잖아요.


소울메이트로써의 자질이라는 게 있다면?


은 - 저를 가장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게 소울메이트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저부터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야 사랑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영이가 저에게 고맙고 미안한 것들을 잘 표현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거든요.


지 - 이래서 저희는 참 달라요. 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소울메이트의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매사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Choigo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퍼즐 조각과 닮아있었다. 반대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빈틈이 딱 들어맞는 둘. 그러함으로 인해 둘이 함께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필요로 하는 아티스트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애증의 뮤즈가 잠옷 바람으로 뒹굴고 있는 것이었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치고받으며 원석이었던 상대를 보석으로 깎아주고 있는 언니와 동생은 오가는 독설 안에서 서로의 대체 불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토록 다르게 닮아가는 자매를 보고 있으니 소울메이트란 우리 곁에 거친 돌의 모습으로 찾아와, 서로의 손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sopialand.com/

https://www.youtube.com/watch?v=ZIe_86SmPOg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니 시인 인터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